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A

2014 FIFA World CupD-56

로그인 회원가입 미디어서비스 트위터 페이스북

선수

kfa

CSKA 모스크바 진출 ‘신데렐라’ 김인성' 그리고 그 후..①

2012-06-21

이전글다음글목록인쇄

내셔널리그에서 러시아 명문 CSKA 모스크바에 진출한 김인성 ⓒ박영훈

내셔널리그에서 러시아 명문 CSKA 모스크바에 진출한 김인성 ⓒ박영훈

누구나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에는 관심을 갖지만, 신데렐라가 된 이후의 스토리는 막연한 행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일까? 아니면 또 다른 스토리의 시작일까?

그 대답은 신데렐라에게 들어봐야 할 것이다.

여기 축구계의 ‘신데렐라’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김인성(23).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그는 올해 2월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유럽프로축구 러시아리그에 진출했다. ‘인생역전’과 같은 기적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의 집중을 받았고,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을 기대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자신의 소속팀 CSKA 모스크바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초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와 일전을 펼치게 된 것. 그는 이적과 동시에 ‘꿈의 무대’에 데뷔할 기회를 잡았고, 한국의 모든 언론은 ‘신데렐라’의 행보에 집중했다. 하지만 치열했던 경기는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의 경기를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의 챔피언이 결정되고, 또 다른 축구의 별이 뜨고 지는 동안 3월 4일 제니트전에서의 짧은 데뷔전을 치렀다는 소식만을 남긴 채 그렇게 ‘신데렐라’는 잊혀지는 듯 했다.

그리고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CSKA 모스크바에 정식 입단할 당시의 김인성 ⓒCSKA 모스크바

CSKA 모스크바에 정식 입단할 당시의 김인성 ⓒCSKA 모스크바

꼬마 김인성, “우승이 제일 쉬웠어요”

반짝반짝 빛나기에는 너무 짧았던 첫 번째 시즌을 마치고 그리웠던 고향으로 돌아온 김인성. 러시아리그 진출 전에 필자와 인연이 있었던 터라 그 동안의 ‘러시아 무대 적응기’가 무척이나 기다려 졌다. 그리고 드디어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특유의 밝은 미소를 잃지 않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얼굴이 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운동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역시 한국이 최고다.(웃음)

-그러면 지금부터 김인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모든 질문을 하겠다. 먼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안산 고잔초 때 단거리 육상선수였다. 육상대회를 나갈 생각은 없었는데 육상부 선생님께서 대회 참여를 권유하셔서 나갔다. 그런데 안산시에서 1등을 하고 경기도 대회까지 진출했다. 그러다가 화랑초 축구부 감독 선생님이 제의를 하셔서 축구를 위해 전학을 가게 됐다. 축구 선수를 하면서도 학교의 부탁으로 육상대회도 같이 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 하나는 빨랐다.(웃음) 축구를 시작한 뒤 1년이 지나서야 육상대회를 안 나가게 됐다.

축구는 4학년 6월부터 시작했다. 축구시작 시기는 다른 선수에 비해 평균에서 조금 빠른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미드필더였다. 그때 당시에 도대회, 시대회를 나가서 두 개 대회만 빼고 전부 우승, 준우승을 했다. 덕분에 스페인도 가고 당시 가장 큰 대회였던 눈높이컵 왕중왕전에서도 우승했다. 내가 그 영광의 멤버였다.(웃음)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승이 쉬운지 알았다.

-안산 부곡중은 당시만 해도 유명한 명문 팀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전국대회를 휩쓸 정도였으면 흔히 말하는 축구 명문 중학교에서 스카우트를 했을 텐데.

그 당시 화랑초 멤버가 워낙 좋으니까 그 때 감독님께서 모든 아이들을 데리고 그대로 안산 부곡중으로 가게 됐다. 내가 창단 멤버였다. 처음에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3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두 번 했다. 창단 멤버로 그런 성적을 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인고는 현재까지도 축구 명문으로 알려진 학교다. 보인고는 어떻게 가게 됐나?

