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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품격있는 동네축구’ 유한화학의 유쾌한 도전

등록일 : 2017.03.14 조회수 : 7189
유한화학은 홈구장 안산원시구장에서 한국후지제록스를 꺾고 FA컵 2라운드에 진출했다.
지난 11일, 2017 KEB하나은행 FA컵 1라운드에서 직장인 축구팀 유한화학과 한국후지제록스가 맞붙었다.

두 팀의 경기가 열린 장소는 유한화학의 홈구장인 안산원시구장이다. 반월산업단지 내 위치한 안산원시구장은 회색도시 안에 숨겨진 비밀공원 같았다. 안산원시구장 주변은 공장이 즐비하고, 인적은 아주 드물다. 공장 옆 2차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무심하리만큼 세차게 달리고, 텅 빈 도보에는 색이 바랜 나뭇잎만이 뒹군다.

회색도시가 떠오르는 반월산업단지를 걷고 또 걷다보면 안산원시구장이 나온다.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경기장 밖의 삭막한 산업단지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원시구장은 안산시 원시동에 위치한 체육공원 안에 조성된 축구장이다.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와 벽돌색 트랙, 그 위에는 몸을 풀며 승리를 다짐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준비하는 축구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였다. 경기 시작 전, 속속 들어오는 관중들의 대부분은 홈팀 유한화학 선수들의 가족 또는 지인들이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과 선수들의 여자친구들은 한데 모여 수다 삼매경이었다.

한켠에서는 회사 임직원과 코치진이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선수 부모님들은 경기장에 있는 아들을 찾아 손을 흔들었다. 안산시민들도 경기장을 찾아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으며 나들이를 즐겼다. 생활축구팀 간의 경기인 만큼 소소한 이야기와 재미가 가득한 관중석의 모습이었다. 경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관중들은 하나돼 선수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유한화학 응원석의 모습.
응원의 힘은 위대하다

유한화학은 홈 이점을 마음껏 누렸다. 선수들에게 익숙한 환경, 짧은 이동거리, 간절한 팬들의 응원 소리는 유한화학 선수들을 한발짝 더 뛰게 만들었다. 홈경기의 대단한 이점이다.

이날 안산원시구장은 유한화학 선수들의 가족과 지인, 회사 동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유한화학의 승리를 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남자친구가 자랑스러워요. 다치고 오면 마음 아프니까 몸 조심히 경기 했으면 좋겠어요!” - 최인규 선수의 여자친구 방은지
“이길 거라고 말했어요. 경기 결과가 어떻든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강윤구 선수의 여자친구 박은영
“같이 운동하는 사이에요. 유한화학 홈경기니까 이길 거예요!” - 안산 축구협회 상임위원 박찬성
“11번 김동우 선수가 내 아들인데, 열심히 하라고 이미 말했어요. 골 넣을 거야, 분명!” - 김동우 선수의 아버지 김재은

원정 경기를 온 후지제록스 팀은 응원석에 빈자리가 많았다. 그러나 선수들을 응원하는 열정만큼은 유한화학에 뒤지지 않았다.

“후지제록스 부사장인데, 이. 겨. 라.” - 후지제록스 부사장 장은구
“권동환 선수 가족인데, 청주에서 왔어요. 다치지 말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아 오늘 꼭 이기고 고려대 잡고 3차전 가자!” - 후지제록스 직원 최영운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유한화학 관중석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후끈 달아오른 응원 열기에 관중들은 한동안 일어나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유한화학 파이팅!”, “좋아! 할 수 있어!”라며 유한화학을 향한 응원은 계속 됐다. 결과는 3-2, 노련미를 앞세운 유한화학이 젊은 피로 구성된 후지제록스를 꺾었다.

