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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수 시절 58] 김진희' 여자월드컵 1호골의 주인공

2012-04-03 00:00:00 5,187

여자월드컵 1호골의 주인공 김진희 ⓒKFA 홍석균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2003년이 유일하다. 그리고 첫 출전했던 월드컵에서 유일한 골을 기록했던 선수가 바로 김진희(31)다.

2003년 여자 월드컵 외에도 네 차례의 AFC 여자 아시안컵(1999' 2001' 2003' 2006년)과 두 차례 아시안게임(2002' 2006년) 등에 출전하면서 2000년대 초중반 여자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A매치 40경기에 나서 7골을 기록했다.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골을 기록한 주인공인 김진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천수와 같이 축구했어요!

축구 명문인 부평초에 다녔던 김진희는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축구를 즐겼다. 당시 같이 축구를 했던 친구들 중에는 이천수도 있었다. 남학생들 틈에서도 워낙 축구를 잘했기에 주위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고' 결국 가정여중에서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마다 남자 아이들과 축구를 했었어요. 선생님이 부르실 때까지 안 들어갔죠. 남자 틈에서도 에이스였죠.(웃음) 천수와도 동창인데' 같이 어울리면서 축구 많이 했어요. 천수와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나중에 커서 천수에게 왜 그렇게 괴롭혔냐고 물었더니 자기보다 빠르고 잘해서 샘이 나서 그랬다고 하더군요.(웃음)'

'부평초 감독님께서 가정여중에서 테스트를 받고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하라고 권유하셨어요. 저는 좋았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워낙 심하셔서 가정여중 감독님께서 1주일 넘게 아침마다 오셔서 설득하셨고' 저도 학교 안 다닌다고 떼를 써서 겨우 허락받았죠.(웃음)'




2001년 토토컵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진희 ⓒKFA 홍석균



U-16 대표팀부터 엘리트 코스 밟아..고2 시절에 이미 대표 선발

부평초 6학년 시절부터 이미 가정여중에서 언니들과 같이 훈련을 했던 김진희는 입학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했다. 1학년 시절부터 우승을 한 차례 경험했고' 2~3학년 때는 모든 대회를 휩쓸었다.

'원래 수비수로 훈련 받다가 측면 미드필더를 보던 언니가 다쳐서 그 자리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잘하니까 계속 뛰게 됐죠. 이후에 은퇴할 때까지 17년 정도를 그 포지션에서 뛴 것 같네요.(웃음)'

단연 눈에 띄는 플레이를 펼친 김진희는 중3 시절에 U-16 여자대표팀에 뽑히면서 본격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인천디자인고에 입학한 뒤에도 팀을 전국 최강으로 이끌면서 연령별 대표팀을 계속 거쳤고' 고교 2학년 올라가서는 A대표팀에 뽑히면서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중학교 시절에는 하루 4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고 훈련만 했어요. 훈련 끝나고 집에 가는 척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훈련하고' 남들이 등교하기 전에 아침에 1시간 정도 개인 훈련한 뒤에 안한 척 하기도 했고..(웃음) 쉬는 날도 그냥 집에 있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아파트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체력훈련을 하곤 했어요.'

'그 시절에는 지는 것을 정말 싫어해서 볼을 한 번 빼앗겨도 어디라도 쫓아가서 다시 뺏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죠. 때로는 감정 조절을 못하고 너무 과격해져서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

'막상 대표팀에 갔을 때는 언니들이 너무 무섭고 규율도 강해서 힘들었어요. 대표팀에 안 뽑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진희가 첫 A매치를 치른 것은 1999년 AFC 여자 아시안컵이었다. 그녀는 이 대회 괌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11-0으로 대승한 경기인 만큼 김진희의 골이 가치가 높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본인에게는 축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골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시절에 저는 대표팀 내에서 막내로서의 역할이었어요. 아이스박스 나르고' 언니들 뒷바라지하고...제가 어떻게 하면 경기에 나갈까라는 생각보다는 언니들이 잘하길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컸죠. 그런 상황에서 괌전에 선발 출전했는데'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눈물이 계속 흐르더라고요. 곧 경기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눈물이 나는 거예요.'

'마음을 가다듬고 경기에 나섰죠. 상대가 약체라 많은 골이 터졌고' 저도 한 골을 넣을 수 있었어요. 솔직히 A매치 첫 골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어요. 별다른 기억이 없다고 해야 할까. 다만 고생했던 부모님 생각이 나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당시에 괌전이 끝나고 수능시험 때문에 한국으로 먼저 돌아와야 했어요.'




