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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제 경기, 발전을 위한 ‘정답’이 아닌 ‘대안’

등록일 : 2017.09.14 조회수 : 6652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라는 명제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인원과 경기장 규격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적은 인원이 펼치는 풋살이나 스몰 사이드 게임은 개인기 향상과 빠른 판단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대한축구협회가 11인제가 아닌 8인제 경기를 초등학교 공식경기로 도입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2일과 13일 이틀간 파주 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11인제와 8인제 경기 효과를 비교 분석하는 행사를 실시했다. 이 자리에는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축구협회에서 추천한 U-12 학원 및 클럽 6개 팀이 참가했다. 서울시는 신정초등학교와 최강희FC, 경기도는 JSJ FC와 다산주니어, 인천시는 인천유나이티드 U-12와 석남서초등학교가 나섰다.

참가한 6개 팀은 동일한 상대팀을 대상으로 11vs11과 8vs8 두 경기를 치렀다. 12일에는 최강희FC와 인천 U-12, 신정초와 석남서초, JSJ FC와 다산주니어가 11인제 경기를 한 번씩 치른 뒤 8인제 경기를 했다. 13일에는 동일한 대진으로 8인제를 먼저 실시한 뒤 11인제를 했다.

경기 시간은 모두 25분으로 정했으며 선수 교체는 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8인제는 핸드볼처럼 수시로 교체가 가능하지만 이날은 동일한 선수를 대상으로 GPS 분석을 하기 위해 교체를 하지 않았다. 동일한 상대팀과 경기를 하고, 이틀에 걸쳐 경기를 치르며, 선수 교체를 하지 않은 것은 모두 변수를 통제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함이다.

정확한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위해 과학적인 기법도 동원됐다. 선수들은 GPS 기능이 탑재된 특수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를 뛰었다. GPS 수신기를 통해 선수 개인의 활동량(총 뛴 거리, 스프린트 횟수 및 거리)이 실시간으로 컴퓨터 화면에 표시됐다. 또한 선수 개인의 움직임과 공격 지역에서의 볼터치 횟수 등을 집중적으로 체크하기 위해 영상 촬영이 진행됐다. 협회는 관련 데이터를 면밀히 살펴 11인제와 8인제가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 분석할 예정이다.
김종윤 대한축구협회 기술연구팀 팀장은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단계에서 8인제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8인제는 11인제에 비해 볼터치 횟수가 많아지고, 공수 전환이 빨라지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본능적인 기술 발현을 돕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8인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봉은 아니다. 다만 축구 선진국이 왜 8인제를 시행하는지를 우리도 고민해보고,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다같이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8인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필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8인제 경기는 11인제보다 빠르고 박진감이 넘쳤다. 마치 핸드볼이나 농구를 보는 것 같았다. 쉴새없이 공수전환이 이뤄지다보니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은 한 시도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볼 터치가 조금만 길어지거나 우물쭈물하고 판단하지 못하면 곧바로 공의 소유권이 상대편으로 넘어갔다. 골문 앞에서의 공방전도 11인제보다 더 많이 나왔다.

이날 8인제 경기장의 규격은 세로 62m, 가로 51m로 한 반면 11인제 경기장은 세로 80m, 가로 54m였다. 가로 길이는 큰 차이가 없는 가운데 세로 길이가 각 진영 별로 9m씩 줄어든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는 팀별로 3명이 줄어들었다. 공격, 미드필드, 수비가 3선으로 이뤄졌다고 가정하면 각 라인 별로 한 명이 없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이날 파주에서 U-18 대표팀 소집훈련을 지휘한 뒤 8인제 경기를 보러온 정정용 감독은 “공격수 입장에서 상대 수비수를 한두 명만 제쳐낸다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11인제보다 넓다. 선수들의 볼터치 횟수도 많아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영준 전임지도자는 “빠른 템포로 경기가 진행되는 만큼 빨리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전임지도자는 “8인제 경기는 보통 훈련할 때 옵션을 만들어서 하는 미니게임을 실전으로 옮겨와서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도 했다. 이날 8인제 경기에서는 빌드업 플레이를 유도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약사항을 뒀다. 킥오프시 직접 슈팅을 할 수 없게 했고, 골킥이나 골키퍼가 던지기를 할 때는 하프라인을 넘길 수 없다. 한 방에 길게 때려넣어 득점을 노리는 포스트 플레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선수들은 빠른 패싱 플레이나 개인기를 활용해 탈압박하려고 애를 썼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일선 지도자들은 8인제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내놨다. 안준혁 인천 유나이티드 U-12 코치는 “8인제가 11인제에 비해 선수들이 볼을 더 많이 잡는다. 공수 전환 속도도 빠르다. 11인제를 할 때는 볼을 소유하는 플레이를 강조했다면 8인제는 인원에 비해 공간이 많아 공격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염의태 석남서초 감독은 “확실히 기술적인 플레이가 많이 나온다. 또 8인제 경기는 볼을 받으려면 모든 선수들이 서있지 않고 뛰어다녀야 한다. 체력적으로 훨씬 힘들다”면서도 “8인제를 실시하면 선수단 규모가 줄어들어 피해를 보는 팀이 생기고, 오히려 실력이 좋은 한 명이 경기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며 장단점을 모두 언급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U-12와 석남서초는 지난 6월 인천에서 시행된 8인제 시범리그를 치러본 적이 있다.

반면 함상헌 신정초등학교 감독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함 감독은 “아직 선수도, 지도자도 8인제에 익숙하지 않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8인제 경기가 빈 공간을 많이 활용할 수 있고, 공수전환이 빠르다고 한다면 오히려 기술이 좋은 아이들보다 스피드와 힘이 좋은 아이들이 더 유리할 것이다. 피지컬이 좋은 아이들을 전방에 박아두고 직선적인 패스를 할 수도 있다. 축구가 더 단순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드러냈다. 또한 그는 “좀더 시간을 두고 문제점을 보완한 뒤 8인제를 공식경기에 적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당장 시행하기엔 충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정초는 올해 초 한국유소년축구연맹 주최로 열린 칠십리배에서 5학년을 위주로 A,B팀으로 나눠 8인제 경기에 출전했다.

실제로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반응은 어떨까. 인천 유나이티드 U-12에서 뛰는 5학년 라희찬 군은 “8인제가 11인제보다 더 좋다. 공간이 더 많아서 쉽게 뚫을 수 있고, 더 많이 뛸 수 있다. 11인제보다 힘들지만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정초 5학년 이은재 군도 “11인제와 비교하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 공간이 넓으니 줄 데도 많다. 8인제가 더 편하다”며 웃었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경기에서 오는 재미, 변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대체로 8인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섣불리 답을 내릴 수는 없다. 8인제를 시행하려는 협회 측도, 이에 반발하는 일선 지도자들도 유소년 선수들의 개인기 향상이라는 명분에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받아들이는 데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8인제 시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서로가 논의하고 공유한다면 더 나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글 = 오명철
사진 =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