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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스케치] 16년 만에 전국대회 열린 효창운동장

201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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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전국대회가 열린 효창운동장 ⓒ박영훈

16년 만에 전국대회가 열린 효창운동장 ⓒ박영훈

지난 52년간 한국축구를 보듬었던 효창운동장에서 16년 만에 전국대회가 열렸다. 바로 ‘제45회 대통령금배 전국 고교 축구대회’.

1960년 10월 개장한 효창운동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잔디운동장이었으며, 1960년 AFC 아시안컵도 열리는 등 오랜 기간 동대문운동장과 함께 한국축구를 이끌어온 성지였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을 대표했던 수많은 축구 스타들은 효창운동장을 무대로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에 열린 대통령금배 역시 1968년 제1회 대회부터 효창운동장에서 함께 하며 인연을 맺었다.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등의 전 대표팀 감독부터 서정원, 이운재, 이동국, 김정우, 박주영 등 전∙현직 대표 선수들을 배출해내며 ‘스타 탄생의 요람’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축구의 균형적 발전 독려의 일환으로 서울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전국대회가 개최됐고, 효창운동장 역시 빛을 잃어갔다.

그렇기에 이번 ‘대통령금배’는 특별했다. 올드 축구팬들의 꿈이 담겨 있는 효창운동장에서 16년 만에 열리는 전국대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효창운동장과 목동종합운동장, 광명복지관, 광명노온정수장 총 4곳에서 7월 24일부터 8월 3일까지 치러졌다. 그 중에서도 대회의 결승전이 치러진 효창운동장의 분위기가 가장 뜨겁다.

효창운동장의 시작과 함께 해왔던 1세대 축구팬 한유풍 씨 ⓒ박영훈

효창운동장의 시작과 함께 해왔던 1세대 축구팬 한유풍 씨 ⓒ박영훈

경기장 응원석 한 켠에서 어린 친구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는 백발의 신사 한유풍(82)씨.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경기를 보며 자체 중계방송을 이어간다. ‘아이고 저기서는 힘을 빼야 하는데’, ‘머리를 고정하고 이마로 헤딩을 해야지’. 오직 축구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축구팬 1세대에게 효창운동장은 ‘삶의 터전’이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시간만 나면 축구장을 다녔지. 옛날 경평전 때도 경기장에 왔었고. 경평전이 뭐냐고? 지금의 서울인 경성과 평양 대표팀간의 경기야.(웃음) 그 때부터 축구팬이었으니까 내가 대한민국의 최장수 축구팬일 거야.(웃음)”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과 여기 효창운동장은 정말 대단했지. 국제 경기도 열리고 갖은 행사들이 다 여기서 열렸었거든. 그리고 그 때 대한민국 축구의 대부이신 김용식 선생과 함께한 시간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한유풍 씨는 그 동안 효창운동장과 함께 세월의 무게를 나눴다. 그 오랜 시간만큼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 그들만의 추억을 공유하며 아직까지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손자 뻘도 넘는 대한민국 축구 꿈나무들의 ‘꿈의 무대’가 있을 때면 여전히 오랜 벗을 찾곤 한다.

“비가 오면 효창운동장 전부가 진흙탕으로 변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때 당시에는 여기밖에 없었으니까.(웃음) 예전에는 관람석 뒤에 매점도 있었어. 그리고 주변에 큰 나무도 있었지. 언젠가 그 나무에 올라가서 보다가 벼락이 쳐서 사람이 상했어. 그 이후 주변 큰 나무들을 다 잘라버렸어.”

효창운동장 전경 ⓒ박영훈

효창운동장 전경 ⓒ박영훈

그런 효창운동장에 오랜만에 찾아 온 손님 대통령금배는 반가웠다. 폭염이 쏟아지는 더운 날씨에도 부채 하나에 의지한 채 단숨에 경기장을 찾았다.

“대통령금배가 내 기억에는 16년 만에 이곳에서 열리는 것 같네. 요즘에는 전국대회를 거의 지방에서 하잖아. 오랜만에 여기서 대회가 열려 너무 기분이 좋아.”

“아이들 경기를 지켜보면 예전보다 수준이 많이 올라 간 것 같아서 축구팬으로서 너무 자랑스러워. 또 시설은 좋아져서 너무 좋지만, 전보다 관중이 없어서 너무 안타까워.”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여기에 오고 싶어도 올 경기가 없거든. 그리고 홍보도 많이 해줘서 경기장에 사람이 꽉 찬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네.”

