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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공격수 박성호' 미완의 대기에서 팀의 중심으로

2009-02-06 00:00:00 3,210

박성호의 플레이 모습 ⓒ대전시티즌/김장헌



“(정)성훈이 형과는 공격수로 서로 맞교환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작년 시즌 초반부터 경쟁심이 있었다. 성훈이 형이 국가대표까지 뽑히면서 각광을 받았지만' K-리그에서의 개인기록에서 나도 밀리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아직 나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성훈 형보다 더 크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더 좋은 활약을 펼쳐 국가대표까지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 대전에서 2번째 동계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대전에서 2년차를 맞이한 느낌은 어떠한가?

지난 시즌을 앞두고 대전에 합류했을 때는 2007년 6강 플레이오프 진출로 팀 상황이 좋았을 때였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훈련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1년을 보내면서 올해 입장은 많이 달라졌다. 작년의 실패로 인해 팀이 힘든 상황인 만큼 고참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 작년 시즌의 경우 프로 데뷔 이래 최고의 성적이었다. 7골-4도움은 팀 내 최다득점과 최다도움이었다.

데이터 상으로는 그렇지만' 원래 내 목표는 10골 이상이었다. 거기에다가 팀이 후반기로 갈수록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이 컸다. 내 자신 역시 경기력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개인적으로나 팀으로 볼 때나 모두 좌절을 맛봤다고 할 수 있다.

- 그래도 예년에 비해 좋은 개인기록을 올린 것은 사실이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의식적으로 경기를 많이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했다. 김호 감독님께서도 공격수로서만 아니라 축구선수로서 어떻게 플레이해야할지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경기 자체를 편하게 하려고 했고' 즐기면서 하다보니까 큰 부담 없이 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부산에서 대전으로 트레이드가 결정될 때의 심정은 어땠나? 부산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마련한 상황에서의 트레이드였는데.

사실 트레이드되리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그 당시 대전은 6강 플레이오프도 가는 등 분위기가 좋았고' 김호 감독님도 계셨기에 혼란스러움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대전으로 올 수 있었고' 다시 마음을 잡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어떻게 보면 정성훈과의 트레이드였다고도 할 수 있다. 국가대표로까지 성장한 그를 보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사실 공격수로 서로 맞교환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작년 시즌 초반부터 경쟁심이 있었다.
개인 공격포인트도 많이 신경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성훈이 형이 국가대표까지 뽑히면서 각광을 받았지만' K-리그에서의 개인기록은 내가 7골-4도움이고' 성훈 형이 8골-4도움이다. 나도 밀리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아직 나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성훈 형보다 더 크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더 좋은 활약을 펼쳐 국가대표까지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 안양과 부산' 대전에서 프로 생활을 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안양은 좋은 팀이고'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있었다. 자기가 잘하면 1군에서 경기를 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2군행일 뿐이다. 반면 부산과 대전' 특히 대전은 전체가 뭉쳐서 팀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안양보다는 훨씬 끈끈하고 인간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 앞서 언급했듯이 작년 대전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트레이드를 통해 새로 들어온 선수인 만큼 좋지 않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더 컸을 것 같다.

경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팀원 중 누구는 잘했고' 누구는 못한 그런 경기는 없다.
모든 선수들이 잘하면 이기는 것이고' 모든 선수들이 못하면 지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외국인 선수의 차이가 가장 컸다고 본다. 2007년에는 데닐손과 슈바' 브라질리아라는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있었고' 작년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 차이는 꽤 크다. 작년 시즌 말미에는 거의 국내선수들로만 경기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광주상무와 다를 것이 없지 않나.

그렇다 해도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나도 그렇고' (권)집이도 그렇고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경기에서 지면 고개가 더 숙여질 수밖에 없다. 감독님께서 큰 모험을 걸고 데려온 상황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니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점점 팀이 좋아질 거란 기대를 갖고 있다. 감독님께서 미래를 보고 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팀이 될 거라 믿고 있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팬들도 그런 부분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전의 중심 공격수로 발돋음한 박성호 ⓒ스포탈코리아



2008시즌 대전 시티즌의 공격을 이끈 선수는 다름 아닌 박성호(27)였다.
187cm의 장신 스트라이커 박성호는 31경기에 출장해 7골-4도움을 기록해 팀 내 최다득점과 최다도움을 기록했다. 2007년 6강 플레이오프의 기쁨을 뒤로 하고 추락하던 대전에서 자기 몫을 해준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

박성호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을 활용한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기보다는 스피드와 기술이 뛰어나고' 다양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키는 타입의 공격수. 2001년 부평고를 졸업하고 안양(현 서울)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박성호는 최고의 하드웨어에 기술까지 갖춘 대형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고' 데뷔 첫 해 5경기 출장에 이어 2년차였던 2002년에는 부상 등으로 아예 1군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2003년에도 부진은 계속되어 단 2경기 출장에 그쳤다.