당시 원래는 FC서울 유스 팀으로 선정이 되어 있던 수택고에 진학이 결정됐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단과 고등학교의 문제로 입학이 취소되고 그 멤버 전체가 보인고로 가게 됐다. 당시 멤버가 화려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한 학년 선배가 (구)자철이 형, 동기가 (서)정진이였다. 그때 당시에도 멤버가 좋았다.

(구)자철이 형은 연락이 안 되는데, (서)정진를 비롯해 그때 동기 친구들하고는 가끔 만난다. 정진이는 그때부터 엄청 잘해서 국가대표가 될 줄 알았다.(웃음)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균관대에 갔다. 당시 전국대회에서 득점왕도 하고 U-20 대표팀에도 뽑혔었다.

U-20 대표팀에 뽑힌 때는 1학년이었고, 전국대회 득점왕은 3학년 때 대학춘계연맹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U-20 대표팀에 뽑혔을 때 첫째 날에는 잘했다.(웃음) 그런데 대표팀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그런지 몸이 점점 굳더라. 그러다가 셋째 날에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중요한 시기였는데 쉬게 돼서 가슴이 아팠다. 그때 다친 것이 이제까지 축구하면서 가장 속상했던 일이다. 그 때 안 다쳤다면 대표팀에 계속 뽑혔을 수도 있었을 테고, 다쳐서 못 뛰었다는 후회가 없었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아쉬워하지 않았나?

대표팀에서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다친 상태에서 경기를 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셨다. 그 후로 3년 동안 대표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셨다.(웃음) ‘그 때 너가 안 다쳤으면 너도 저기 있을 텐데…’라고.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해서 뭐하겠는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균관대에서 중퇴를 하게 됐다. 그 계기는?

축구를 그만둔 후에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졸업장이 아니라 축구선수로서의 경험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나보다 상위리그에 있는 선수들과 경기를 뛰면서 발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집안 사정도 어려워서 돈도 벌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원래는 2학년 때 프로 무대를 도전하려고 했다. 학교에서도 이적 동의서를 써준다고 해서 1년간 더 있었는데, 결국에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 때 나와 같이 그만둔 선수가 이종원(부산), 신세계(수원), 김덕일(성남) 등이다.

팀이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진출해야 했다. 힘, 스피드, 경험, 시야 등 모든 것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CSKA 모스크바의 훈련에 참가한 김인성 ⓒCSKA 모스크바

CSKA 모스크바의 훈련에 참가한 김인성 ⓒCSKA 모스크바

내셔널리거, 지옥의 테스트를 통과하다

한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닌 ‘순수청년’ 김인성은 축구에 대해서만은 철없는 욕심쟁이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배웠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좋은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아마추어 축구선수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프로라는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됐고, 결국 꿈을 향해 내셔널리그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기적 같은 스토리가 시작됐다.


-대학교 중퇴 후 K리그에 도전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었는데 나를 원하는 팀이 없었다. 당시에도 에이전트가 있었는데 K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다음부터 나에게 신경을 안 썼다.(웃음) 일본에도 잠깐 다녀왔는데 거긴 정말 아니었다. '하려면 하고 안하려면 말아라'는 식의 팀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소속팀 없이 쉴 수가 없어서 강릉시청에 테스트를 보게 됐다. 당시 나를 받아준 고마운 팀이다.

-강릉시청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나?

강릉시청 박문영 감독님께서 빠른 선수를 선호하셔서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하게 됐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셔널리그 수준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강릉시청 형들과 보냈던 1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내셔널리그에는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스피드 면에서는 K리그에 떨어질 수 있어도 경험적인 부분에서는 비슷했다.

