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TV여자A

한국여자축구 최초 ‘엄마 월드컵 대표’, 황보람의 위대한 도전

2019-06-04 10:55:29 1,232


황보람과 딸 봄이
 

여자축구선수는 결혼과 출산 후 자연스럽게 은퇴해야 한다?’ 황보람(32, 화천KSPO)에게는 그저 편견일 뿐이다. 14개월 된 딸의 엄마 황보람은 한국여자축구 최초의 엄마 월드컵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 나선다. 편견을 깬 위대한 도전에 나서는 황보람을 ONSIDE가 만났다.

 

황보람은 결혼해서 출산까지 했던 선수다. 나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지션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 능력을 발휘해 나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에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의 윤덕여 감독은 프랑스 여자월드컵에 나설 최종 명단 23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황보람에 대한 믿음을 이와 같이 전했다. 전 세계 여자축구 최고의 들이 모이는 여자월드컵, 그 찬란한 무대에 엄마 국가대표가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황보람은 한국여자축구 사상 최초의 엄마 월드컵 대표. 4년 전인 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팀의 16강 진출을 도왔던 그는 이번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도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황보람이 14개월 된 딸 봄이의 엄마라는 것, 그뿐이다. 월드컵을 향한 열정은 그대로다. 몸상태, 기량 모두 변치 않았다. 여기에 경험까지 더해졌다. 한층 진화한 황보람 앞에 엄마라는 타이틀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이기에 막중한 책임감까지 가질 수 있다. 선수로 두 번째 월드컵에 나서는 황보람은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더 편하게 축구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황보람은 자신의 노력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해 생애 두 번째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노력가족의 도움...꿈은 이루어진다

황보람은 선수 인생의 두 번째 여자월드컵을 차분히 준비 중이다. 하지만 경험을 해봤다고 해서 긴장감까지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다. 그만큼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베테랑에게도 무겁게 다가오는 대회다. 황보람은 그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4년 전인 캐나다 여자월드컵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나갔어요. 월드컵이라는 무대 자체가 저에겐 처음이었으니까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그랬을 거예요. 이번 프랑스 여자월드컵은 그래도 월드컵 경험을 해본 상태에서 나가는 거니 기분이 더 남다른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분명 있어요.”

 

캐나다 여자월드컵 당시 중앙수비수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던 황보람은 이후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1년여의 공백기를 가진 뒤 올해 WK리그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전성기 때와 변함없이 노련하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치며 프랑스 여자월드컵을 앞둔 윤덕여호에 이름을 올렸다. 20163월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이후 32개월 만이다.

 

엄마황보람의 월드컵 입성은 한국여자축구 사상 최초다. 한국의 여자축구선수가 출산 후 그라운드에 복귀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현실을 놓고 봤을 때, 황보람의 월드컵 입성은 한 편의 드라마나 마찬가지다. 여자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 이후 많은 언론이 황보람을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월드컵에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발탁되니까 영광스러워요. (한국 최초의 엄마 월드컵 대표라는) 부담감도 더 크고요. 어쨌든 최초라는 건 쉬운 길이 아니잖아요. 제가 잘 기반을 쌓아놔야 후배들도 축구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황보람의 월드컵 입성은 가족들의 도움 없이 단연코 불가능했다. 두 살 연상의 남편 이두희 씨는 황보람이 출산 후 그라운드 복귀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곁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라운드에 복귀 한 후에도 열혈 내조는 계속됐다. WK리그 일정 때문에 황보람은 화천에, 남편과 딸은 집이 있는 대전에 떨어져 지내는 상황이지만 황보람이 타지에서 육아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이두희 씨는 모든 면에서 세심히 신경 썼다. 비록 딸이 어린 탓에 아직은 장거리 이동이 힘들어 화천 홈경기를 보러오지는 못했지만, 대전과 가장 가까운 보은상무 원정 경기를 오게 되면 어김없이 남편과 딸이 함께 경기장을 찾아 황보람을 응원했다.

 

제가 아이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니까 남편이 운동에만 신경 쓰라고, 집안일은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든든하죠. 그래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어요. (숙소 생활 때문에) 가끔 집에 가면 아이가 저랑 안 떨어지려고 해요. 14개월이니 한창 엄마를 찾을 나이거든요. 저한테만 붙어있고, 저만 찾고, 없으면 울고왜 엄마들이 화장실에 갈 때 문을 못 닫는지 알 것 같다니까요.”

 

캐나다 여자월드컵 당시 황보람의 남자친구였던 이두희 씨는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 직후 경기장 관중석에서 보람아 나랑 결혼해줄래?’라는 피켓을 들며 깜짝 프러포즈를 한 것으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사랑꾼남편은 황보람의 월드컵행이 결정됐을 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다녀 온 아이 보면서 펑펑 울었대요(웃음). 남편이 좀 감정적이거든요. 기사를 보면서 바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계속 떨어져있다 보니 이래저래 힘들 거예요. 저도 떨어져 있을 때는 남편이랑 아이랑 영상통화로 그리움을 달래는데, 너무 보고 싶을 때는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가족을 향한 애틋함은 황보람이 프랑스 여자월드컵 출전을 향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출산 후 100일 동안은 그 어떤 운동도 하지 않고 몸조리에 집중했고, 그 이후에는 필라테스를 했어요. 다음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볼을 만지기 시작했죠. 힘들었냐고요? 그저 빨리 몸 상태를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뿐이어서 힘든 건 잘 느끼지 못했어요. (화천KSPO)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죠. 더욱이 아이 엄마라서 힘들어 한다라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았어요.”