축구 선수들에게 희망의 무대였던 효창운동장 ⓒ박영훈

축구 선수들에게 희망의 무대였던 효창운동장 ⓒ박영훈

한편 따사로운 햇볕을 피해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권성천(17)군은 전직 축구선수였다. 무릎부상으로 어린 나이에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했지만, 함께 울고 웃었던 재현고 선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선수로서, 그리고 관중으로서 효창운동장을 찾은 권 군에게 효창운동장은 ‘희망의 무대’다.

“사실 효창운동장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어요. 선수 때는 경기 준비하느라 정신 없었거든요. 하지만 관중으로 이곳에 오니까 사람이 없는 관중석이 많이 아쉬워요. 요즘 사람들이 외국리그에만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초중고리그 경기도 실제로 보면 엄청 재미있는데…”

“특히 입장료도 안받잖아요. 그게 학생들에게는 최고죠. 그리고 대중교통으로 쉽게 올 수 있어요. 프로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은 웅장하고 멋있다면 효창운동장은 아담하고 친근해요.”

선수 시절 당시에는 효창운동장에서 누군가는 기쁨을, 누군가는 아픔을 겪는 단순한 경기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는 희망의 무대가 되었다.

“전국대회가 16년 만에 열렸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시간만 된다면 자주 오고 싶어요. 비록 이제 선수는 아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선수들이 뛰는 것을 직접 보니 너무 좋네요. 사실 요즘 축구선수를 그만두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빨리 정신차려야겠어요.(웃음)”

모교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효창운동장을 찾은 경신고 77기 선배들 ⓒ박영훈

모교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효창운동장을 찾은 경신고 77기 선배들 ⓒ박영훈

후배뿐만이 아니다. 선배들도 왔다. 이날 두 번째 경기를 펼치던 경신고의 77기 응원단이라며 자신들을 홍보한다. 이들은 응원석 한 가운데에 서서 경신고 응원가를 외치며 후배들에게 기를 불어 넣어줬다. 선배 응원단에게 효창운동장은 ‘젊은 날의 추억’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왔으니까 벌써 38년이나 지났네요. 효창운동장은 저희가 오기 전부터 있었으니까 저희 선배님이죠.(웃음)”

“그 때 당시에는 우리 학교가 결승전에도 많이 올라가서 단체로 응원을 오곤 했죠. 효창운동장 응원석은 항상 경신고 응원단들로 꽉 찼어요. 사실 축구부 응원을 위해 억지로 온 친구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일당백으로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오고 있습니다.”

선배 응원단은 후배 축구단을 응원하며 그 때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애초부터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배와 후배가 운동장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듯 했다.

“효창운동장에는 향수가 있어요. 그리고 추억이 있고요. 우리 고등학교 시절 때는 축구경기 대부분이 다 여기서 열렸으니까…효창운동장은 이 자리에서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인데, 우리만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네요.(웃음)”

예전에는 간이매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바로 앞에 있었던 파라솔에서 축구를 보던 시절도 있었다. ⓒ박영훈

예전에는 간이매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바로 앞에 있었던 파라솔에서 축구를 보던 시절도 있었다. ⓒ박영훈

또한 효창운동장만의 명물도 있었다. 바로 관중석 바로 뒤에 있는 간이매점과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경기장 주변의 맛집이다.

간이매점은 운영될 당시만 해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였고, 교복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학생들에게는 허기를 달래줬던 좋은 친구였다. 또한 목 놓아 응원을 하던 응원단에게는 배고픔을 해결해 줬던 든든한 지원자였다.

지금은 굳게 문을 닫고 경기장 안쪽으로 들어와 운영되고 있었지만, 아직 그곳의 추억이 있는 이들은 행여 문을 열까 흘깃 쳐다보곤 한다. 현재 구내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여점원도 실외 간이매점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효창운동장은 ‘기분 좋은 전쟁터’였다.

“10년 전부터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서 한 곳만 열었어요. 그러다 4년 전에 이 곳에 매점이 생기면서 문을 닫았죠. 가끔 공사가 있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한번씩 열곤 한답니다.”