2001년 숭민 원더스 시절의 김진희 ⓒKFA 홍석균



대학 진학 후 부상 등으로 방황하다

인천디자인고를 졸업한 김진희는 고교 최대어였고' 여러 학교의 경쟁 속에 울산과학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6개월여만에 나오고 말았다. 김진희로서는 축구 인생에서의 첫 번째 시련이었다.

'울산과학대에 진학하긴 했는데' 여러 문제로 인해 적응하지도 못하고 6개월 만에 나오게 됐어요. 마침 박종환 감독님이 계셨던 숭민에서 저를 원해서 거기로 가게 됐죠.'

그러나 숭민에 입단해서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고관절 부상을 당해 1년여를 쉬면서 재활에만 몰두해야 했고' 그 뒤를 이어 숭민이 해체되는 불운까지 맛봤다. 졸지에 소속이 없는 미아가 되어버린 셈.

'시련의 연속이었어요. 숭민 입단하자마자 고관절을 다쳐서 1년을 쉬었고' 곧바로 팀이 해체됐으니까요. 어쩌나 하고 있는데' 마침 고교 시절 코치셨던 분이 울산과학대 감독으로 가시게 되었어요. 저보고 와서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다시 울산과학대에 가서 1년 반 정도 뛸 수 있었죠.'




2003년 AFC 여자 아시안컵 일본전에서의 김진희 ⓒKFA 홍석균



잊지 못할 2003년 AFC 아시안컵..월드컵 본선 티켓 획득

부상에서 회복해 대표팀에도 다시 돌아온 김진희는 2001년 AFC 아시안컵 명단에 포함됐다. 이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은 4강까지 진출했고' 일본에 1-2로 아쉽게 패하는 등 선전했다. 확실히 200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여자축구는 한 단계 성장했다.

'90년대에는 그냥 빠르게' 많이' 오래 뛰는 것만을 강조했어요. 중국이나 일본' 북한을 만나면 지는 것이 당연했고요. 2000년대 들어오면서 조금씩 상대의 전력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전술적으로도 준비하게 됐죠. 체력은 물론 기술적인 면과 팀 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해 그 부분을 노력했던 것 같아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김진희는 2003년 축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그 시작은 2003 AFC 아시안컵. 이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은 홍콩' 태국' 싱가포르를 완파하고 북한과 2-2로 비기면서 4강에 진출했다. 중국과의 4강전에서는 김진희가 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1-3으로 패하면서 3-4위전에 밀려났다. 3-4위전 상대는 강호 일본. 이 경기에서 이겨야만 미국 여자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대회를 앞두고 엄청나게 준비했어요. 훈련이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거든요.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현지에 가서도 먹는 것과 주변 환경까지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했죠. 협회에서 조리사 분까지 보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일본과의 3-4위전에서 여자대표팀은 1-0으로 승리하면서 2003년 미국 여자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월드컵 본선행을 이루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일본전에서는 (박)은선이가 퇴장 당하면서 10명이 싸웠거든요. 유니폼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뛴 것은 그 경기가 처음이었죠. 종료 휘슬이 울리고 모든 선수가 그냥 다 누웠어요. 너무 힘들어서 기뻐할 기력도 없었죠.(웃음)”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제 인생에서 일본을 꺾었다는 것이 정말 감격적이더군요. 그 대회를 치르면서 아시아에서도 이렇게 힘든데' 월드컵에 가면 얼마나 더 힘들까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2003년 미국 여자월드컵 프랑스전에서의 김진희 ⓒKFA 홍석균



2003년 여자 월드컵 출전..사상 첫 골..그러나 세계와의 벽 느껴

처음으로 아시아의 벽을 뛰어 넘어 세계로 진출한 여자대표팀과 김진희. 그러나 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나섰지만' 3전 전패로 물러나고 말았다.

가혹하게도 1차전부터 강호 브라질과 맞붙었고' 결국 0-3 완패를 당했다. 김진희는 선발 출장했지만' 월드컵 개막 2주 전에 당했던 발가락 부상의 여파로 후반 4분에 교체됐다.

“아시안컵에서 결과가 좋아서 자신감만 차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를 뒤돌아보고 다시 시작했어야 하는데' 안주했다고 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에 가기 2주 전에 발가락을 다쳐 기브스를 했어요. 월드컵에 갈 수 있느냐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고' 저는 포기한 상태였죠.”

