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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편 강현무 “아시안게임, 자신감 갖고 도전”

등록일 : 2018.03.16 조회수 : 3807
포항스틸러스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강현무
무명 생활이 길었다. 포기하지 않고 견뎠다. 마침내 꿈에 그렸던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 U-23 대표팀 주축이 됐다. 이제는 아시안게임까지 바라보고 있다. 신데렐라냐고? 아니, 강현무(23, 포항스틸러스)는 처절한 노력 끝에 이 자리까지 왔다.

올해 1월 중국에서 열린 ‘2018 AFC U-23 챔피언십’은 골키퍼 강현무의 존재감이 강하게 돋보인 대회였다. 한국 U-23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고, 수비 불안과 체력 저하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강현무라는 이름의 보석을 건지는 데는 성공했다.

조별리그 3차전이었던 호주전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은 이 대회에서 먼저 3득점에 성공했지만 후반에 상대에 2실점을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맥없이 흔들리는 수비진을 잡은 건 최후방에 있던 강현무였다. 조별리그부터 3·4위전까지 대회 전 경기에 출장한 그는 이 경기에서 상대의 유효슈팅 8개 중 6개를 막아내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승리와 조 1위 8강 진출을 동시에 이뤄냈다. 경기 내용에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강현무에게는 찬사가 쏟아진 이유다.

강현무는 갑자기 나타난 혜성 같은 존재가 아니다. 포항제철고를 졸업한 뒤 2015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한 강현무는 2016년까지 2년 간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신화용, 김다솔, 김진영 등 베테랑 골키퍼들이 즐비한 포항에서 강현무가 설 자리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기다렸다. 형들 뒤에서 묵묵히 훈련하며 언젠가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꿈꿨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왔다. 2017 시즌 울산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현 K리그 1) 첫 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던 노동건이 무릎 타박상을 당했고, 자연스레 강현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광주FC와의 2라운드가 그의 데뷔전이 됐다. 포항 입단 뒤 꼬박 1,169일,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데뷔전을 2-0 승리로 마친 뒤 강현무는 펑펑 울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알았던 포항 팬들은 강현무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강현무는 감격의 데뷔전을 포함해 2017시즌 리그 26경기 33실점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냈다. 그리고 이제 U-23 대표팀 소속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을 노린다.
올해 1월 U-23 대표팀 서귀포 소집훈련에서의 강현무
지난 U-23 챔피언십은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였어요.
맞아요. 지금 돌이켜봤을 때 팀플레이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선수 개개인의 주장도 강했고요. 무엇보다 팀 전체가 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어요. 창원과 제주를 오가며 한 달 이상 소집훈련을 진행했지만 사실상 창원 훈련은 선수 선발에 집중했으니 본격적으로 발을 맞춘 건 약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대회 준비 과정은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운동 양도 적당했고요. 다만 문제는 팀 전체가 발을 맞춰볼 시간이 부족했다는 거죠.

예상을 깨고 전 경기에 출장했어요. 강력한 경쟁자였던 송범근을 제치고요.
저도 놀랐어요. 아무래도 프로에서 경기를 뛰었고 경험도 있으니 (김봉길 전) 감독님이 믿고 써 주신 것 같아요. 감독님이 믿고 내보내주시는 거니까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만 들고요. 사실 저는 부담감보다는 재미있었어요. 2014년 U-19 대표팀 소집 이후 3년 만에 들어온 대표팀인데, 국제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재미였어요.

강현무 선수가 돋보였던 건 아무래도 호주전이었는데요. 슈퍼세이브를 여러 차례 펼치며 승리의 주역이 됐죠.
아, 그 때 너무 힘들었어요. 축구 선수가 된 이후 처음으로 경기 뛰고 그 다음 날 온 몸에 알이 배기더라고요. 경기 내내 힘겨운 사투였지만 저는 절대로 우리 팀이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경기를 온전히 즐기려고 했죠. 재미있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딱히 긴장한 건 없었어요. 슈퍼세이브 때문에 많은 칭찬을 듣긴 했지만, 제가 잘 한 건 아닙니다. 그냥 공이 막기 좋게 왔을 뿐이죠.

이번 대회에서 치른 여섯 경기(조별리그~3·4위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요?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전반에 상대에게 한 골을 내주고 후반에 (황)현수가 한 골을 만회할 때까지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실제로 전반전에 경기가 잘 풀리지 않다가 현수의 골 이후 경기도 잘 풀려갔고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장)윤호가 퇴장 당하면서 급격히 밀리기 시작했어요. 그 때를 기점으로 전세가 역전이 된 거죠. 이제 와서 생각해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는 정말 아쉬워요.