결국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박성호는 경찰청에 입대했고' 잃어버렸던 감각과 자신감을 2년간의 복무 기간 동안 어느 정도 되찾았다. 2006년 제대하고 새롭게 부산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박성호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출발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 그러나 시즌 중반을 지날 때까지도 그의 득점포는 살아나지 않았다. 팬들의 비아냥 속에 힘들어한 시간이었지만' 8월 26일 대전과의 홈 경기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부활의 날개짓을 했다. 그 해에 27경기 출장에 2골-1도움을 기록한 박성호는 2007년에는 팀의 확실한 신뢰 속에 33경기에 출장' 5골-2도움을 기록했다. 물론 1급 공격수의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유망주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힘든 시기만을 보내야 했던 그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2008년' 박성호는 트레이드를 통해 대전 유니폼을 입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대전 소속이었던 정성훈-김창수가 부산으로' 박성호를 비롯해 이여성과 송근수가 대전으로 가는 대형 트레이드였다. 대전의 김호 감독은 박성호의 하드웨어와 기술' 움직임을 높게 평가하면서 팀의 주축 선수 2명과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물론 사실상 박성호와 맞트레이드된 셈이라 할 수 있는 정성훈이 맹활약을 펼치며 국가대표팀까지 승선하면서 밖에서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러나 K-리그에서의 기록을 놓고 볼 때 박성호(7골-4도움) 역시 정성훈(8골-4도움)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팀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도 김호 감독이 인정했듯이 팀 내에서 수위를 다퉜다.

이제 작년 시즌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박성호는 2009시즌에 비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김호 감독의 스타일에 점점 적응하고 있고' 선수들과의 호흡도 점차 만족스런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 무엇보다 팀의 고참급 선수가 된 박성호로서는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역할까지 맡아줘야 한다.

박성호는 “올해 거의 절반 가까이 선수들이 바뀌었고' 그 선수들이 대체로 어리기 때문에 내 역할이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때까지 선배들이 도움을 주고 희생해야 한다. 선후배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동계훈련 때부터 서로 격려하면서 많이 준비하고 있다”며 올 시즌에 대한 강한 각오를 드러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박성호와의 일문일답.




부산 시절의 박성호 ⓒ부산 아이파크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갔던 것은 축구를 더 빨리'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어렸던 탓인지 축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많은 경험을 했고' 배운 것도 많아 지금의 발판이 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 예전 이야기를 해보자. 2001년 부평고를 졸업하고 바로 안양에 입단했다. 당시 대형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었는데' 막상 접한 프로무대는 어땠나?

일단 그 때는 형들과 경쟁을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기량도 완성되지 않아서 경기에 나가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갔던 것은 축구를 더 빨리'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어렸던 탓인지 축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많은 경험을 했고' 배운 것도 많아 지금의 발판이 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 프로 2년차였던 2002년에는 출장기회가 없었고' 2003년에도 2경기 출장에 그쳤다. 어떤 이유였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2년차 시절에는 내가 부상을 당해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3년차 초반에는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축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사실 당시 조광래 감독님은 나에 대한 기대가 크셨고' 그 때문에 많이 신경써주셨다. 경기 출장은 못했지만' 1군에서 항상 훈련하게 해주셨고' 값진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그러나 너무 어렸던 탓에 그 시절에는 축구 자체를 잊고 다른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감독님의 기대에 보답해드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야 축구라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기면서 하고 있다.

- 결국 2003시즌을 끝으로 군 입대를 결정했다. 그런데 상무가 아니라 경찰청에 입대한 것이 의아하다.

그 당시에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부득이 입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마침 팀 내에서 군 입대를 하려는 선배들이 3~4명이 있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경찰청에 가는 것이 되었다. 원래는 상무에 가려고 했고 이강조 상무 감독님도 나를 데려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경찰청 테스트가 먼저 있어서 받았는데' 그것이 그냥 경찰청 입대로 흘러갔다. 그 당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경찰청으로 간 것이 내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 제대하고 부산에 입단했다. 부산으로 팀을 옮기게 된 계기가 있는가?

