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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박승호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2024-05-10 08:15:51 204

 

 

인생의 타임라인은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억된다. 축구 선수 박승호의 타임라인에는 대부분 시련의 고개가 자리한다. 그때마다 재능에 의존하지 않고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고, 위기 다음 다가올 기회를 기다렸다. 그 믿음으로 고비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거짓말처럼 큰 보상이 주어졌다. 그렇게 박승호는 점점 강해졌다. 이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젊은 공격수로 주목받고 있다.

 

박승호라는 이름 석자를 강렬하게 안긴 장면은 희비가 뒤섞인 기이한 순간이었다. 2023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온두라스를 상대로 먼저 2골을 내주고 끌려가자 김은중 감독은 후반 8분 박승호를 교체 투입했다. 상황은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후반 13분 김용학의 추격골이 터졌다. 그리고 4분 뒤 이승원의 코너킥을 박승호가 절묘하게 돌려 넣는 헤딩 동점골을 만들었다. 세계의 유망주들이 모인 최고의 연령별 대회에서 골을 터트리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그 기쁨은 불과 3분 뒤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부상이라는 슬픔으로 바뀌었다. 상대 선수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돌아서다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결국 박승호는 대회 중도에 돌아와야 했지만, 동료들은 그런 박승호를 생각하며 악착같이 뛴 끝에 4강 진출을 이뤄냈다. 축구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순간 부상으로 무너졌지만, 박승호는 불과 3개월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오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재활을 충실히 한 덕에 주어진 기적 같은 회복이었다.

 

소속팀 인천유나이티드로 돌아온 박승호는 후반기 팀의 반전을 이끈 숨은 무기였다. K리그, 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느라 지친 팀의 공격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올 시즌은 개막전선발 출전을 시작으로 무고사, 제르소와 함께 인천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 중이다. 울산, 대전, 광주를 상대로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2골 1도움)를 올려 2024시즌 K리그 월간 영플레이어 첫 수상자가 됐다. 

 

프로 2년차에 맞은 눈부신 전개지만, 박승호는 스스로 취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이 순간을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울인 훈련과 준비의 루틴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중이었다. 축구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정성과 노력을 들인다는 박승호는 가슴에 품고 있는 더 큰 꿈을 향해 매일 자신과의 다짐을 지켜 나가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선수였다.

 

쟁쟁한 공격수들 사이에서 꾸준히 선발로 나서 출전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노랑 유니폼이 박승호.
 

프로에서 맞은 두번째 시즌인데 확실히 진일보한 모습입니다. 8라운드까지 전 경기 선발 출전에 평균 출전 시간이 85분이 넘었으니 상당한 존재감입니다. K리그 선정 3월 영플레이어에도 뽑혔습니다.

제가 저를 평가할 위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경기장에 나서도록 기회 주신 조성환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아픔과 시련이 있었어요. 그랬기에 지금 좋은 모습을 팬들께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플레이어 수상이 결정 났을 때 믿기지 않았어요. 경기장에서 전달수 대표이사님이 건네주신 트로피를 받고 실감했어요. 절대 제가 잘해서 받은 게 아니고 공격포인트를 올리도록 옆에서 도와준 동료들 덕에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후반기에 이어 올해 초에도 좋은 퍼포먼스를 이어왔으니 그 상으로 확실히 더 주목받긴 했습니다.

수상 후 자만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동료인 천성훈 형이 해 준 얘긴데요. 깊이 생각하다 보니까 괜히 그런 말 한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성훈이 형도 작년에 받아본 적이 있어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도 수상 소식에 “축하한다”라는 짧은 말로 마치셨어요. 그래도 그 말이 가장 듣기 좋았어요. 겉으로 표현을 잘 안 하시지만 속으로 굉장히 좋아하셨을 거로 생각해요. 

 

경기 상황에 따라 포지션을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전전 같은 경우 윙포워드로 시작해, 스트라이커로 이동했다가 나중에는 중앙 미드필더까지 봤는데요. 

인천에서 미드필더를 처음 봤던 건 작년 AFC 챔피언스리그 요코하마전이었는데, 그때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그 경기를 통해 앞으로도 그런 포지션 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확실한 자기 포지션 없이 겉돈다고 하실 수 있지만 저는 어느 위치에 서든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경기장에 서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늘 감사합니다. 제가 그걸 감당해 내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고요. 그래서 항상 잘 준비하려고 합니다. 

 

출전 시간, 풀타임 빈도가 늘어나면서 체력 소모에 따른 경기력 관리도 중요한 숙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프로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많은 시간을 경기에서 꾸준히 소화하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체력적인 문제는 아직 없어요. 제가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은 부분이 있고요. 제 기준에서는 몸 관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조금씩 힘들어지는 점이 있습니다. 주말, 주중으로 이어지는 경기 일정에서 그런 걸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선수라는 주변 평가가 많더라고요. 하루의 루틴이 어떤가요?

