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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5년 후를 내다보는 ‘선수 출신’ 심판 교육

등록일 : 2017.12.11 조회수 : 22051
2017 대한축구협회 선수 출신 심판 교육에 참가한 이들이 한데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좋은 심판은 경기의 질을 높인다. 기본적으로 선수와 지도자가 좋은 경기를 만드는 주체지만 심판이 자연스럽게 좋은 경기를 유도할 수도, 아니면 경기를 망쳐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심판은 중요하다. 대한축구협회가 더욱 질 높은 판정을 내리는 심판을 육성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2017 대한축구협회 선수 출신 심판 교육’이 지난 4일부터 천안축구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4일 시작한 1차 교육은 9일 마무리됐고, 10일 시작된 2차 교육이 진행 중이다. 당초 모집인원 30명을 기준으로 일주일 교육을 예상했던 대한축구협회는 90여명의 지원자가 몰리자 이들을 가급적 많이 수용하기 위해 교육을 1,2차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다.

선수 출신 심판 교육은 올해가 세 번째인데 프로 선수가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주 열렸던 1차 교육은 K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내셔널리그, K3리그 출신도 섞여 있었다. 현재 K리그에서 뛰고 있는 현영민, 김재성, 최효진(이상 전남) 조원희, 곽광선, 고차원(이상 수원) 심우연, 김원식(이상 서울) 최재수(경남) 등이 교육에 참가했다. 현영민, 김재성, 조원희는 월드컵 참가 경험도 있는 베테랑이다. 반면 2차 교육은 현재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대학교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한 이들로 구성돼있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은 현역 선수들이 심판 교육에 적극 참여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협회와 연맹은 선수들이 경기 규칙을 올바로 이해하고, 심판의 판정 절차를 숙지해 서로를 존중하는 축구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심판 교육을 받은 선수들은 한결같이 “심판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겠다. 앞으로는 심판에게 항의를 덜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선수들에게 심판 체력 테스트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주춧돌

대한축구협회는 당장보다는 5년 후를 내다보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협회는 월드컵 심판을 배출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심판 배출에 실패한 뒤 일찌감치 월드컵 심판 후보군을 선정, 국제 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한국 심판은 월드컵 심판 명단에서 제외됐다. 협회 입장에서는 프로 무대를 경험한 심판이 배출된다면 월드컵 심판으로 뽑힐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월드컵 심판이 되려면 FIFA 국제심판이 돼 수년간 경험을 쌓고, 실력을 인정 받아야 한다. 국제심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1급 심판 자격증이 필요하다. 만약 일반인이 4급 심판 자격증부터 시작해 3급, 2급, 1급, 국제심판, 나아가 월드컵 심판이 되려면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10년이라는 수치는 각 단계 별로 승급하는데 평균 2년의 시간이 걸리고, 월드컵 심판이 되기 위해 경험을 쌓는 기간을 4년 내외로 산정해 계산한 숫자다.

하지만 선수 출신이 위와 같은 과정에 도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동기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팀 차장은 “선수 출신이 최단기 코스를 밟아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이론상으로는 2년 만에도 1급 승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후 국제심판이 돼 3~4년간 국제무대 경험을 쌓는다는 것을 가정하면 5~6년 만에 월드컵 심판이 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간에 모든 과정을 통과한다는 가정 하에 계산한 것이지만 일반인에 비하면 훨씬 짧다. 만약 월드컵 심판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프로 출신 심판이 탄생하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늘어나는 심판 수요에 대응하고, 질 높은 판정을 위해 선수 출신 심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비디오 판독(VAR)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심판 숫자를 확보하는 것은 필수다. 게다가 심판 판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확한 판정 및 영상 판독을 위해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심판이 절실하다. 선수 출신 심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맹은 이번 교육에 K리그 선수들이 참여할 것을 적극 독려했다.
현영민이 부심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선수 출신에게 체력 테스트는 ‘누워서 떡 먹기’

원래 심판 자격증은 4급부터 출발한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정식선수로 3년 이상 등록했던 선수 출신은 4급을 건너뛰고 3급 자격증부터 도전할 수 있다. 선수 출신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차원이다.