“가끔 관중석 매점은 안 여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평일에는 일반인들에게 운동장을 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효창운동장에 추억을 가지고 계시던 분들이죠. 그 때 당시 매점에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으니까요. 그야 말대로 전쟁터였죠(웃음)”

“앞으로 사람이 많아진다면 다시 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날이 다시 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주변 맛집 또한 마찬가지다. 경기를 마친 선수단과 팬들이 식사를 하며 그날의 경기를 마무리하는 추억의 장소였다. 오랜 기간 동안 효창운동장 곁을 지키며 동고동락했던 식당 아주머니에게 효창운동장은 ‘그리운 친구’였다.

“예전에는 운동장 내 구내 식당에서 일했어요. 그 때 당시 국수가 500원이었죠. 지금 이곳에서만 37년 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네요. 옛날에는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또한 경기장을 찾은 학부형들과 선수들을 상대로 가게를 운영했는데, 경기장에 발길이 줄어든 다음부터는 운전 기사님들이 주로 오세요.”

“특히 박종환 감독님이 기억에 남네요. 경기가 끝나면 꼭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하셨거든요. 축구선수들도 데리고 오시곤 했고요. 그럴 때면 선수 부모님들이 ‘내가 사네, 니가 사네’ 하면서 흥을 돋궜죠. 하지만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어렵다 보니까 그런 문화도 없어진 것 같아요.”

“운동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지 너무 오래됐어요. 오늘도 오랜만에 대회가 열렸다지만, 예전만 같지는 않네요. 예전처럼 운동장이 사람으로 꽉 차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효창운동장의 개장과 함께 해왔던 축구 원로 이경이 씨 ⓒ박영훈

효창운동장의 개장과 함께 해왔던 축구 원로 이경이 씨 ⓒ박영훈

개장 52주년을 맞이한 효창운동장에서의 전국대회를 반가워하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개장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축구열정으로 효창운동장과 함께 해온 축구 원로 이경이(70) 씨. 현재 서울시축구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에게 지난 52년을 함께한 효창운동장은 ‘한국축구의 애환’이었다.

“오랜만에 우리 효창운동장에서 대회가 열려서 감회가 새로워. 예전에는 효창운동장에서 축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를 했었거든. 대통령금배도 예전에는 이곳에서만 진행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지방에서 유치하더라고. 조금, 아니 많이 서운했지.(웃음)”

“우리나라 역대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 여기를 거쳐갔어. 이 그라운드를 밟지 않고서는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없었지. 이곳은 한국축구의 역사적인 장소야. 예전에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뭐다 해서 말들도 많았는데, 어찌 됐건 우리나라 축구를 키워낸 곳이지.”

함께 했던 오랜 시간만큼 추억도 많았다. 그리고 경기장을 운영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들으며 그간 있었던 효창운동장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때 우리나라가 국제시합을 하게 됐어. 그래서 효창운동장에 잔디를 심어서 경기를 치렀는데, 그 이후 잔디 관리가 안돼서 그냥 맨땅으로 만들어 버렸거든. 그러다가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바뀌기도 했어.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인조잔디 구장으로 바뀐 거지. 그리고 원래 육상트랙은 없었는데, 지금은 새로 생겼고…변천사를 보면 애환이 많은 경기장이야.”

“국제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라이트 시설도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부랴부랴 라이트 시설을 만들었지. 그런데 다른 경기장과는 좀 다르지 않아? 라이트 기둥이 돌로 만들어 졌거든. 경기는 치러야 하는데 조건은 안 맞고. 그래서 급하게 만든 거야. 저것도 축구 역사적 유물이지.”

하지만 효창운동장은 자랑스러운 축구의 역사였다. 최고(最高)의 경기장은 아니지만, 최고(最古)의 경기장으로써 한국축구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축구 유적지인 것이다.

“경기장이 낙후되고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서 폐가 같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너무 속상했어. 하지만 4년 전 서울시축구협회에서 경기장 리모델링을 시작했지. 그 후에 축구원로 회관도 생기고 초중고리그, 유소년 국제경기도 치러지면서 원로 축구인들도 다시 모이기 시작했어.”

“조명시설과 소음 때문에 주변 주민들과 마찰도 있었지만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거든. 우리 효창운동장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 많은 경기로 저희 운동장을 찾아 주시길 부탁 드려요.(웃음)”


글=박영훈

* 대한축구협회 기술정책 보고서인 'KFA 리포트' 2012년 7월호 '생생스케치' 코너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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