보통 오전에 개인 훈련 후 점심 식사, 휴식, 오후 팀 훈련 1시간 전 미리 보강 운동 후 단체 운동, 저녁 식사를 한 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잠드는 게 365일의 루틴입니다. 그 루틴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어요. 프로에 와서는 경기 횟수가 많다 보니까 운동량 조절이 필요하더라고요. 부상 위험도와 상관관계가 있거든요. 그래도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은 빠트리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 파워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그 부분을 강화하는 쪽에 집중합니다. 휴식일에도 제가 별도로 다니는 트레이닝센터로 가서 개인 운동량을 꼭 채웁니다.

 

축구 선수의 길에 접어들고 성장한 과정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후 수업으로 축구와 연을 맺었어요. 이미 친형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따라갔다가 제가 더 재능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정식으로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형은 금방 그만뒀고 제가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다 수원 율전초등학교 감독님 눈에 들어 전학을 가며 정식 축구부 생활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용인축구센터를 거쳤는데 특별한 재능으로 눈에 띄는 쪽은 아니었어요. 용인축구센터 원삼중학교에 들어갈 때도 공개테스트에서 합격해서 간 케이스입니다. 축구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늘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고, 매사 성실하게 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성과가 안 나올 때가 더 많았죠. 그걸 극복하는 게 제 축구인생의 반복되는 과제였어요. 제가 다닐 때는 용인축구센터가 학년별로 기준에 도달 못 하면 중도에 떠나야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제가 정리 1순위였던 적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가장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쟤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해서 남을 수 있었죠. 

 

용인축구센터에서 보낸 6년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일단 능력 있고, 기술 좋은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따라 하려고 애썼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실력 향상이 이뤄졌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은 주변 동료들 덕분에 가능한 거라고 봅니다. 덕영고에서 이영진 현 창원FC 감독님의 지도를 받은 것도 행운이었어요. 프로의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지도해주셨고, 기술적인 축구를 강조하셔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단국대 재학 시절 박승호가 U리그 경기에서 슈팅을 날리고 있다.
 

대학 무대를 거쳐서 프로에 왔습니다. 박승호 선수에게 단국대에서의 1년이 미친 영향도 궁금합니다. 

원래 목표는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하는 것이었어요. 대학으로 가면 프로 진출이 더 어려워진다는 말을 계속 듣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목표 의식이 강했지만 현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죠. 대학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으니까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상실감이 있었어요. 처음에 입학해서는 생각이 많아 주춤거리며 운동에 집중 못 한 시간도 있었어요. 그때 만난 배일환 코치님(현 부산아이파크 스카우트)이 멘탈을 바로 잡아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결국 좌절감을 극복하고 다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단국대에서 처음엔 경기에 못 나섰는데 같은 1학년인 이준상(현 성남FC), 이승원(현 강원FC) 같은 친구들은 경기에 나갔어요. 그걸 보며 제 안에 경쟁심과 질투심이 생겼어요. 나도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하며 쫓아갔죠. 그러다 보니 박종관 감독님께서 어느 순간부터 그 노력을 인정해 주셨고 경기에 출전시켜 주셔서 3, 4학년 형들과 경기를 뛰게 됐습니다. 제가 마음의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승원, 이준상 선수까지 셋이서 단국대의 운동 분위기를 이끈 1학년으로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입학하고 받은 단국대 축구부의 첫 이미지는 자율이었어요. 개인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저희 셋 다 운동 욕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 명이 나가면 나머지 둘도 따라 나갔죠. 어느 날은 힘들어서 쉬고 싶은데 그러면 꼭 그중 한 명은 하러 가자고 해요. 그러면 뒤쳐질 수 없으니 나갔어요. 그게 반복된 것 같아요. 저희가 개인 운동을 주도하니까 다른 동기들도 따라 나오고, 그러면서 단국대 전체가 본 훈련 전에 미리 운동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었습니다. 지금은 각기 다른 팀에 있지만, 축구적인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털어놓는 대상도 승원이와 준상이에요. 그 친구들과 함께 보내며 기울인 노력 덕에 제가 지금 프로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게 많은 걸 가르쳐 주고, 힘들 때 위로해 준 친구들이죠. 그런데 반대로 두 친구도 프로 와서는 힘든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제게 서서히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더라고요. 승원이는 이제 김천 상무로 가는데, 거기서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거 같아요. 

