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TV협회일반

[INSIGHT] 고요한의 선택(選擇)

2024-03-19 08:16:37 515


 

누구나 인생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고요한에게는 최근 은퇴를 결심한 순간이 그랬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고요한은 오산고(FC서울 U-18팀) 코치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2004년 FC서울 입단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의 이름 앞에는 ‘20년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이 훈장처럼 남았다. 돌아보면 선택과 선택의 연속인 날들이었다. 그 선택이 정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선택을 확신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만큼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요한은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매거진 'ONSIDE'와의 인터뷰에서 선택에 대해 이야기했다.

 

Q 축구 인생을 통틀어 세 차례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가장 최근의 선택이라면 은퇴 결심이었을 텐데?

A 30대 중반이 되면 슬슬 은퇴를 염두에 둔다. 사실 무릎 수술(2020) 이후 계속 부담을 느꼈다. 은퇴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해 고민했다. 혼자서도 많이 생각하고 은퇴 선수들의 영상도 찾아봤다. 몸을 회복하면서 서서히 그런 생각을 지웠는데, 아킬레스건 파열(2022) 후에는 몸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 뛰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운동장에서 좀 더 집중하게 됐다. 할 수 있는 만큼 제대로 하고 싶었다. 

 

지난해에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훈련했다. ‘플레잉코치로 뛰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다. 막상 은퇴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니까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열에 일곱은 더 뛰면 좋겠다고 했다. (박)주영이 형도 좀 더 뛰어보고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 주었다. 그때 한웅수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께서 의미 있는 말씀을 주셨다. 언젠가 겪게 될 상황이라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기라는 말씀이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경험하면 또 성장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해외가 아닌 이상 서울이 아닌 다른 팀에서 은퇴하고 싶지는 않았다. 

 

Q 한 팀에서 20년을 뛰는 것도 흔치 않다. 그 선택의 결과로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이 남았다. 

A 선수로 뛰는 동안 몇 차례 다른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다. 서울에서 뛴 20년이 늘 좋았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굳이 서울이라는 팀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서울은 나에게 축구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팀이다. 내 재능을 인정하고 믿어줬다. 

 

(오퍼가 있을 때) 구단을 등지면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구단과 내가 함께 좋은 상황이 되길 바랐다. 이런 나를 구단에서 존중해줬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동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20년 원클럽맨’이라는 역사도 만들었다. 서울은 축구선수로서 내 꿈을 함께한 구단이다.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축구로 만든 첫사랑을 완성하게 해준 팀이라고 할 수 있다.


FC서울은 고요한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남긴다
 

Q 축구 인생에서 최초의 선택은 프로행을 결심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이 열다섯이었는데?(*2004년 토월중 중퇴 후 서울 입단)

A 사실 그 나이대에는 스스로 어떤 선택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구단에서 우리 가족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또 부모님의 판단이 그 선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 역시 프로팀에서 축구 선수로 뛰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그 선택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프로팀 입단이 확정됐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컸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면서 컸다. 첫 계약 기간이 5년이었는데, 훈련장에서 형들과 뛰면서 바로 ‘5년 동안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모든 걸 걸고 프로로 왔기 때문에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인생이 망가진다고 생각했다. 방황의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 좋은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많이 배웠다. 어린 시절의 그 경험이 긴 시간 프로 무대에서 뛰게 만드는 힘이 됐다. 

 

Q 나만의 슬럼프 극복법은?

A U-20 대표팀 선발 멤버 테스트에서 떨어지고 첫 슬럼프를 겪었다. 팀에서 함께 훈련하던 (기)성용이, (이)청용이는 대표팀에 뽑혔는데 나는 떨어졌다. 몸이 좋지 않았고,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친구들이 승승장구할 때 ‘내 실력은 여기까지인가’ 싶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조언으로 마음을 회복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할 일에 묵묵히 집중하면 좋은 때가 온다는 말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프로 무대에서도 초조했던 기억이 있다. 귀네슈 감독님 시절 뛸 기회를 받지 못해 압박감을 느꼈다. 빨리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그만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이후 황보관 감독님이 부임하셨다. 동계 훈련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그때도 베스트 멤버에는 들지 못했다. 그런데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나에게 기회가 왔다. 그리고 자리 하나를 꿰찼다. 기회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왔지만, 그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준비된 상태였기에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훈련인 것 같다. 준비가 되면 분명히 기회가 온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나 더. 너무 축구만 붙들고 있으면 더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른 곳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이시다. 어머니와 함께 꽃동네라는 복지시설을 찾기도 했다. 그때 마음이 편해지면서 운동에 대한 열정이 다시 돌아오는 걸 느꼈다. 

 

Q 반복된 훈련으로 지루한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A 집에서 책이나 영화를 종종 본다. 순간순간 마음에 와 닿는 글귀나 장면을 볼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걸 내 인생의 지표로 삼거나 누군가에게 권할 정도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감동적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빨리 털어버리고 잊는 쪽이다. 

 

Q 이제 선수에서 지도자로 필드를 옮기는 중인데. 

A 사실 중학교 이후로 학창 시절이라 할만한 추억이 없다. 중학생일 때 프로 선수가 되어 프로 생활만 했다. 지금 오산고에 와서 많은 걸 보고 배우는 중이다. 고교 선수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나하나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고교 팀과 함께 대회(백운기)를 준비하고 이틀 간격으로 경기를 치르는 경험도 처음이다. 대학 진학 문제를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고, 지도자의 코칭과 피드백에 변화하는 선수들도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선수들의 변화가 눈에 보일 때 성취감도 느꼈다. 지도자의 성취와 희열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이건 확실히 선수 때와 다른 종류의 감정이다. 선수로 뛸 때는 컨디션 조절이나 멘탈 관리 모두 나만 잘하면 됐다. 지금은 모든 선수들을 두루 살피고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팀으로 일궈내는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지 배우고 있다. 

 

이제 지도자의 길에서 첫발을 뗐다. 좋은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도 축복이라고 느낀다. 이 기회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가꾸려고 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더 좋은 걸 알려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여러 선배님과 지도자 분들의 좋은 점을 흡수해서 지도자로도 잘 성장하고 싶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3월호 ‘INSIGH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3월호 보기(클릭)
 

글=배진경

사진=대한축구협회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 카피

학교축구팀의 우승 DNA, 어디에서 오나

[인터뷰] 북중미 월드컵 후보에 오른 김종혁 심판

목록
이전게시글 다음게시글

협회일반

정몽규 회장 AFC 집행위원으로 선출

협회일반

바이에른 뮌헨에서 2년 연속 고교 우수지도자 연수

협회일반

‘지도자도 심판으로’ 초등 지도자 대상 심판 강습회

협회일반

[위원석이 만난 사람] 재일 스포츠라이터 신무광 “한국선수들 J리그 이적 이유는?”

협회일반

K3·K4리그 대표자 간담회 개최... 승강제, 안전대책 등 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