 

편견 깨기다. 흔히 아이의 엄마에게 드리워지는 경력 단절이라는 그늘을 벗어나는 게 황보람에게는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축구선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를 낳으면 경력 단절을 겪죠. 아이를 생각해서 엄마들의 꿈을 포기한다는 건데, 저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고요.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 가족들이 도와줄 수 있다면 (자신의 꿈을 지켜나가는 것을) 너무 어렵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황보람은 자신에게도, 딸인 봄이에게도 당당해지고 싶다. “아직은 아이가 너무 어려 제가 축구선수라는 걸 잘 몰라요.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엄마가 월드컵을 뛴 선수라는 걸요. 주변에서 많이들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가 알게 될 때까지 그 일을 계속 하라고요. 그러면 아이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거라고요. 그런데 아이가 이제 두 살인데, 전 얼마나 더 축구를 해야 아이가 (제가 하는 일을) 알게 될 런지(웃음)” 


황보람은 후배들이 결혼하고 나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길 희망했다.
 

더 많은 여자선수들이 결혼하고도 축구를 이어갔으면

1987년생인 황보람은 이번 프랑스 여자월드컵 대표팀의 최고참이다. 1984년생인 김정미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자연스레 황보람이 맏언니의 자리를 차지했다. 여자대표팀 경력은 어느새 10년을 넘어섰다. 2006년 피스퀸컵을 통해 대표팀에 데뷔한 그는 출산 전인 2016년 리우올림픽 최종예선까지 총 42경기를 소화했다.

 

“4년 전 월드컵에서는 그저 선배 언니들만 보고 다녔는데 지금은 제가 최고참이 됐네요. 대표팀에 데뷔한 2006년에는 대학생(영진전문대)이어서 그런지 그때는 그저 언니들도 너무 무섭고 말 섞기도 힘들고 아무것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애들이 모두 활발하고 언니들하고도 잘 지내죠. 항상 분위기가 좋아요.”

 

올해로 12년 차를 맞이한 WK리그도 마찬가지다. 황보람은 2008년 지금은 해체한 이천대교에서 WK리그에 데뷔해 2015년 말 화천KSPO로 이적해 현재까지 뛰고 있는데, 그는 요즘 후배들에게 결혼을 장려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보다 한층 유연해진 문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선수들이 결혼하고 축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후배들이 애인은 있어도 경력 단절을 걱정해 결혼까지는 고려하지 않는 듯한데, 결혼하고도 충분히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걸 제가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유럽의 여자축구를 보면 엄마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후 아이와 그라운드에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잖아요. 저에게도 그 모습이 꿈이었는데, 지금 제가 그 꿈을 이룬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해요. 사실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저 말고도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아이와 그라운드에서 뛰어노는 엄마 선수를 꿈꾸더라고요.”

 

황보람이 가는 길은 여자축구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기도 하다. “화천KSPO 여자 코치님이신 송주희 코치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분도 선수 출신이시고 결혼하고 나서도 대표팀에서 뛰셨거든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서 더 이상 축구를 이어가기 어려웠다고, 제가 코치님의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짠해요. 지금도 송주희 코치님이랑 대화하다보면 코치님이 가끔 눈물을 보이세요. (저한테) 너무 고맙다고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팀에서도 출산한 여자선수를 받아주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요. 제 몸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화천KSPO에서) 흔쾌히 오라고, 당연히 받아준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모두의 기대를 안은 황보람은 다시 한 번 축구 인생에 중요한 도전에 나선다. 프랑스 여자월드컵은 어쩌면 황보람에게 있어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 있기에, 그는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번 월드컵을 준비 중이다.

 

“‘저 선수 정말 잘 뽑았다는 말을 듣는 게 이번 월드컵에서 제가 가진 목표예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제가 과연 월드컵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시는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분들의 우려를 씻기 위해서라도 저는 그라운드에서 제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곁에서 힘이 되어준 가족들을 향해서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가족들 덕분이에요. 응원하고 도와준 만큼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정말 잘하고 올 테니, 남편이 조금만 더 고생해줬으면 좋겠네요(웃음).”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6월호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6월호 보기(클릭)  

 

=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 카피

[그라운드의 적막을 깨라] ‘다 막아줄게’ 철벽 골키퍼 3인방

[그라운드의 적막을 깨라] 우리가 골문 앞에서 지킬게

목록
이전게시글 다음게시글

여자A

여자대표팀, 콜롬비아와 국내에서 A매치 2연전

여자A

여자대표팀, 호주 원정 2차전서 0-2 패

여자A

‘강채림 선발’ 여자대표팀, 호주 원정 2차전 선발 명단 발표

여자A

여자대표팀, 호주 원정 친선경기 1차전서 0-1 패배

여자A

‘케이시 선발’ 여자대표팀, 호주 원정 1차전 선발 명단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