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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리그 ‘쌍둥이’ 곽성욱-곽성찬, “같은 팀에서, 같은 유니폼 입고 뛸래요”

201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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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축구 선수 곽성욱과 곽성찬(왼쪽부터) ⓒ이세라

쌍둥이 축구 선수 곽성욱과 곽성찬(왼쪽부터) ⓒ이세라

3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U리그 최고의 동반자 겸 라이벌
‘같은 프로팀에서 함께 축구하는 순간’을 꿈꾼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분화되어 태어난 아이를 쌍둥이라 부른다. 그 중에서도 일란성 쌍둥이는 성별, 생김새, 신체조건까지 유사해 마치 같은 사람을 두 명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한평생 서로 같은 일만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여기 축구라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1993년 7월 12일 3분 차이로 태어난 곽성욱(아주대), 곽성찬(제주국제대) 형제는 U리그의 대표적인 쌍둥이 형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 쌍둥이 형제는 부모님들과 누나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룡초를 시작으로 양산중, 수원공고까지 약 8년 동안 발을 맞추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그러나 대학 선택만은 달랐다. 형은 아주대로, 동생은 제주국제대로 진학하며 축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아주대에서 뛰고 있는 형 곽성욱 ⓒ이세라

아주대에서 뛰고 있는 형 곽성욱 ⓒ이세라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태어나서 20년 동안을 항상 같이 지냈는데, 막상 다른 팀에서 축구를 하니까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다 적응했어요. 자주는 못 만나지만 경기 끝나면 전화 통화도 하고 외박 받으면 수원공고에 같이 가서 운동도 하고 그래요.” – 형 곽성욱

비록 지금은 다른 팀에 있지만 이들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형은 미드필더로, 동생은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며 함께 팀을 이끌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콤비’였다. 형이 중원에서 패스를 넣어주면 동생은 형의 패스를 받아 득점을 넣는 등 수원공고의 득점은 쌍둥이 형제가 책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처럼 형제는 서로를 이끌어주는 인생의 동반자이지만 한편으로는 꼭 넘어야 할 라이벌이기도 하다. 현재 형 곽성욱은 U-20 대표팀 훈련 멤버에도 포함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동생 곽성찬은 훈련 중 발목을 다쳐 재활에 매진하고 있다. 동생으로서는 하루 빨리 형과 나란히 서고 싶은 마음뿐이다.

“형이 U-20 대표팀 명단에 들었을 때 동생으로서는 좋았지만, 같은 선수로서는 얄미웠어요.(웃음) 그런데 사실 형이 잘할 때가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돼요. 형이 잘하면 저도 자극을 받아서 더 잘하고 싶거든요. 형을 보면 얼른 회복해서 복귀하고 싶어요.” – 동생 곽성찬

제주국제대에서 뛰고 있는 동생 곽성찬 ⓒ이세라

제주국제대에서 뛰고 있는 동생 곽성찬 ⓒ이세라

그들은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서로 먼저 생각하고 함께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종 목표도 프로에 함께 진출해 한 팀에서 플레이 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다른 팀에 있지만 서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같은 팀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뛸 날이 올 거라 믿어요. 그 때까지 서로의 자리에서 다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쌍둥이 성욱, 성찬이가 될게요. 파이팅!” – 형 곽성욱, 동생 곽성찬

쌍둥이 형제와 부모님이 함께 모여 찰칵~ ⓒ이세라

쌍둥이 형제와 부모님이 함께 모여 찰칵~ ⓒ이세라

## ‘쌍둥이 축구 선수’ 엄마가 살아가는 이야기

축구 선수를 둔 부모라면 열이면 열 모두가 똑같은 마음이다. 행여나 우리 아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하고, 아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경기장을 찾아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부모다.

곽성욱(형), 곽성찬(동생) 쌍둥이 형제를 축구선수로 키운 그들의 어머님 정일련 씨는 항상 다른 부모들보다 두 배로 걱정해야 하고, 두 배로 기뻐한다. 쌍둥이 모두가 축구 선수로 승승장구하며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어머님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위로 누나만 3명에 막둥이로 태어난 쌍둥이는 태어났을 당시 부모가 ‘만세’를 부를 정도로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고 태어났다. 그들은 어딜 가나 사랑을 독차지했고, 공부까지 잘해 부모님은 내심 쌍둥이가 공부로써 성공하길 바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느 날 쌍둥이는 어머님께 찾아와 축구를 하고 싶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어요. 보고만 있어도 아까운 아들들인데 축구를 한다니까 속상하더라고요. 누나들은 쌍둥이가 축구 하고 오면 얼굴이 시커멓고 꼬질꼬질해지니깐 절대 시키지 말라고 할 정도였어요. 근데 아무리 부모가 반대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근데 지금 이렇게 커서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요.” – 정일련 씨

처음의 극심했던 반대와 달리 정일련 씨는 쌍둥이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그녀는 집인 통영서부터 수원까지 쌍둥이의 경기가 있을 때면 하루도 빠짐없이 왕복 10시간의 장거리 이동을 마다치 않는다.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약 8년 동안 한 학교에서 축구를 했던 것과 달리 대학 진로에 있어서는 쌍둥이가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형 성욱 군은 아주대로, 동생 성찬 군은 제주국제대로 입학해 축구 시작 후 처음으로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이 덕에 그녀 또한 형 경기 가랴, 동생 경기 가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다. 오죽하면 쌍둥이의 오전 경기가 있을 때면 행여나 쌍둥이 경기를 못 볼까 봐 전 날 미리 올라와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샐 정도다.

“제 가방을 보면 아직도 찜질방 이용권이 한 가득 있어요. 누나들은 이런 저를 보고 무리하면서 가지 말라고 하는데 제가 좋아서 가는 거예요. 또 우리 쌍둥이가 힘들게 운동하고 뛰는 것에 비하면 제가 이동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쌍둥이 보는 게 행복하고 쌍둥이를 보러 갈 때면 마냥 설렙니다.(웃음)”

인터뷰 내내 쌍둥이 이야기로 함박웃음 지었던 그녀는 몇 달 전 부상을 당한 동생 성찬 군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성찬 군은 올 시즌 제주국제대로 입학했지만, 동계훈련 도중에 발목 부상으로 현재 재활 중이다. 그러나 성찬 군은 옆에서 이런 어머님을 보더니 밝은 미소로 “엄마 걱정 하지마. 내가 금방 회복해서 엄마 기쁘게 해줄게”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줬다.

비록 동생 성찬 군은 재활 중이지만, 형 성욱 군은 U-20 대표팀훈련에도 참가하며 동생의 몫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둘 다 그라운드에서 잘 뛰면 좋은데 동생 성찬이가 다쳐서 부모로서는 더 마음에 쓰여요. 그래도 내색 없이 재활 열심히 하는 우리 성찬이랑,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성욱이까지.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우리 쌍둥이죠.”

그녀의 바람은 단 하나다.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축구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다치지 않고,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초라한 소망일지는 몰라도 그녀에게는 가장 큰 바람이다.

“부상 당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우리 쌍둥이가 좋아하는 축구도 못하잖아요.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이 그라운드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우리 쌍둥이가 힘낼 수 있도록 저는 언제나 뒤에서 응원할게요.”


글=이세나(KFA리그신문)

* 'KFA리그‘ 신문 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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