이번 교육을 진행한 유병섭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는 “아무래도 선수 출신들이다 보니 일반인들에 비해 이해가 훨씬 빠르다. 평생 축구만 해온 선수들이라 웬만한 건 한 번 들으면 바로 이해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3급 교육부터 시작하는 것이 전혀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3급 심판이 되려면 크게 3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는 체력 테스트, 두 번째는 필기 시험, 세 번째는 실기 시험이다. 첫 날 체력 테스트를 실시하고,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이론 수업을 한 뒤 필기 시험을 치른다. 이후 3일 동안 실기 수업을 진행한 뒤 연습경기로 실력을 평가해 자격증을 부여한다. 매 단계마다 통과하지 못하면 곧바로 퇴소다.

체력 테스트는 40m 전력 질주와 2.8km 인터벌 테스트다. 6.4초 안에 들어와야 하는 40m 전력 질주를 6번 반복한다. 인터벌 테스트는 15초 안에 75m를 달리고, 20초 안에 25m를 걷는 것을 28번 반복한다. 필기시험은 100점 만점에 60점이 커트라인이다.

현재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이들에게 체력 테스트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선수 출신을 대상으로 한 이번 교육에서 체력 테스트에서 낙방한 선수는 1,2차에 걸쳐 3명 뿐이었다.

김동기 차장은 “일반인들은 선수들과 달리 처음에 4급 자격증에 도전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4급 신인 심판 기준으로 자격증 합격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다. 그중에 절반이 이론에서 탈락하고, 절반이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진다”며 “이번에 총 응시 인원 대비 3명이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진 것은 체력적인 준비가 일반인에 비해 그만큼 잘 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역시나 선수들에게 고역은 실내 수업과 이론 시험이다. 다행히 1차 교육에서 필기시험을 떨어진 선수는 없었지만 한두 개만 더 틀렸더라면 필기시험에서 떨어질 뻔한 선수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유병섭 강사는 “앉아서 공부할 때는 인상 쓰던 선수들이 밖에 나오니 표정이 밝아졌다”며 웃었다. 1차 교육을 수료한 30명 전원이 3급 심판 자격증을 땄다.
조원희 주심이 제대로 판정하지 못한 최효진 부심에게 레드 카드를 꺼내고 있다. 실제 경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저희 놀러온 것 아닙니다”

필자는 1차 교육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7일 천안축구센터를 찾았다. 전날까지 실내에서 이론 수업을 받던 선수들은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야외 실기 교육을 받았다. 교육생들은 좋은 판정을 내리기 위한 기본기를 중점적으로 배웠다. 경기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 선정, 달리는 방법, 제스처 및 깃발 사용 방법 등을 익힌 선수들은 실전처럼 경기가 벌어지는 가운데 직접 판정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K리그 클래식 전남드래곤즈 트리오는 이번 교육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교육생 중 최고참으로 솔선수범하는 현영민(38)을 비롯해 필기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김재성(34), 적극적인 자세로 교육을 받은 최효진(34)이 전남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현영민은 “평소에 심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분들을 이해하고, 고충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겨 참가하게 돼 기쁘다. 심판 선생님들에게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경기규칙에 대해 헷갈렸던 부분도 정확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수로서 월드컵에 나갔는데 심판으로도 월드컵에 나간다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일이 될 것 같다.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교육을 받으면서 심판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2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김재성은 “나중에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칠 때 이번에 받은 심판 교육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시즌 중에는 자격증을 따기 어려워 이렇게 겨울에 시간을 내서 왔다. 그동안 심판에게 항의도 많이 했는데 대부분은 오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효진은 “생각보다 어렵다. 휘슬을 부는 것부터 쉽지 않다”면서 “20년 넘게 축구를 했는데 규칙을 모르는 부분도 있다. 잘 알고 싶어서 왔다. 이제는 항의를 해도 막무가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1차 교육에 참가한 교육생 중 심판을 직업으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선수도 있다. 바로 곽광선(31, 수원)과 심우연(32, 서울)이다. 특히 곽광선은 “어릴 때부터 심판이 되는 게 꿈이었다. 선수 은퇴 후 1급까지 따서 K리그 그라운드에 심판으로 다시 서고 싶다”고 말했다. 심우연은 “지도자와 심판을 모두 고려하고 있지만 지도자는 자리가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 않나. 심판을 직업으로 삼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 = 오명철
사진 = 대한축구협회
심우연(왼쪽)이 심판으로서 경기를 바라보며 뛰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