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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티FC, 새 판을 만드는 괴짜들
2021-07-14 16:57:59 587
폭 430mm, 높이 288mm 판형에 너티FC의 이야기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그들은 새로운 판을 만든다. 기성의 판을 흔드는 MZ세대의 도전이 시작됐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축구 동아리 활동이 끝났어요.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여러 팀을 떠돌아다녔는데, 저와 딱 맞는 팀을 못 찾겠더라고요. 단지 축구를 하는 것, 경기에서 이기는 것 말고 축구 자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내가 그런 팀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죠.” - 정지현
너티FC의 회장 정지현 씨는 대학 시절 축구 동아리 활동에 열정적이었다. 선수 활동뿐만 아니라 대회를 주최할 정도로 축구에 푹 빠져 지냈다. 대학 내 여자축구클럽이 점차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너티FC의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정지현 씨는 축구 동아리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 중 마음이 맞는 이들을 모아 2019년 너티FC를 창단했다. 창단 당시 멤버는 5명, 현재는 17명이다.
정지현 씨는 너티FC 창단에 영감을 준 영국 아마추어 여자축구클럽 로망스FC를 소개했다. DJ, 디자이너, 스케이트보더, 영화감독 등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 축구를 매개로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시도하는 팀이다. 정지현 씨는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팀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너티FC가 탄생했다.
20~30대 여성들로 구성된 너티FC는 새로움을 추구한다. 너티FC의 C는 Club(클럽)이 아닌 Creatives(크리에이티브즈)다. 단순히 축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콘텐츠 창작자의 관점에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축구를 다루고, 즐긴다는 의미다. 너티(Nutty)라는 이름 역시 이들의 괴짜 같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태도를 표현한다.
너티FC에는 축구 지도자부터 축구 산업체 종사자, 공기업 직장인, 회사원,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학원생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성향의 멤버들이 있다. 너티FC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한 달간의 준회원 기간을 거치는데, 축구 실력보다는 축구를 얼마나 창의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다. 정식 입단 여부는 구성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니까 어디 가서 축구를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어요, 평생 대학 축구 동아리에서 뛸 수는 없으니까 제 축구 노후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지역구 여성축구단도 알아봤지만 선수 출신이거나 그에 준할 만큼 잘하지 못하면 우리 나이대에는 경기 출전이 어려운 환경이더라고요.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너티FC를 알게 됐어요.” - 김민정
비교적 최근에 너티FC에 입단한 김민정 씨는 나이와 실력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축구를 즐기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10대 시절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그는 수많은 아마추어 스포츠클럽의 존재를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학교 스포츠클럽은 물론 청년, 중년, 노년 가릴 것 없이 많은 여성들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의 경험에 비춰 김민정 씨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축구를 즐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너티FC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한국의 경우에는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가 장려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10대 때는 학업에 대한 압박과 여성의 체육활동을 등한시하는 분위기로 인해 마음껏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스포츠에 뛰어들지 못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창단 멤버인 김선경 씨는 용감히도 대학생이 된 후 동아리를 통해 처음으로 축구에 도전한 경우다. 중·고등학생 때 억눌려온 스포츠 참여에 대한 욕구가 “가장 거칠어 보이는 종목” 축구로 발현된 것이다. 그는 너티FC와 같은 팀이 더 많이 생겨야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대학을 졸업하면 사실상 축구 경력이 끊기는 환경인 것 같아요. 지역구 여성축구단이 있긴 하지만, 40~50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팀이 대부분이라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단적으로 훈련 시간만 봐도 평일 오전인 경우가 많아요. 20~30대 직장인들은 참여할 수 없죠. 대회에 나갈 때도 연령대별로 인원 제한이 있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참가가 어려워요. 그래서 더욱 너티FC 같은 팀이 많아져야 해요. 비슷한 팀들끼리 대회를 만들고, 리그도 만들고, 그러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기는 거죠. 너티FC는 그 판을 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요.” - 김선경
새로운 판을 만들겠다는 너티FC의 노력은 축구장 밖에서도 펼쳐진다. 창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면서 계획했던 많은 오프라인 행사들이 취소됐지만,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간간이 너티FC가 지닌 정체성과 영향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다른 축구 콘텐츠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풋볼 라이프 2020 : 축구라면 아무래도 좋다’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김선경 씨 외 너티FC 멤버 2인은 키킷(KICKiT)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꾸준히 축구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올해 너티FC가 뛰어 노는 판은 더 넓어졌다. 정지현 씨는 영국 아마추어 여자축구클럽과의 콘텐츠 콜라보레이션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축구 용품사와의 협업을 통한 캠페인성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너티FC의 유니폼 디자인에 여자축구 문화 발전을 위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여자축구의 열악한 저변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 축구 동아리는 이제 많이 활성화됐지만, 다른 여자축구 저변은 아직 제자리인 것 같아요. 너티FC가 여자축구 저변 확대 면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요.” - 정지현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만히 있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축구가 좋고, 더 나은 환경에서 축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고요. 그렇게 하나둘씩 노력하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요?” - 김선경
“여자들은 운동을 싫어한다고, 여자들에게 축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에요.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여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야하고, 자라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바꿔나가면 그런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너티FC가 거기에 앞장서고 싶어요.” - 김민정
때로 어쩌면 자주, 기성의 판을 흔드는 일은 괴짜의 일탈로 여겨진다. 훈련할 축구장 하나 빌리는 데도 매번 애를 먹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도전은 이어진다. 일탈이 계속되면 일상이 되는 법이다. 축구라면 아무래도 좋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7월호 'Team ‘HER’stor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
사진=너티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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