-내셔널리그에 있었을 때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

좋았던 점은 팀원들과 같이 합숙을 하면서 가족같이 지내고 단합이 잘됐다. 돈은 적게 받더라도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좋았다. 프로리그에서는 팀보다는 개인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몸을 챙겼어야 했는데, 내셔널리그는 서로 도와주면서 다같이 열심히 노력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지적해주고 충고해 줬다. 가끔은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리그에 당당히 진출하지 않았는가? 당시 K리그나 J리그 등 주변 리그도 많았는데 왜 러시아리그였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새로운 에이전트와 계약을 하면서 러시아리그 테스트를 추천해 줬다. 사실 러시아리그 테스트는 다른 선수들에 껴서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러시아리그가 안되면 네덜란드리그나 벨기에리그 등 다른 유럽리그에 도전하려고 했다. 처음 본 테스트가 CSKA 모스크바였다. 운이 좋았다.(웃음) 세 번의 테스트 끝에 CSKA 모스크바에 입단할 수 있게 됐다.

1차 테스트는 유스 팀에서 받아서 여유로웠다. 나보다 적게는 3살, 많게는 5살 이상 차이 나는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3일 동안 테스트를 보고서는 나를 바로 뽑을 것 같지 않았다. 2차 테스트를 보러 같은 때 역시나 처음부터 다시 테스트를 보더라.(웃음) 2주 동안 현지에 머무르면서 무슨 테스트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했다. 그 후 2군 코치님이 1군 감독님에게 추천해서 최종 테스트를 볼 수 있었다.

-세 번의 입단 테스트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프로구단에 들어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라고 매일 생각했다. 정말 힘들었다. 말도 안 통하고 무척 답답했다.

-테스트 당시 동영상이 CSKA 모스크바 홈페이지에 공개가 됐었다. 하이라이트의 절반 이상이 김인성의 영상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당시 나와 함께 2차 테스트를 보던 한국 선수가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런데 당시 팀은 우리가 뛰었던 팀도 그리고 상대팀도 U-21 팀이었기 때문에 더 돋보였던 것 같다. 그것도 운이라고 생각한다.(웃음) 한국 대학교 팀 수준이었다. 내셔널리그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최종 테스트를 봤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 떨렸나 기대됐나?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꿈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불안하고 힘들었다. 통역도 없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3일이 지난 다음부터는 ‘어차피 어디를 가도 힘들 테니 즐겁게 하자’라고 생각했다.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말이 하나도 안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그냥 웃었다.(웃음) 지금은 기본적인 말 정도만 한다. 독하게 마음먹고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했지만 한국사람이 안 되는 발음이 너무 많더라.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유학 온 학생들도 적어도 4년 정도는 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배우려면 1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웃음)

연습게임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인성 ⓒCSKA 모스크바

연습게임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인성 ⓒCSKA 모스크바

호날두? 카카? “밑져야 본전이다”

김인성은 지옥 같은 테스트를 통과한 후 기적 같은 기회를 잡게 된다. 바로 ‘별들의 무대’라고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18명의 엔트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테스트 통과 후 16강전 엔트리 등록 기한을 맞추기 위해 김인성의 이적을 서둘렀던 것. 당시 김인성도,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도 반신반의 했지만 결국 ‘유럽의 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데렐라 탄생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적 당시 상황이 긴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엔트리에 등록하기 위해 서둘러 문서처리를 했었는데 당시 상황을 알고 있었나? 그리고 16강전 엔트리에 들어간 기분은 어땠나?

구단 스카우터가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서 굉장히 긴박하게 상황이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상황이 16강전 엔트리 등록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구단 측에서 이적동의서를 급하게 요구했다. 그 때 당시에 나는 실감이 안 났지만, 에이전트 측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16강전 엔트리에 들고 벤치에 앉아 있을 때는 그냥 멍했다.(웃음)
카메라도 너무 많고 TV에서만 보는 선수들이 내 눈앞에서 몸을 풀고 경기를 뛰는 게 아닌가? 물론 우리 팀 선수들도 굉장히 유명한 선수들이지만…카메라도 엄청 많더라. 혼자 속으로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대단한 팀이긴 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멍했다.

모든 선수들이 유명하고 잘했지만 막상 경기를 뛰는 것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경기가 우리 홈 경기였는데 레알 마드리드가 잘하기는 했지만 일방적인 경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날씨가 매우 추워서 상대방이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비록 나에게 기회는 안 왔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모든 선수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긴장되지는 않았나?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상대방은 원래 잘했던 선수고 나는 밑져야 본전이지 않나?
그리고 중학교 시절 잠깐 수비를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일부러 상대방 에이스를 전담마크 했었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들과 붙어봐야 내가 부족한 부분도 알고 실력도 그만큼 늘었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담력이 키워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평소에 많이 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 놓으면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내 기량 발전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리그에 진출하기 전에 러시아리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나?

