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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박용우 아버지 박공재 씨, ‘사커 대디’의 열정을 말하다

2016-07-20 13:48:00 19,048

올림픽 대표팀 박용우의 아버지 박공재 씨는 요즘 매일이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찼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애틋한 관계이기도 하다. 올림픽 대표팀의 미드필더 박용우(22)와 그의 아버지 박공재(54) 씨도 마찬가지다.

이 ‘부자(父子)’를 묶는 끈은 조금 특별하다. 박용우에게 박공재 씨는 아버지이면서 축구 선배다. 박공재 씨는 아마추어 팀인 한일은행에서 뛰었던 축구 선수 출신이다. 1986년에 입단해 1992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은행에서 지점장으로 근무 중이다.

축구 선수로서 삶을 이미 경험해봤기에,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아들을 보며 속으로 수십 번 울고 웃었다. 박공재 씨는 그래서 이번 리우 올림픽이 더욱 특별하다. 겉으로는 엄하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아들을 향한 마음으로 가득 찬 ‘사커 대디’ 박공재 씨를 만났다.

기대보다는 걱정 가득
박공재 씨를 만나자마자 깜짝 놀랐다. 눈하고 코가 박용우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아들이니 당연히 닮지 않았겠습니까?” 박공재 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박공재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인터뷰 전날 올림픽 대표팀이 결전지인 브라질로 출국했다. 박용우도 출국 명단에 포함돼 함께 나갔다. 아들의 출국을 지켜보는 아버지는 설렘 반, 긴장 반이다. 아니 어쩌면, 아들보다 더 많이 긴장했다.

“좋으면서도 걱정이 많이 되네요.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가는 거잖아요. 소속 팀에서 뛰는 거랑은 달라요.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잖아요. 또 이번에는 올림픽에 구기 종목이 많이 안 나가더라고요. 축구가 자연스레 관심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박용우도) 가서 잘해야 하는데, 만약 부담을 갖게 된다면 자기 플레이가 나오지 않을 테니 부모로서는 걱정되기도 해요.”

박공재 씨는 아들의 얼굴을 출국 당일 아침에 잠깐 봤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잡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한 가지였다. ‘부담을 떨치라’는 당부였다. “어제 아침(18일)에 용우가 잠깐 집에 와서 얼굴만 봤어요. 부담 갖지 말고 자신 있게 플레이하라고 했죠.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부담은 버리라고 했어요. 아들이 뭐라고 했냐고요? 그냥 단답형으로 ‘네’라고 하던데요(웃음). 그리고 같이 ‘파이팅’을 한 번 외쳤죠.”

박공재 씨는 박용우의 올림픽 대표팀 발탁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기에 믿음이 있었다. “사실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겠는데, 저는 아들의 최종 엔트리 합류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옆에서 꾸준히 봤기에 잘 알죠. 또 신태용 감독님께서 우리 아들을 그동안 많이 중용해주셨잖아요. 큰 걱정은 하지 않았죠.”




건국대 시절의 박용우



축구, 이왕 할 거면 제대로
박용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박공재 씨는 처음에는 아들의 축구 선수 생활을 반대했다. 너무도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걸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아요.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일부분인데, 어찌됐든 ‘밥벌이’는 해야 하죠. 사실 우리 때는 프로에 못 갈 경우 아마추어 은행 팀 등 선택의 길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아니잖아요. 거의 다 계약직이고요. 용우가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앞길이 불투명하고 힘든 길이니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정말 안 시키고 싶었죠.”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결국 축구 선수를 향한 아들의 꿈을 승낙한 박공재 씨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축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바로 그 것이었다.

“용우가 정말 축구를 하고 싶다고 간절히 이야기했어요. 결국 한 가지 약속을 했죠. 절대로 중간에 관두는 일은 없는 걸로요. 중간에 관두게 되면 부모와 자식 관계도 끊어질 거라고 ‘엄포’를 놨어요. 용우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정말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죠.”

이왕에 시작한 만큼 제대로 해야 했다. 박공재 씨는 아들이 운동할 때만큼은 아버지가 아닌 철저한 축구 선배였다. 박용우가 어린 시절 유독 전학을 많이 다닌 이유도, 제대로 된 곳에서 축구를 해야 한다는 박공재 씨의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용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오마초에서 축구를 시작한 이후 초등학교 한 번, 중학교 세 번, 고등학교 두 번을 옮겨 다녔다.