 

2022년 U리그 최고의 공격수였기에 프로에 갈 때 선택지가 더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인천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대학 입학하고 1년 동안 죽으라 열심히 했는데 프로에 못 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마음가짐을 먹었어요. 박종관 감독님께서 2학년까지 하고 가는 걸 추천하셨는데 저는 반드시 1학년 마치고 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승원이와 준상이는 여름 전에 이미 프로팀과 계약을 마친 상태라 더 초조했죠. 후반기에 아주대와 리그 경기를 하는데 조성환 감독님이 인천 코치님들과 그 경기를 보러 오셨어요. 저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아주대 선수를 보러 오셨던 걸로 알아요. 그 전에 추천을 받아 저를 보러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는 감독님 기준에 못 미쳤는지 아직은 아닌 거 같다며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배일환 코치님이 경기 전에 제게 “인천 코칭스태프가 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오늘 잘 해보자”는 얘기를 해주셨고, 그 말을 듣고 각성했는지 해트트릭을 했어요. 그걸 보고 조성환 감독님이 마음을 바꿔 저와 계약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한 걸로 알아요. 프로에 오고 난 뒤 조성환 감독님이 그날 얘기를 해주셨는데, 단순히 해트트릭을 해서가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미친 듯이 뛰면서 달려드는 자세를 보고 뽑기로 결심하셨다더라고요. 인천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나니까 다른 팀에서도 이후에 연락이 왔었어요. 조성환 감독님이 가장 먼저 제게 관심을 보여주셨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인천행을 결정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인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천의 스타일과 지향하는 방향이 저하고 잘 맞았어요. 인천에 끌린 게 그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프로 첫 동계훈련은 어땠나요? 당시 20세 이하 대표팀 소집 훈련을 오갈 때라 팀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작년 상반기엔 인천에 있는 시간보다 20세 이하 대표팀에 가 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그래도 인천에 박현빈(현 부천FC)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형들과 어색함 없이 친해질 수 있었어요. 현빈이가 U-20 아시안컵 갔을 때 저는 팀에 남아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적응해서 형들과 잘 지냈어요. 인천은 선배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도와주는 문화가 있어요. (이)명주 형, (김)도혁이 형, (문)지환이 형 등이 제가 벽에 부딪힐 때 질문을 하면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셨어요. 그 외에도 정말 많은 형들이 도움 주셨어요.

 

개막 후 투입될 때마다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U-20 월드컵이 도약대가 될 줄 알았는데, 온두라스전에서 득점 후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그 당시 상황을 다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칠 때 직감했어요. 골을 넣고 나서 킥오프하고, 팀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턴을 하는데 발목에서 큰 소리가 났어요. 이전까지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었지만, 바로 큰일 났다고 직감할 정도로 소리가 컸어요. U-20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골을 넣을 줄 몰랐는데 너무 행복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겠다는 생각이 얼마 가지 않아 그만큼의 큰 아픔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들것에) 실려 나가는데 표정이 웃으면서 울었다고 할까요?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어요. 깁스를 하고 한국으로 먼저 돌아와야 하는데 제가 너무 슬퍼하면 팀에 악영향이 갈까 싶어 티를 안 내려고 했어요. 김은중 감독님과 코치님들에게 도움이 못 된 거 같아 죄송한 마음도 컸습니다. 

 

발목 골절과 인대 손상 복합 부상이었는데, 그 큰 부상을 3개월 만에 회복하고 돌아온 게 더 놀라웠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시즌 아웃이다’, ‘쟤는 끝났다’라고 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오기가 생겼어요. 빨리 돌아와서 보란 듯이 저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마인드셋을 하다 보니 예상보다 빨리 복귀할 수 있었어요. 처음 아르헨티나 병원에서의 진단은 복귀까지 5~6개월 걸린다고 했어요. 한국에서 수술을 준비하는데 저 하기에 따라 단축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길 듣고 희망을 품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수술 후 2주 지나서 걸었고, 걷다 보니 재활도 수월하게 됐어요. 저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회복된 것 같아요. 

 

큰 부상을 이겨내고 전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박승호라는 선수의 멘탈리티에 대한 찬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힘든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조성환 감독님이 멘탈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좋은 멘탈 소유자를 좋아하시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고요. 유독 조성환 감독님과 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좋은 자극과 관심을 주시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크기만큼의 좋은 일이 반드시 온다. 그런 말을 믿고 포기하지 않다 보니까 좋은 일이 일어난 거 같아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지난해 U-20 월드컵 온두라스전. 헤더골을 넣고 좋아하는 박승호(18번).

 

'박승호를 기억해 ~'. 2023년 U-20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중도 귀국한 박승호의 유니폼을 들고 승리를 기뻐하는 박현빈. 

U-20 월드컵에 대한 미련은 당연히 남아 있겠죠?