그때 당시에는 혼다와 자고예프 정도 밖에 몰랐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봤더니 전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더라. 정말 못한다고 생각한 선수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국가대표였다. 그 다음부터 모든 선수들이 달라 보였다.(웃음) 움직임부터 볼 터치 등 모든 게 눈에 들어왔다. 모든 선수들이 잘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

아직은 내가 많이 부족하고 주변에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그 선수들과 있는 것만해도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따라 잡는 일 밖에 안 남았다.

- 그 선수들에게 가장 크게 배울 점은 무엇이었나?

훈련할 때의 자세였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헤딩 타점과 몸싸움, 축구지능과 패스능력 어느 하나 안 배운 것이 없다. 무조건 빠르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팀 공격수 입장에서 수비수를 뚫기가 너무 어려웠다. 우리 팀 수비 4명과 골키퍼가 러시아 국가대표다. 유명한 선수들인데 키가 다 190cm가 넘는다. 테스트 당시 루빈 카잔과의 연습경기를 봤는데, 우리 팀 수비수들을 보고 키가 커서 스피드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특기가 스피드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런데 수비수들의 축구지능이 너무 좋아서 내가 어디로 치고 달릴 것인지 다 알더라. 그리고 볼키핑력이 너무 좋아서 한번 잡은 공은 놓치지 않더라.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진짜 잘하더라. 하지만 이제는 내 동료다. (웃음)

- 우리나라에서는 축구 선수를 평가할 때 스피드에 많은 점수를 주곤 한다. 러시아리그를 경험한 선수로서 러시아 축구 선수들은 어떤 면을 중요시 하는가?

몸싸움과 활동량을 중요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볼 키핑력과 패스능력, 슈팅능력 등 기본적인 축구 기술이 완벽하다는 전제하에서다.

- 유럽상위리그로 평가되는 러시아리그 선수들을 접해본 결과 우리나라 유소년 축구 선수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나?

조언해주고 싶은 것은 체력훈련보다는 공 기술을 더 집중하라고 하고 싶다. 아예 공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웃음) 리프팅, 드리블 등 공을 다룰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해야 한다. 성적을 내기 위한 체력훈련이나 전술훈련은 그 당시에는 도움이 되지만 더 큰 무대에 진출했을 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축구선수로서 당연히 성적을 내야 하기는 하지만 개인 기술이 먼저다. 성인이 되었을 때 힘은 자연히 붙지만 기술은 어렸을 때 연마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나도 굉장히 후회된다. 어렸을 때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러시아 선수들과 경기를 뛰면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에서는 나도 아쉽다.

CSKA 모스크바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인성 ⓒ스포티즌

CSKA 모스크바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인성 ⓒ스포티즌

김인성에게 물어봐, “내겐 너무 고마운 혼다”

김인성 선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축구팬들에게 궁금한 사항을 물어봤다. 축구팬들은 무엇이 가장 궁금했을까? 역시 최고의 관심사항은 그의 동료 ‘혼다 케이스케’에 관한 질문이었다.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프로 데뷔 후 네덜란드 리그의 VVV-펜로를 거쳐 2010년 CSKA 모스크바에 입성한 일본국가대표 주전 공격수 ‘혼다 케이스케’. 김인성에게 혼다 케이스케는 어떤 ‘동료’일까?


- 역시 혼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 첫 번째 질문. 혼다와 친한가? 혼다와의 첫마디는 무엇이었나?

“안녕”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요즘에는 혼다가 한국말로 “안녕”이라고 한다. 그리고 ‘잘 지내?’,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가끔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를 알 듯 혼다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혼다에게 영어로 이야기한다.

일본 국가대표 혼다를 처음 봤을 때는 신기했다. 같이 밥을 먹게 됐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밥이 안 넘어갔다. 다행히 혼다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 요즘에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원정 경기를 갈 때나 평소에 많이 챙겨줘서 많이 편안해 졌다.