“그런데 안종관 감독님이 믿어주셨어요. 출국 하루 전에 기브스를 풀고' 미국에 가서 2주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재활만 간단히 한 상태였죠. 브라질전도 본격적으로 운동한 지 1주일 만에 나가는 것이었어요. 결국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죠. 너무 아쉬워요. 그 때는 제가 한창 전성기였고 몸 상태도 최고였는데' 부상으로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브라질전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데' 3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차있더군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어쩌지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 남자 선수들이 월드컵 무대에 서면 긴장해서 아무 것도 못 한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갔어요.”

경기장 분위기에 눌리고 경기력에서도 밀렸던 브라질전이었지만'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는 선전을 펼쳤다. 김진희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후반 39분에 한 골을 내주며 0-1로 아쉽게 패했다.

“그 때는 우리가 슈팅도 많이 하고'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어요. 그런데 축구는 역시 기회를 못 살리면 지는 거잖아요. 우리가 골대도 맞추고 했는데' 골운이 따르지 않았어요. 제가 완벽한 어시스트를 하나 했는데' (박)은선이가 놓친 것도 아쉬웠고요. 정말 아까운 경기였어요.”




노르웨이전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여자월드컵 1호골을 뽑아낸 김진희 ⓒKFA 홍석균



2연패 후 맞이한 노르웨이전은 씁쓸한 추억을 안겨줬다. 전반 5분부터 선제골을 허용한 여자대표팀은 후반 7분까지 5골을 내주면서 무너졌다. 그러나 후반 30분' 한국 여자축구 역사에 남을 첫 번째 골이 나왔다. 주인공은 바로 김진희였다.

“개인적으로는 시작부터 좋지 않았어요. 경기장 도착해서 몸 풀려고 하는데 복통이 오더라고요. 벌써 선발 라인업은 정해진 상태에서 팀 사기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서 코칭스태프에 이야기하지 않고 치료를 받았어요. 수지침도 맞고 테이핑도 하고...”

“그런데 경기 시작하고 3분 만에 눈을 맞아서 전반 내내 공이 두 개로 보이더군요.(웃음) 후반 되어서야 정상을 찾았죠. 그 사이에 어느덧 0-5까지 벌어졌죠. 확실히 노르웨이가 잘하긴 잘하더라고요. 이후에 저는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위치를 변경했어요.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지금 경기 흐름상 나에게 공이 오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공 있는 곳을 쫓아다니자. 그러면 상대도 사람이니까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였어요.”

“그렇게 쫓아다녔는데' 상대가 골키퍼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것을 미친듯이 쫓아가니까 당황해서 헛발질을 하더라고요. 저도 당황해서 너무 엔드라인 쪽으로 치고들어가 각이 안보였는데' 여기서 안 차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그대로 슈팅했죠. 다행히 골이 되었어요.(웃음) 0-5 상황에서의 골이라 여기서 기뻐해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이었는데' 교민들도 와서 응원하고 있던 상황이라 손만 살짝 들어 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던 기억이 나네요.”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이 ‘그나마 네가 한 골이라도 넣어서 다행이다. 3경기 모두 영패 당했으면 많이 힘들었을텐데' 한 골 넣은 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라고 하셔서 고마웠죠.”

어쨌든 2003년에 경험한 월드컵은 한국 여자축구의 갈 길이 더 멀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그 무대를 직접 체험한 김진희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짜 말 그대로 세계의 벽이 높다는 것을 느꼈어요. 특히 노르웨이전에서요. 사실 경기 전에는 우리도 해볼 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 이상으로 파워와 조직이 대단하더라고요.”

“월드컵을 다녀온 뒤에 국내대회에 나갔는데' 일단 시야부터 달라진 느낌이었어요. 경기에 나서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이 때가 저의 최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현대제철에서 뛸 당시의 모습 ⓒKFA 홍석균



최강 현대제철에 입단..부상으로 시련 겪어

김진희는 2003년 여자 월드컵을 마치고 현대제철에 입단했다.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한 단계 성장한 김진희는 현대제철의 중심이 되어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부상이라는 암초가 다시 한 번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당시 발목을 심하게 다쳐 두 번을 수술했어요. 병원에서는 축구를 그만둬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현대제철의 안종관 감독님께서 복귀가 가능하다며 격려해주셨고' 2년여간 재활에 몰두했어요. 구단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고요.”