제가 부상을 안 당했더라도 거창한 도움은 주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영준이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유일한 스트라이커로 이후 경기들을 소화하는 영준이가 힘들어하고, 부담감도 큰 게 보였어요. 힘들어 하는 거 볼 때마다 내가 들어가서 뭐라도 도와줬다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나중에 대회가 끝나고 U-20 대표팀 회식 때 영준이를 만나서 그 얘기를 했어요. 영준이가 웃으면서 “괜찮아. 네 덕분에 원 없이 많이 뛰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앞으로 연령별 대표 기회가 또 올 것 같습니다. 이영준, 강상윤, 강성진 같은 U-20 대표팀 시절 동료들이 지금 U-23 대표로 활약하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그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잘했기 때문에 갔다고 생각해요. 저 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주변에서 대표팀 얘기를 하는데, 거기 가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지 알아요. 하지만 결국 제가 있는 위치에서, 소속팀에서 잘해야 갈 수 있는 거니까 지금 제 상황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공격수로서 다양한 장점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활동량, 탈압박, 스피드, 결정력, 축구지능 등. 요즘 말하는 육각형 스타일인데요.

뭐가 안되면 그걸 고치고 발전하고 싶어 하는 타입이에요. 하나씩 노력하다 보니까 좋아진 것 같아요.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섭섭할 텐데, 주변에서 좋게 얘기해 주셔서 감사하고 더 동기부여가 됩니다.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는 빠르고 공을 이쁘게 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요즘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웃음) 피지컬을 키우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축구 선수에겐 필수인데 제겐 부족한 점이죠. 다른 노력에 비해 유독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것 같아요. 대학 입학하고 체중을 5kg 정도 늘렸어요.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건 성인 레벨에서의 운동량이 강하다 보니 근육량이 주는 걸 경기 준비 단계에서 미리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대학 시절 조성환 감독님이 처음 저를 보러 오셨을 때도 피지컬이 아직 약하다고 지적하셨어요. 그런데 ‘그 뒤에 만난 박승호는 예전의 박승호와는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걸 알아봐 주신 감독님께 감사했어요. 활동량은 의식하고 많이 가져가려는 편이에요. 저도 자제가 안 돼요. 뛸 때와 안 뛸 때를 구분 못 하는 편이라 그럴 바에는 많이 뛰는 게 맞는다고 봐요. 모든 걸 100으로 하면 결국은 더 위로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공격 포지션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학창 시절 성장 과정에서 어떤 사고와 노력을 했었나요? 롤모델이 있었을까요?

어려서부터 손흥민 선수를 좋아했어요. 손흥민 스페셜 영상만 엄청나게 봤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따라 하다 보니 양발을 쓰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높은 위치에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려고 해요. 최근 단국대 선배인 정호연 형이 A대표팀에 가서 손흥민 선수와 맞팔하고 전화번호를 받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어요. 저만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는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 함께 경기하는 날이 올 거라 믿고, 그날을 위해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천은 다양한 스타일의 공격수가 포진한 팀입니다 무고사, 제르소, 천성훈, 김보섭 등과의 경쟁, 공존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처음 입단했을 때 인천 멤버 구성을 보면 공격에 틈이 없었어요. 그때는 에르난데스도 있었으니까요. 내가 과연 이 선수들을 제치고 경기에 뛸 순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앞이 막막했어요. 그런데 그 선수들을 보고 배우고, 내가 가진 걸 개선하자고 마음먹으니까 어느 순간 성장해서 그 선수들 플레이를 따라 하고 경기장에서 발휘하게 되더라고요. 여름에 무고사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는 팀에 큰 도움이 될 거니까 좋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인천의 왕이 돌아왔으니까 내 자리는 없을 거라는 우려도 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정작 지금은 무고사가 제게 많은 걸 알려주고, 도와주고 있어요. 주위에 훌륭한 선수들이 있어야 같이 성장한다는 걸 느꼈어요. 

 

현재 박승호라는 선수가 그리는 꿈에서 어느 지점까지 와 있을까요?

선수라면 A대표팀에 가는 게 모두의 꿈일 거고요. 인천에서 꾸준히 잘해서 해외에 진출하는 것도 목표고요. 그런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하루의 24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내며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설까 하는 고민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경기장에 입장할 때 이 기회가 당연한 기회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들어가요. 대신 킥오프를 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여기에선 최고라는 마음을 먹습니다. 

 

나중에 선수 커리어를 마칠 때 사람들이 박승호라는 선수를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요?

한순간도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매분 매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제가 너무 실망할 거 같습니다. 어렸을 때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제가 운동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더 일하시는 것으로 감당하셨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오기와 독기로 운동했어요. 그리고 정말 축구를 사랑합니다. 제겐 축구가 1등이에요. 사랑하는 만큼 노력하는 것 같아요. 박승호라는 선수가 은퇴할 때 최고의 헌신을 보여주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다고 언급되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5월호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승호 인터뷰 영상 보기(클릭) 

 

글=서호정

사진=이연수,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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