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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하성민의 주경야축(晝耕夜蹴)

2024-04-16 07:41:38 366


 

바야흐로 N잡 시대다.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본캐(본 캐릭터)’보다 다채로운 ‘부캐(부 캐릭터)’가 더 각광받는 흐름이다. 축구계에서 그런 사례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ONSIDE’ 4월호에서 소개할 하성민도 그중 한 명이다. 선수 시절부터 하성민의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등장했다. K리그 레전드인 하대성의 동생으로 ‘형제 선수’ 리스트에 빠지지 않았고, 베테랑이 된 후로는 ‘캡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았다. 인천에서 프로로 데뷔해 전북, 울산, 부산, 경남 등 K리그 다양한 클럽에서 활약하고 무아이다르(카타르), 교토상가(일본) 등 해외 경험까지 축적한 그가 은퇴 후 뛰어든 생활 전선은 뜻밖에도 조경 사업이다. 낮에는 조경, 밤에는 축구에 몰입하는 ‘주경야축’의 삶이다. 조경과 축구는 몸을 쓰고 땀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퍽 닮은 세계다. 


Q 축구계 ‘N잡 시대’를 이끌고 있다. 은퇴 후 근황을 전한다면?

A 작년 여름부터 투잡 생활 중이다. 새벽부터 오후까지는 조경회사 일을 하고, 저녁에는 축구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조경사업은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오후 3~4시 사이에 끝난다. 오후 5시에 씻고 축구센터로 간다. 오후 6시부터 두 시간 동안 축구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훈련한다. 훈련을 끝내고 정리하면 밤 9시쯤 된다. 

 

Q 조경 사업이라니 조금 생소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A 설명하자면 진짜 광범위한데… 쉽게 말해 경관을 조성하고 가꾸는 일이다. 나무를 심기도 하고 모양 좋게 자르기도 한다. 썩은 나무를 들어내거나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한다. 잔디를 심거나 빼는 것도 우리가 하는 일이다. 작게는 집 앞 정원부터 크게는 건물이나 공원의 환경을 가꾸는 일을 다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Q 조경 일을 시작한 계기는?

A 아들이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 잔디 구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천연 잔디에서 볼을 차면서 섬세하게 기술을 익히지 않나. 인조 잔디에서는 발목이나 무릎에 무리가 가기도 하고. (아들의) 큰아빠(하대성)도 워낙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던지라 천연 잔디에서 마음껏 볼을 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이 세종시인데, 조경사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대표님 한 분과 친해졌다. 잔디 구장을 직접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그 대표님이 회사에 나와서 일을 배워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잡일부터 시작했다. 제초기를 돌리고 나무를 잘랐다. 큰 나무, 작은 나무 할 것 없이 심거나 뺐다. 나무에 소독하는 것도 직접 했다. 큰 물통에 제초제를 타서 나무에 뿌리는 일이다. 일당 17만 원 받고 일했다.


조경일을 하고 있는 하성민 
 

Q 조경으로 사업체까지 꾸리는 건 예상 밖 행로였을 것 같다. 적성에 맞았나?

A 은퇴 후 2년 동안 그냥 쭉 쉬었다. 그쯤 되니 돈을 벌어야 했다(웃음). 축구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폐기물 사업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조경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표님 밑에서 일을 하다 2년 차가 되니 혼자서도 웬만큼 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솔직히 돈을 좀 더 벌고 싶었다. 사업적으로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만난 조경전문가 한 분과 마음이 맞았다. 해병대 출신 선생님이었는데, 굉장히 성실하고 성품이 좋은 분이다. ‘명가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둘이서 일당백이다. 손이 많이 필요한 일에는 인력사무소에서 두세 명을 소개받아 작업한다. 개인 주택 공사나 큰 회사에서는 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한다. 

 

Q 유튜브 채널에서 보니 스스로를 일용직 일꾼으로 정의하더라. 자부심이 느껴졌다. 

A 회사를 차리기 전에 일터에서 만난 조경전문가가 있다. 70세에 가까운 어르신이었다. 그분께 사업적인 전망을 여쭈었다. 딱 한마디 하셨다. ‘무조건 하라’였다. 어르신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을 던지셨는데 ‘이 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다 죽거나 움직이지도 못한다’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편으로 이런 일을 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져서 뉴스가 되지 않나.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폐기물 사업을 구상했던 것도 그런 영역이라고 봤다. 

 

Q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몸 쓰는 일에 편견이 있는 편이다. 

A 실제로 밖에서 삽질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주변에 먼지를 일으키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좀 더 쾌적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나는 나를 낮게 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남들이 하찮게 본다고 해서 내가 진짜로 하찮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벌어 놓은 돈이 있고 자존감도 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더 존중한다. 외국인 노동자도 있는데, 종종 그들을 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 화가 난다. 나는 그들을 축구장에서 함께한 외국인 선수들처럼 대한다. 선수 시절에도 외국인 선수들과 잘 지냈다.

 

Q 인생의 이치를 언급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A 은퇴가 가까워진 후배들에게 가끔 연락이 온다. 존경스럽다고. 그런데 나는 유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사장에서 삽질을 해도 내가 행복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싶은 걸 구체적으로 계획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조경 현장에서 하는 일을 소위 ‘노가다’라고 봤는데 요즘은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내가 직접 해보니 아트에 가깝다. 엉망인 조경을 직접 가꾸고 아름답게 마감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선수 시절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축구를 하면서 능력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과분하게 돈을 벌었다. 한 경기에 승리수당으로 오백만 원, 천만 원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비교하면 일당 17만 원, 18만 원으로 번 돈에서 오히려 소중함을 많이 느꼈다. 겸손한 자세로 임하면 배우는 게 많다. 


축구와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Q 축구와는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지?

A 청주에서 DOO FC라는 초등부 클럽을 2년 동안 운영했다. 이제 선수 지도는 감독님께 따로 맡길 만큼 성장했다. 프로 유스팀에 들어가는 선수들이 나올 정도다. 지금은 계룡시에서 U-15팀(계룡스포츠클럽)을 돕고 있다. 안상현, 정다훤, 배해민, 손상일(GK코치) 등 프로에서 만난 선후배와 함께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좋은 친구들을 발굴해 중학교 명문팀으로 보내는 게 우리 목표다. 조경과 축구처럼 다른 영역의 일을 함께 하는 비결? 돈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4월호 ‘INSIGH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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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배진경

사진=대한축구협회, 하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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