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KFA 시상식에서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조영욱과 박예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남녀 인재가 한 자리에서 만났다. 올해 열리는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공격을 책임질 조영욱(18),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2017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신생 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향하는 박예은(20)이다. 둘은 ‘올해의 영플레이어’를 넘어서 ‘올해의 선수’를 바라보고 있다.

2016년 대한축구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영플레이어는 고려대라는 인연으로 묶였다. 남자는 언남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는 조영욱이다. 여자는 고려대를 떠나 신생 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향하는 박예은이다.

고려대 선후배로 하나가 된 둘은 처음 본 사이임에도 남매처럼 친해 보였다. 조영욱은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으로 선배인 박예은을 예우했고, 박예은은 자상한 말투로 후배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둘은 함께 어울려 인터뷰하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16 KFA 시상식을 마친 뒤 둘을 만났다.

시상식에서 못 다한 수상 소감을 말해주세요.
조영욱 : 시상식에서는 U-20 월드컵 이야기만 했는데, 예은이 누나가 가족들 이야기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족 이야기를 하려니 왠지 부끄러워요.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엄마가 축구하는 걸 반대했는데 지금은 축구시킨 걸 후회 안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기분 좋습니다. 이제 대학교에 가서 더 나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기쁨 드리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박예은 : 이제 WK리그에 진출합니다. 더 나은 기량과 성숙한 모습을 보여 다음에는 올해의 선수상을 넘볼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둘은 서로 안면이 있나요?
박예은 : 기사로만 봤어요. 만난 것은 처음이에요.
조영욱 : 예은 누나가 여자축구를 꽉 잡고 있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어요(웃음).
박예은 : 언남고에 잘하는 친구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경기하는 모습도 봤는데 어린 나이에도 피지컬이 좋더라고요.
조영욱 : 얼굴도 잘생겼다고 말해주세요.
박예은 : 잘생긴 건 모르겠고,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구나 싶었죠(웃음).
조영욱 : 예은 누나는 워낙 유명한 선수라 제가 감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죠. 고려대에서 뛰는 강수진 선수와 친분이 있는데, 예은 누나에 대해 말해줬어요. 또 파주 NFC에 들어가면 여자대표팀 누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면서 여자축구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예은 누나가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조영욱 선수는 고려대에 입학하게 됐어요.
조영욱 : 예은 누나의 후배가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언남고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만큼 대학에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이고, 축구부하면 고려대잖아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과제를 빼 먹으면 큰일 난다고 하더라고요.
박예은 : 저는 재작년에 1년 동안 안암 캠퍼스에 있었어요.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일반 학생들과 교류할 시간이 있으니 영욱이가 공부 잘하는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안 돼서 아쉬웠거든요. 다른 부류의 친구를 많이 사귀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예요. 고등학교와 다르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영욱 : 캠퍼스 주변에 갈만한 ‘핫 플레이스’를 소개해주세요.
박예은 : 학교 앞 참살이길에 가면 음식이 다 맛있어. 일반 학생들이 운동부를 좋게 보는 시선이 있으니 트레이닝복만 입고 가도 일반 학생들이 좋아할 거야. 여자를 ‘꼬시고’ 싶으면 트레이닝복을 입고 참살이길에 나가라.
조영욱 : 오호, 그렇군.




조영욱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 U-20 월드컵에 출전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박예은 선수는 신생 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 우선 지명으로 뽑혔어요.
박예은 : 창단 팀이라 힘들 테지만 대표팀에서 친분이 있었던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 나간다면 힘든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공기업이라 지원도 좋겠죠.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사실 이 팀에 올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 중에서 대표팀에 갔다 온 선수도 없고, 고려대에서 저만 나왔기 때문에 한국수력원자력에 올 수 있다고 생각은 했죠. 제가 재활할 때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 남자 팀(내셔널리그) 오빠들과 친했는데 수당도 세다고 들었어요(웃음). 2~3년은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조영욱 : 수당이 참 중요하죠.

2016년 한 해를 돌아보면 어때요?
조영욱 : 가장 행복한 한 해였어요. 운도 따라줬고, 축구로는 모든 게 잘 풀렸어요. 그래서 목표가 더 커지고,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 해였습니다. 경기도 많이 뛴 것 같아요. 공식 경기만 따져도 한 30~40경기? 이렇게 뛴 건 처음이라 힘들었어요. 그런데 워낙 팀 성적과 개인 성적이 잘 나와서 행복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어요.
박예은 :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관왕(5관왕)을 해서 기뻤어요. 하지만 U-20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제 기량을 못 보여줘 아쉽습니다. 저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됐죠. 그래서 발전을 위해 실업 팀에 가기로 택했습니다. 올해 아픔도 있었지만 이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돼 내년에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대학교는 일단 휴학을 하고,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지를 팀과 논의해보고 결정할 예정입니다.

