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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홈그로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2021-09-14 11:50:01 2,465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주민 가정 출신의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소년 축구 현장에서도 피부색이 다른 선수가 능숙한 한국어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다르게 한국축구는 다양한 배경의 선수들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해외에서 시행되고 있는 ‘홈그로운’ 규정의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

 

서류 속 국적에 막힌 코리안 드림

2021시즌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축구팬들 사이에서 한 신인 선수가 화제가 됐다. 바로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한 중앙 수비수 풍기 사무엘이었다. 사무엘은 6살 때 난민 신분으로 앙골라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평택 지역의 유소년 축구 클럽에서 공을 차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경기청담FCU18에서 주장도 맡는 등 좋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여름 이적시장 추가등록 기간까지 끝난 지금도 사무엘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포항의 선수가 아니다. 선수 등록이 되지 않아서 연습생 신분으로 팀 훈련에만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귀화 시험 및 절차가 계속 연기되면서 사무엘의 K리그 선수 등록 전제 조건이던 한국 국적 취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도 있었다. 네팔 출신의 당기 머니스는 14세에 한국으로 와 경기신흥중과 경기포천시민축구단 U-18에서 공을 차며 고등리그 권역 득점왕에도 오르는 등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한 K리그 팀의 입단 테스트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머니스도 국적 문제로 인해 선수 등록에 어려움을 겪었고 끝내 프로 입단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사무엘과 머니스 같은 선수들은 잠재력을 인정받았음에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한국축구 무대를 뛰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현재 고교 무대에서 ‘동두천 음바페’라 불리며 주목받는 데니스 오세이(경기계명고) 등의 다른 이주민 선수들 역시 사무엘과 머니스가 겪은 것과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 시스템이 키운 선수는 우리 선수다

축구 선진국 유럽에서는 홈그로운 제도를 일찌감치 활용하고 있다. 유럽축구는 1995년 도입된 보스만 룰과 TV 중계권료의 비약적 상승으로 인해 클럽 간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부자 클럽들이 좋은 선수를 수집해 국내외 대회를 지배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상대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일은 등한시됐다.

 

이에 유럽축구연맹(UEFA)은 유소년 선수 육성을 장려하고자 홈그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UEFA는 2008-2009 시즌부터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에 참여하는 클럽을 대상으로 1군 로스터 25명 안에 최소 8명의 홈그로운 선수를 등록하도록 했다. UEFA는 15세에서 21세 사이에 해당 축구협회 소속 클럽에서 3년 이상 뛴 선수라면 국적과 관계없이 해당 국가의 홈그로운 선수 자격을 부여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홈그로운 제도의 당초 도입 의도는 유소년 선수 육성 장려다. 하지만 여기에는 ‘선수가 어디에서 태어났든 우리 땅에서 우리 시스템으로 자란 선수는 우리 선수’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국형’ 홈그로운 제도 도입 논의는 바로 이 전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현재 K리그는 구단 별로 최대 5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 국적과 상관없이 3명을 보유할 수 있고, AFC 가맹국 선수 1명과 ASEAN 가맹국 1명을 추가할 수 있다. K리그는 지난 시즌부터 ASEAN 가맹국 1명을 보유할 수 있는 ‘아세안 쿼터’를 도입, 동남아시아 선수 활용을 통한 시장 확장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사무엘과 머니스 같은 선수는 지금과 같은 외국인 쿼터에서는 기회를 받기 어렵다. 두 선수는 모두 한국과 한국축구의 시스템에서 축구선수로 성장했고, 문화적으로도 한국인의 정규 교육을 받았지만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외국인이다. 성인 무대에 등록될 때 외국인 선수 규정을 따라야 한다. 프로 구단의 입장에서 즉시 전력감을 사용해야 할 외국인 쿼터 한 자리를 이들 같은 신인 선수에게 사용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축구는 가장 세계적인 스포츠이고, 한국 사회와 한국축구도 점점 글로벌화 되고 있다. 한국축구의 시스템이 이미 키워냈고, 앞으로 키워낼 수 있는 다양한 배경의 선수들을 한국축구가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형’ 홈그로운 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9월호 'FOOTBALL TREND'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9월호 보기(클릭) 


글=오명철, 차재민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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