그 당시 서울에는 (김)은중이 형' (박)주영이' (정)조국이 등 좋은 스트라이커들이 많았다.
내가 제대하고 서울로 돌아간다 해도 제대로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당시 부산의 김판곤 코치님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이적을 제의하셨고' 나 역시 기분 좋게 부산으로 갔다.

- 부산에 입단한 이후 경기 출장 기회를 많이 잡으면서 서서히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단 K-리그 경기에 많이 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 훈련도 열심히 했다. 그 전까지 축구에 전념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부산 입단 이후에는 축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거기에만 집중했다. 리그 경기에 많이 출전하면서 기량도 더욱 발전한 것 같고' 자신감도 상승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부산 시절은 매우 소중하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개인기술을 갖춘 박성호 ⓒ대전시티즌/김장헌



“이제는 공격수가 수비수 1명 정도는 개인기로 돌파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K-리그에서는 장신 공격수들 중에 그 정도의 기술을 가진 선수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자신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스타일을 즐겼다.”

- 사실 완벽한 체격조건에 스피드와 기술까지 갖췄다. 그 때문에 축구전문가들도 성장 가능성에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이고. 그런데 부산 시절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갖고 있던 기대에 비해서는 미흡한 면이 있었다. 어떤 점이 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볼을 예쁘게 기술적으로 차려고 많이 노력하고' 주위에서도 그런 평가를 해준다. 그런데 반면 적극적인 면이나 과감한 면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전방에서 터프하게 부딪혀주고 프레스도 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평이다. 어찌 보면 내가 갖고 있는 신체조건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점을 살리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사실 고민스럽기도 하다.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내가 갖고 있는 부분 중에 일부를 버려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축구에서는 기술만으로 하는 추세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감독님들도 전방에서부터 터프하게 해주고'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는 형태를 원하니까 그런 방향으로 선수가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 내 나이가 충분히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니까 최대한 변화를 모색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

- 비슷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최근 스트라이커들에게는 단순히 타겟형이 아니라 많은 활동량과 다양한 움직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추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점에서는 나에게 유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공격수가 수비수 1명 정도는 개인기로 돌파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K-리그에서는 장신 공격수들 중에 그 정도의 기술을 가진 선수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자신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스타일을 즐겼다.

지금은 헤딩 경합을 많이 하는 등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역할도 많이 하지만' 원래는 기술적으로 드리블도 많이 하고' 아기자기하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이다. 솔직히 예전에는 단순한 고공 플레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는데' 이제는 흐름이 그렇게 바뀌니까 내 개인적 역량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스스로를 더욱 연마해서 팬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중고 시절부터 스트라이커로서의 역할에 대해 갈등이 많았을 것 같다. 지도자들은 박성호 선수의 신체조건을 활용한 고공 플레이를 집중 주문했을테니 말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나는 좀 더 기술적인 플레이를 원하는데'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체조건이 좋다보니 그것을 활용한 전술이었다. 후방에서 나에게 킥을 하고' 나는 헤딩경합을 벌이는 형태를 계속 주문받곤 했다. 부산 시절에도 그런 부분이 많았다.

다행히 대전에 와서는 김호 감독님께서 단순하게 축구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좀 더 재미있게 축구를 하고 있다. 지금도 경기장에서 기회만 된다면 수비수를 제치고 돌파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웃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단순하게 올려주는 축구를 싫어해서 고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선수가 감독을 따라가지 않으면 경기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니까 그것을 수용하고 요구대로 하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고' 힘든 부분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 그러고 보니 장신 선수답지 않게 스피드도 무척 빠르다. 육상선수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식 육상선수는 아니었고' 초등학교 때 인천시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으면 학교 대표로 나가곤 했다. 당시에 (최)태욱이 형도 같이 나갔다. 나보다는 태욱이 형이 훨씬 빨랐다. 그 형은 전국에서도 최고 빠른 선수 중 하나였으니까...(웃음)




아디와 경합을 벌이는 박성호 ⓒ스포탈코리아



“어떻게 보면 판 니스텔로이는 강한 팀에서만 뛸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역량으로 돌파하고 득점기회를 만드는 것보다는 동료들이 만들어주는 찬스를 정확히 결정짓는 스타일이다. 지금 내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경우에는 워낙 모든 능력들이 우수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정말 대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배울 점이 더 많은 선수이다.”