올해 가장 좋았던 경기와 아쉬운 경기는 뭔가요?
박예은 : U-20 월드컵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진 게 후회돼요. 정말 집중해서 준비한 경기였는데 지면서 너무 많은 걸 잃었어요. 가장 좋았던 경기는 다음 경기였던 베네수엘라전이에요. 골키퍼 김민정의 선방으로 분위기를 타 이길 수 있었어요. 월드컵에 나가서 4,000~5,000명의 관중 앞에서 포효하고 소름 끼치는 순간을 맞게 돼 희열을 느꼈어요.
조영욱 : 수원 JS컵 한일전 골로 성장할 수 있었고, 팬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어서 가장 좋았습니다. 그게 대표팀 공식 대회 첫 골이었어요. 아쉬운 점은 AFC U-19 챔피언십 사우디아라비아전이었어요. 그때 2승 1패를 하고 떨어져 더 아쉽죠. 준비 부족이라고들 하는데, 나름 열심히 했어요. 부상자가 나오고, 편파 판정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지만 열심히 뛰었습니다. 1차전이 끝나고 왼발 엄지발가락 부상을 당했는데 쉬는 이틀 동안 의료진 3명이 달라붙어 계속 치료해주셨어요. 그래서 바레인과의 2차전에 나서 두 골을 넣을 수 있었죠. 정말 감사드려요.

축구 인생을 통틀어 기쁜 순간과 아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조영욱 : 2015년 전국체전 16강전에서 현대고와 붙어 4-2로 이길 때요. 제가 4골을 다 넣었어요. 그때가 칠레에서 열리는 U-17 월드컵에 떨어지고 나서 바로 치른 경기였어요. U-17 월드컵 기니전을 보다가 바로 경기하러 나가서 4골을 넣었죠. 그때 더 성장해야겠다는 독기를 품고 뛴 게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가장 아쉬운 순간은 아니지만 2016년 금강대기가 떠올라요. 후반기 왕중왕전을 빼면 마지막 공식 대회였는데 영등포공고와의 16강전에서 져서 떨어졌어요. 아무것도 못하고 졌어요.
박예은 : 제일 좋은 건 2015년 추계연맹전에서 창단 후 첫 우승을 한 거죠. 처음에는 예선 탈락을 하는 등 부진하다가 추계대회서 처음 우승했죠. 축하파티에서 ‘부어라 마셔라’ 했어요(웃음). 아쉬운 건 3년 전 U-20 월드컵에 나갔는데 경고 누적으로 프랑스와 8강전에 못 나간 거요. 좀 더 나 자신을 컨트롤해야 했는데 후회가 돼요. 승부차기까지 가서 졌지만 재밌는 경기였어요. 내 실수로 프랑스를 상대할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쉬웠죠.
조영욱 : 와, 멋있네. 질 수 없지. 나도 U-20 월드컵 두 번 뛰어야겠다. (조영욱은 2017년에 만 18세라 2019년 열리는 U-20 월드컵에도 뛸 수 있다)

조영욱 선수는 대표팀 막내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요?
조영욱 : 아, 지난번에 괴롭히는 형들 이름을 이야기했다가 혼났어요. 형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면 무조건 ‘네’라고 해야 돼요. 표정 관리도 잘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버릇없다고 혼나요. 제가 형들에게 많이 까불다가 혼나기도 해요. 그래서 형들에게 ‘이제부터 착해지겠다’고 말했는데 형들이 제 말을 안 믿어요. 그러면 착해질 마음이 싹 사라진단 말이에요. 제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한층 높은 수준의 실업 팀에 빨리 적응한 뒤 A대표팀에 들어가 데뷔전을 치르는 게 박예은의 목표다