“사실 처음에는 그냥 은퇴하고 빨리 다른 길을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구단이나 감독님이 워낙 저를 믿고 자신감을 심어주니까 재활을 하게 됐죠. 1년 정도 재활만 하고 지내니까 우울증도 오더라고요. 그래서 스포츠 심리 치료를 병행하면서 재활을 했죠.”
만약 이 시점에서 부상이 김진희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유럽 무대에서 뛰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월드컵 이후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왔었기 때문. 김진희도 이 때 해외 진출을 하지 못했던 것을 아직도 아쉬워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구단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연봉 이야기가 나올 정도까지 진척됐었어요. 그래서 테스트를 받으러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목 수술을 받게 되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죠. 만약 그 때 진출을 했더라면 좀 더 높은 수준의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결국 김진희는 2년여 만에 부상에서 돌아와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곧바로 팀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았고' 대표팀에도 다시 선발됐다. 고통의 끝이라고 불리는 재활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다시 자신의 위치를 찾았던 것. 그러나 잦은 부상이 계속 그녀의 앞길을 막았고' 대표팀에서의 입지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한국 여자축구는 U-17 여자 월드컵 우승과 U-20 여자 월드컵 3위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정작 A대표팀은 2003년 이후 아직까지 월드컵 무대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김진희는 2006년 AFC 아시안컵까지 나갔지만' 월드컵 본선행을 일궈내지 못하고 대표팀 생활을 마쳐야 했다. 월드컵 무대를 한 번 밟아봤던 김진희로서는 후배들이 그 무대를 맛보지 못하는 점이 너무 안타깝다.

“U-17과 U-20 여자 월드컵을 보고 희망을 봤고' 부럽기도 했어요. 이런 기세라면 한 동안 나가지 못했던 월드컵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요. 사실 우리도 2003년에 나간 이후 다음 월드컵도 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거든요. 돌아보면 어느 정도 높은 곳에 도달했다고 안주했던 것 같아요. 후배들도 비슷한 경우인 경우라고 봐요. 어린 선수들이지만 느꼈을 거예요. 안주하지 말고 더 많이 노력하라고 당부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도 아쉬워요. 2006년 아시안컵을 앞두고도 무릎이 좋지 않았죠. 이제 예전의 몸을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서포트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점이 걸려요. 제가 워낙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신경 쓰지 못했는데'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 한 마디 해주고' 뒤에서 도와줬어야 했어요.”





인터뷰 중인 김진희 ⓒKFA 홍석균



2010년을 끝으로 은퇴..축구행정가의 꿈을 향해

대표팀에서는 물러났지만' 김진희는 2010년까지 현대제철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김진희는 현역 은퇴 몇 년 전부터 자신의 꿈인 축구행정가의 길을 가기 위해 조금씩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09년 무렵에 은퇴를 결심했던 그녀지만' WK리그 출범을 함께 하자는 안종관 감독의 만류로 2년을 더 뛰었던 것.

“2006년을 끝으로 대표팀은 물러났어요. 이제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었고' 공부와 소속팀에서의 운동만으로도 벅찼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대표팀에 큰 도움이 되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도 않았으니까요.”

“은퇴를 생각할 무렵에 감독님께서 이왕이면 새로 출범하는 WK리그 무대는 뛰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주겠다고 하셨죠.(웃음) 아쉬운 점은 마지막에 부상이 겹쳐서 2010년 챔피언결정전도 못 뛰고 은퇴한 것이에요. 은퇴 경기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시즌 도중에 부상이 와서 그냥 그만둬야 했으니까요.”

현역 은퇴 후 1년간 공부에 매진했던 김진희는 올해 말에 호주로의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여자 축구 선수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 AFC나 FIFA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녀의 도전 의지는 매우 강하다.

“미국 월드컵 이후 AFC나 FIFA에서 일하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한국의 여자 축구 선수들은 은퇴 후 지도자를 하거나 결혼해서 축구계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마케팅이나 행정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길을 가보고 싶었어요. 그 길을 위해 영어 공부도 계속 해왔고' 이번에 호주에 가서 대학원에 입학하는 거예요. 입학허가서는 받았는데' 랭귀지 코스를 15주 정도 받고 입학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꿈을 이루고 싶어요.(웃음)”


글=이상헌

* 대한축구협회 기술정책 보고서인 'KFA 리포트' 2012년 3월호 '나의 선수시절' 코너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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