혼다가 나에게 영어도 가르쳐준다. 혼다가 네덜란드에 있었을 때부터 영어를 꾸준히 공부해 왔다. 그리고 혼다의 아내와 대화를 할 때도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더라.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멈추고 사전으로 단어를 찾는다. 작은 부분이지만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도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지만 혼다도 다른 선수들에게 그리 친근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는 조금 다르다. 같은 동양선수라서 그런지 먼저 말도 걸어주고 가끔 장난도 친다. 냉정할 때는 냉정한데, 말하고 장난칠 때는 재미있다. 팀 내에서 혼다와 친한 편이다.

- 혼다는 매 시즌 ‘빅리그 진출 이적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이적설에 대해 혼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이적설이 나오든 항상 똑같이 운동하고 똑같이 생활한다.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에는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그런 점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인터뷰에서 조란 토시치와 친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친했는데 집 방향도 다르고 훈련 중에도 자주 못 보니까 약간 서먹해졌다. 지금은 러시아의 마마예프와 키릴이란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가끔은 장난치기 싫은데도 장난을 쳐서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피하기도 한다.(웃음)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안 보이는 벽이 있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 덕분에 말이 안 통해도 같이 웃으면서 그 벽의 높이가 많이 낮아진다.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친구들이 웃어서 그냥 따라 웃은 적도 많다.(웃음)

-또 다른 질문은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질문했던 것이 ‘개고기를 먹는가?’였다.(웃음)
그 나라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궁금했나 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만 먹는다고 대답했다.(웃음) 심지어 감독도 나에게 묻더라. 그래서 ‘보양식으로 한 두 번 먹었는데 나는 싫어한다’라고 대답했다. 감독의 표정이 재미있었다.(웃음)

-‘러시아’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추위’다. 정말 추운가?

추운 날에는 정말 엄청나게 춥다. 하지만 어느 건물이든 실내에 들어가면 히터 시설이 완벽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영하 25도나 30도나 똑같이 춥다.(웃음)

운동할 때는 발바닥 핫팩을 붙이기도 하고 체온이 올라가는 젤리 같은 약을 먹기도 한다. 그리고 추운 날에는 방한용품을 주는데 이것저것 많아서 장비를 다 착용하면 하나도 안 춥다. 그리고 진짜 추울 때는 다른 나라로 간다.(웃음)

-김인성이 타지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4개월 동안 할게 없어서 집과 운동장만 반복했다. 이러다가는 외로워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무작정 ‘모스크바’라고 쳐봤다. 그러다 한인회 유학생 모임을 알게 됐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그곳에 올라와 있는 전화번호에 ‘한 명만 걸려라’는 생각으로 전부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알게 된 친구가 3명 정도 된다. 요즘에는 그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러시아 여행은 했나?

가족들이 러시아에 왔을 때 ‘붉은 광장’에 가본적이 있다. 그 외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사는 빌라 앞에 동물원이 있는데 그 정도밖에 안 가봤다. 한국이 그리워서 다른 곳에 가볼 생각을 안 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여기서 살다 보면 한국 가기 싫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아직까지 나는 잘 모르겠다.(웃음)

한국에서 살았을 때는 불편한 점이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러시아에 가보니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인지 몰랐다.(웃음)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가 최고인 것 같다. 또한 러시아 물가가 워낙 비싸서 돈도 많이 썼다. 처음 적응할 때 한인 음식점에 자주 갔는데 음식값으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돈을 쓴 것 같다.(웃음)

-러시아 진출 후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

러시아에서보다 한국에 와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리그 진출 덕분에 인터뷰를 몇 번하게 됐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서 40분 동안 발리슛을 하는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했는데, 사진 촬영이 끝난 뒤 어떤 아저씨가 와서 킥복싱 선수냐고 물었다.(웃음) 아직 내가 유명한 선수는 아닌 것 같다.(웃음)

Untitled Document-> 인터뷰 2편 보기


인터뷰=박영훈
목록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