홈경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짧은 이동거리는 3교대 근무를 하는 유한화학 선수들의 피로감을 덜어주었고, 퇴근 후 연습경기를 하던 익숙한 운동장에서 뛸 수 있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소리는 지칠 때마다 큰 힘이 됐다..
후지제록스 응원석의 모습.
경기가 끝나고 난 뒤~ 혼자서 회사에 나가~♬

유한화학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을 틈 없이 바삐 움직였다. 이유는 저녁에 일하러 가야하는 야간근무자가 있기 때문이다. “빨리 옷 갈아입고 빨리 회식하고 빨리 일하러 가야지!” 유한화학은 3교대 근무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오전까지 일하고 경기를 뛰는 선수와 경기 후에 회사를 나가는 선수로 나뉜다.

“피곤하죠. 야간근무와 주간근무를 번갈아가면서 하니까 몸 상태가 훅 가더라고요. 그래도 선수들 대부분이 축구 자체가 좋으니까 참는 거죠. 먹고 살아야 되니까 돈도 벌어야 하고요.” - 야간근무자 박상수 선수

3교대 근무 탓에 일과 운동을 병행하기 힘든 환경에 놓인 유한화학 선수들이지만,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주야간근무 전후로 운동을 해왔던 유한화학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힘이 부칠 때마다 강한 정신력과 끈기로 버텼다. 그리고 이날 20대 선수들이 주축인 후지제록스를 만나 정신력을 기반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대가 주축이 된 후지제록스는 노련미에서 유한화학에 밀렸다.
노련미에 밀린 후지제록스 “아쉬워라”

후지제록스 선수들은 경기 후 말이 없었다. 작년 FA컵에서 대학 팀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하며 생활체육 팀의 저력을 보여줬었기에 올해 1라운드 탈락은 너무도 허무했다.

“대학 팀은 체력 면에서 밀리지만, 정보가 많아서 비디오 분석을 통해 전략을 짤 수 있었어요. 그러나 유한화학은 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그들의 노련미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이점이었죠.” - 후지제록스 안성천 감독

안성천 감독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이어 일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 라운드에서 고려대를 만날 유한화학에게 노련미로 승부하라며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어린나이부터 축구를 하면서 프로 축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무수히 많아요. 그러나 그들 중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들은 극소수죠. 프로 진출에 실패한 사회 초년생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찾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 안타까워요.” - 후지제록스 안성천 감독

후지제록스는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바라보고 축구 문화를 바꾸기 위해 기업 차원에서 노력 중이다. 오랜 시간 운동을 해왔던 선수들을 채용하여, 입사 이후 운동과 일을 병행하도록 돕고 있다. 그렇게 모인 선수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선수들이다.
유한화학 김동우(왼쪽)와 후지제록스 이재영은 대학 선후배 사이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어 만나다.

경기 후 유한화학과 후지제록스 선수들은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에 유독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 선수 둘이 보였다. 유한화학의 김동우 선수와 후지제록스의 이재영 선수였다. 둘은 한중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대학시절 함께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과거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만났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됐던 대학 후배를 오늘 상대팀(후지제록스) 선수로 만났는데 다행히 유한화학이 이겨서 선배 체면 살았어요.” - 유한화학 김동우 선수
“방심했던 거 같아요. 우리 팀이 유한화학을 이기고 고려대를 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앞서나갔네요. 그 돌풍을 유한화학이 일으켜주길 바랍니다.” - 후지제록스 이재영 선수

후배의 응원이 어색하고 쑥스러웠는지 김동우 선수는 “왜 갑자기 착한 척이야~”라며 이재영 선수를 한 대 툭 쳤다. 두 선수는 한참을 서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유한화학은 태풍의 눈일까?

유한화학 감독과 선수들은 1라운드 승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왕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으니 고려대학교 캠퍼스 한 번 가보자!”라며 축구 강호 고려대를 호쾌하게 맞이했다. 그들에게 두려움과 부담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축구를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만이 보였다. 과연 유한화학은 올해 FA컵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돌풍의 핵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처럼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한 경기, 한 경기를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안산 = 이하영 KFA 인턴기자
사진 = 이하영 KFA 인턴기자,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