본의 아니게 ‘팔도유랑’을 한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선수 생활을 해 본 지도자에게 맡기고 싶었어요. 감독을 보고 학교를 옮겼는데, 그 감독이 어떤 이유로든 학교를 나가게 될 경우 그 때마다 전학을 다녔죠. 게다가 옮긴 학교에서 선수들을 때리거나 엄한 말을 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옮겼어요. 어떤 학교에서는 선수들을 때려서 상처를 입혔기에 제가 그걸 보고 학교에 가서 용우한테 ‘당장 짐을 싸서 나오라’고 한 적도 있었죠.”




박공재 씨는 박용우의 FC서울 입단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쟤를 누가 데려갈까...”
알고 보면 박용우의 학창 시절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금만 가능성을 피워보려 하면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금방 풀이 꺾였다. 덩달아 박공재 씨도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기가 죽었음에도 내색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마음고생이 정말 많았죠. 저도 축구 선수 출신이기에 잘 알아요. 어찌 보면 제가 옆에서 용우에게 시험 문제의 답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본인은 아직 답을 잘 못 쓰고 있죠.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 제가 아버지라서 아쉬운 점만 더 보이나 봐요.”

춘천기계공고 시절 만났던 유상철 현 울산대 감독은 지금도 고마운 존재란다. “유상철 감독을 만나고 용우가 완전히 올라섰죠. 유 감독님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후 용우를 비롯한 또래 선수들이 첫 제자들이래요. 정말 잘해줬죠. 기술적인 부분이나 멘탈적인 부분 모두요.”

하지만 FC서울 입단은 아버지인 박공재 씨도 상상할 수 없었던 소식이었다. “사실 용우가 대학에서 포지션을 자주 변경했어요. 춘천기계공고 시절부터 골키퍼까지 봤던 애죠. 제 입장에서는 조금 걱정됐어요. 한 자리에서 꾸준히 해도 잘할지 못할지 모르는 게 현실이잖아요. 어느 날 가서 경기를 보면 센터포워드를 보고 있고, 또 다른 날 가서 경기를 보면 수비수를 보고 있더라고요. 답답했죠. 쟤를 대체 누가 데려갈 건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박공재 씨는 박용우의 FC서울 입단을 “가문의 영광”으로 표현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FC서울 스카우트팀이 용우를 관심 있게 봐준 것 같아요. 스카우트팀과 최용수 전 감독님까지 모두가 다 용우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죠. 누구 하나라도 반대했으면 못 갔을 거예요. 아무래도 용우가 기본기는 탄탄하고 운동장에서 큰 실수가 없으면서 신체적 조건도 좋은 점(186cm, 80kg)을 잘 봐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용우는 FC서울 입단 후 가능성을 꽃피우며 주전 입지를 굳혀갔다. 그러나 초반에는 올림픽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기존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인 이찬동(광주FC)이 워낙 건재했다. 박공재 씨는 아쉬움이 컸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들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 2015년 11월, 박용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대한축구협회에서 전화가 왔어요. (이찬동의 부상으로) 제가 올림픽 대표팀에 대체 발탁됐대요.” 박공재 씨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박공재 씨는 아들과 찍은 사진이 많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브라질로 출국하기 전에 한 장 찍어뒀다



‘독설해서 미안해’...아버지의 진심
박공재 씨는 오는 8월 3일 브라질로 출국할 예정이다. 아들의 역사적인 순간을 조금이라도 가까운데서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리우 올림픽은 박용우가 우여곡절 끝에 올라온 자리다. 그리고 박공재 씨 자신이 현역 시절 밟아보지 못했던 무대였기에 더욱 간절했다.

“용우는 정말 착해요. 내 아들이지만 정말 성실한 아이고요. 그거 하나는 제대로 보장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용우를 통해) 대리만족을 많이 해요. 제가 못 나갔던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용우가 이뤄줬으니 정말 고마워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에게도 정말 자랑스러운 아이입니다.”

무뚝뚝하고 어색한 영락없는 ‘부자’지간이다. “평소 아들이랑 모바일 메신저를 많이 써요. 경기 끝나면 수고했다고 해주고, 다친 데도 없는지 물어보죠. 그리고 그날 경기가 어땠는지 제 나름대로의 평가도 해줘요. 그러면 용우는 항상 단답형이죠. ‘네’라고 하는 게 전부예요(웃음).”

하지만 박공재 씨는 그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한다.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진심이었다. “아들에게 마음속에 감춰두고 못한 말은 없어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제가 ‘독설’을 많이 했거든요. 못하면 엄청 혼냈죠. 사실 그게 부모로서 많이 미안해요. 아들을 위해서 한 건데 지나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더 크네요. 그래도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나갔으니 자기 실력을 잘 발휘해줬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다치지 말고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글=안기희
사진=FAphotos, 박공재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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