박예은 선수는 2년 전 막내였지만, 이번에는 팀을 이끄는 주축이라 부담이 많았을 거예요.
박예은 : 막내가 마음이 편하죠. 막내는 언니들이 끌어주니까 부담이 없어요.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욕심이 생겼어요. 그냥 아이들과 잘 섞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좋아하는 선수와 롤 모델은 누구인지 궁금해요.
조영욱 : 맨체스터 시티의 세르히오 아구에로를 좋아합니다. 요즘에는 거친 반칙으로 징계를 받았는데 그건 승부욕이라고 생각해요. 장점만 배우려고 해요. ‘한국의 아구에로’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아요. 아구에로의 슈팅 페인팅을 장착하고 싶어요. 슈팅하는 척하면서 치고 들어가는 모습이 멋져요. 따라해 보려고 연습하는데 실전에서는 잘 안 나와요. 머리가 멍청해서 그런가?
박예은 : 저와 다른 스타일의 미드필더인 이니에스타(FC 바르셀로나)를 좋아합니다. 단점인 패스 연결을 보완하기 위해 이니에스타의 영상을 보면서 배우려고 하죠. 대표팀 경기 전에 영상을 보고 나갑니다. 소속 팀에서는 공격수로 나서니 루이스 수아레스의 영상을 즐겨 봐요.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이 박예은 선수를 두고 ‘조소현의 대를 이을만한 선수’라고 극찬했어요.
박예은 : 미드필더지만 많이 뛰고, 중원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대표팀에서는 수비 역할을 하니까 조소현 언니와 역할이 비슷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소속 팀과 대표팀의 포지션이 달라 혼란스러워요. 고려대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도 하다 보니 대표팀에 오면 드리블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힘들기도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포지션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정종선 언남고 감독이 조영욱 선수의 턴 동작을 칭찬했어요.
조영욱 :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돌아서는 동작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감독님이 저에게 요구하고 가르쳐 주시는 부분입니다. 실전에서도 잘 활용하니 이 기술에 대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것 같아요.
조영욱 : 대부분 캠퍼스 커플을 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건 바라지 않아요. 최근 대표팀 훈련 중 쉬는 시간에 형들과 당구를 쳤는데 재밌더라고요. 고려대 형들과도 당구를 치면서 갈등 없이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판사나 검사가 될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싶어요. 하하.
박예은 : 지난해 세종 캠퍼스로 내려간 후로는 일반 학생들과 공부했어요. 과제를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았죠. ‘이런 게 대학 생활이구나’ 싶었습니다. 연설문을 영어로 써서 발표도 해봤어요. ‘사고와 표현’이라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스피치 능력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기타를 치고 있어요. 5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는데 기타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실업 팀에 가서도 가능하다면 학교 공부를 병행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올해 계획을 말해주세요.
조영욱 :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 U-20 월드컵에 출전하고 싶어요. 1월 포르투갈 전지훈련에 참가하고, 대학교 춘계대회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3월 JS컵에도 나가고 싶습니다. 다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며 발전하고 싶습니다.
박예은 : 한층 높은 수준의 실업 팀에 빨리 적응해 A대표팀에 들어가 데뷔전을 뛰고 싶어요(박예은은 2015년 말 호주와의 친선전 당시 대표팀 명단에 들었으나 공식 경기에는 나서지 못하고 연습 경기에만 출전했다). 창단 팀이지만 잘 뭉쳐서 중위권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단 경기에 출전하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어느 포지션으로 나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맞는 자리를 찾고 싶어요. 저에게 맞는 자리는 미드필더이지만 하고 싶은 자리는 공격수이거든요. 대학에서는 공격수로도 먹혔는데 실업 팀에서도 가능할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서로에게 덕담 한마디씩 해주세요.
조영욱 : 아, 쑥스러워. 뭐라고 말하지? 예은이 누나가 저를 오늘 처음 봤는데 잘 대해줬어요. 말하지 않아도 잘하시겠지만 항상 다치지 말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여자축구를 좋아하고 경기도 보러갔었어요. 항상 힘내세요, 예은 누나 파이팅!
박예은 : 영욱이와 저는 비슷한 점이 참 많아요. 영욱이가 고려대에서 등번호 10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고려대에서 2년 동안 10번을 달았어요. 그리고 영욱이도 저처럼 18세 나이에 막내로 U-20 월드컵을 나가잖아요. 저는 이제 고려대를 떠나지만 영욱이는 고려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의미 있는 번호를 달게 됐는데 부담 갖지 말고, 시기와 질투가 있을 테지만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U-20 월드컵에서 영욱이를 응원할거예요. 더 잘해서 해외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1월호 'SPECIAL 2'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오명철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