- ‘박니’라는 별명으로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판 니스텔로이(레알 마드리드)를 비유한 별명인데' 어떻게 해서 얻게 되었는가?

원래 안양 시절부터 후배나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명이었다. 내가 잘해서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은 아니다.(웃음) 그런데 부산에 입단한 후에 팬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불러주셨다. 사실 처음에 팬들이 ‘박니’라고 외칠 때에는 내 기량이 미치지 못하니까 좋지 않은 의미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힘들어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좋은 의미로 불러주시니까 만족하고 있다.

- 그렇다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공격수도 판 니스텔로이인가?

때대로 바뀐다. 공격수들도 이런 스타일이 각광받을 때가 있고' 조금 지나면 다른 스타일이 주목받고 그러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판 니스텔로이를 정말 좋아하긴 했다. 그러나 요즘은 판니보다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인터 밀란)를 더 좋아하고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어떻게 보면 판니는 강한 팀에서만 뛸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역량으로 돌파하고 득점기회를 만드는 것보다는 동료들이 만들어주는 찬스를 정확히 결정짓는 스타일이다. 지금 내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즐라탄의 경우에는 워낙 모든 능력들이 우수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정말 대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배울 점이 더 많은 선수이다.

- 조금 가벼운 질문이다. 어느덧 K-리그에 데뷔한 지도 햇수로 9년째이다. 리그에서 뛰면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수비수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외국인 수비수들이 까다롭다. 마토(전 수원)나 산토스(전 경남) 같은 선수들은 상대하기 정말 힘들다. 마토는 힘과 대인방어능력' 헤딩에서 뒤지지 않으니까 힘든 점이 있었다. 산토스는 굉장히 영리한 수비수이다. 경험이 많다 보니까 수비를 하면서도 매우 영리하게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플레이를 한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수싸움에서 밀릴 때가 많다.

다행히 두 선수 모두 K-리그를 떠나게 되어서 내 입장에서는 좋다.(웃음) 아마 다른 좋은 외국인 수비수들이 또 들어오긴 하겠지만 이겨내야 하지 않겠나.

- 한번쯤 같이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선수는 있는가?

음..좋은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누구를 꼽기는 조금 그렇다. 내가 빅 클럽에 간다면 좋은 선수들과 경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사실 대전에도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은 많다. 그것을 경기장에서 얼마나 표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도 예전에 톱 클래스의 선수들과도 함께 해봤지만' 기량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경기장에서 얼마나 집중하고'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보여주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작년에 짧은 기간 동안 셀미르와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셀미르는 브라질 선수임에도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였다. 보통 외국인 선수들은 득점 욕심이 워낙 크기 때문에 팀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좋은 포지션을 점령하고'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 상황에서도 골대 앞에서 득점 기회만을 노린다. 그런 면에서 팀을 먼저 생각하는 셀미르는 보기 드문 외국인 선수였던 것 같다. 같이 경기하면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대전의 부활을 이끌겠다는 각오를 밝힌 박성호 ⓒ스포탈코리아



“올해 거의 절반 가까이 선수들이 바뀌었고' 그 선수들이 대체로 어리기 때문에 내 역할이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때까지 선배들이 도움을 주고 희생해야 한다. 선후배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대전에서 2년째이다. 올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작년에는 정말 암담했고' 모든 것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한 해였다.
올 시즌을 맞이하면서 대전은 다시 한번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올해 거의 절반 가까이 선수들이 바뀌었고' 그 선수들이 대체로 어리기 때문에 내 역할이 중요하다. 작년 주장이었던 (고)종수 형도 없고' 이제는 경험 있는 필드 플레이어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때까지 선배들이 도움을 주고 희생해야 한다. 선후배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동계훈련 때부터 서로 격려하면서 많이 준비하고 있다. 힘을 합쳐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도록 힘쓸 생각이다.

- 이제 한창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연령대이다. 축구선수로서의 최종적인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그렇다. 지금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사실 작년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는데' 주위에서 더 배우고 도전하라는 충고를 해줬고' 나 역시 아직은 기량이 완숙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올 시즌 더 발전된 모습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팀과 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

그것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는 더 좋은 리그에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경험하고 배우면서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다. 그리고 대표팀에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 인터뷰 감사하다. 원하는 꿈들이 모두 이뤄지길 기원한다.


인터뷰=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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