대회 결과는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 얻은 성과가 있다면요?
자신감을 얻었어요. 사실 저로서는 이 모든 과정이 신기할 뿐이에요. 제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예전부터 꿈꾸었던 자리였거든요. 아시안게임은 저와는 먼 얘기인 줄 알았고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만 해도 다음 아시안게임 때 내가 뛸 수 있을지 의문이 많았는데, 지금은 목표에 한 발 다가선 것 같아 기뻐요. 이제 처음부터 경쟁을 다시 해야 하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 열심히 해보려고요.
2018년 K리그1 개막전에서의 강현무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서는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올 시즌 각오가 남다를 것 같아요.
지난 2년 간 포항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잖아요. 올해는 진짜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제 자신도 마찬가지고요. 지난 시즌 정말 큰 행운을 잡았으니 올해는 더 열심히 해야죠. 꿈에 그리던 데뷔전을 치렀고 대표팀에도 소집됐는데, 너무 잘 풀리면 안 좋은 날이 온다는 말도 있으니 언제 어디서나 행동을 조심하려고 해요.

지난해 데뷔전을 치른 후 펑펑 울었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아! 그 때는 정말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지금도 믿기지 않는 걸요. 출전이 확정된 이후 3일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어요. 그토록 바라던 데뷔전이었는데 나가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죠. 무실점 승리로 끝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물론 제가 잘해서 그렇게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데뷔가 늦었기에 마음고생이 더 심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매년 경기를 뛰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프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죠. 연습할 때 제대로 못하면 내년에 이 팀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도 많았고요. 그렇게 1년, 2년 버티다 보니 마침내 좋은 날이 온 것 같아요. 뛰지 못하는 날이 길었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저 축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죠.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요.

가족들이 기뻐했겠어요.
데뷔전 당시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관중석을 봤는데 가족들이 보이는 거예요. 제가 후보 시절에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봤는데, 가족들이 바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울컥하기도 했고요. 힘들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가니까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무명 시절을 버텼나요?
다른 건 없어요. 항상 ‘할 수 있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나도 충분히 형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생각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도 생겼어요.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기에 끝까지 버텼고, 자신감은 절대 잃지 않으려 했어요. 제 롤모델이 (신)화용이 형인데요. 제게 있어 우상 같은 존재죠. 화용이 형이 따뜻한 말을 참 많이 해줬어요. 자기도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요.

그러고 보니 ‘제 2의 신화용’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죠?
맞아요. 아무래도 화용이 형과 키도 비슷하고(강현무는 184cm, 신화용은 183cm다), 지난 3년 간 옆에서 보고 배운 것도 많으니까요.
강현무는 김병지처럼 쇼맨십이 뛰어난 골키퍼가 되고 싶다.
축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죠.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는데 당시 초등학교 코치님(부산낙동초)께서 아이스크림을 사줄 테니 연습경기를 한 번 뛰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이스크림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고, 제가 원래부터 축구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축구 때문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은 적도 많았고, 수업 시작하는 종이 친 줄도 모르고 혼자 축구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골키퍼였나요?
아니요. 시작은 필드플레이어였는데 제가 뛰는 걸 너무 못해서 골키퍼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감독님이 골키퍼를 하라고 하면 싫어하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어요. 제발 시켜달라고 애원했죠(웃음). 훈련 시작 전에 몸을 풀기 위해 운동장을 5바퀴씩 뛰는데요. 한 번도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골키퍼를 했고, 더 재미있고 편해서 좋아요. 자존심이 상한 적 없냐고요? 전혀요!

고등학교 시절 방황을 했다고 들었어요.
1~2학년 때 경기를 잘 못 뛰니까 축구도 하기 싫더라고요. 놀고 싶은 마음도 많았고요. 참 어렸죠(웃음). 그래서 축구 안한다고 막 도망 다녔어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할까요? 정말 많이 혼났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말 쯤에 골키퍼 코치님이 바뀐 거예요. 지금은 연세대에 계시는 최현 골키퍼 코치님이 그 때 부임하셨죠. 최 코치님께서 방황하는 저한테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 도망을 가더라도 절 내치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신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김병지 선수라고 하면 이해하시려나요? 최대한 오래 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평범한 골키퍼는 되기 싫어요. 김병지 선수처럼 꽁지머리를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분은 워낙 쇼맨십이 강하신 분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사실 지난해 데뷔전 때 제가 쉽게 잡을 수 있는 공을 헤더로 컨트롤하면서 잡았는데요. 보시는 분들이 많이 놀라셨는데, 최순호 감독님은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패기 넘친다고요. 그런데 한 번 하고 나니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한 번 해본 걸로 만족할래요(웃음).

* 강현무의 선방 노하우는 ‘줄넘기’
팀 훈련에서는 기본에 충실하려고 해요. 캐칭이나 볼 던지기 등 기본을 잘해야 어떤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줄넘기를 많이 해요. 1주일에 세 차례 정도 하는데 한 번 할 때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해요. 1단 뛰기와 2단 뛰기를 번갈아 가면서요. 줄넘기를 하게 되면 몸이 통통 튀는 느낌이 나요. 가벼워진다고 할까요? 확실히 줄넘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큰 차이가 있어요.

좋은 골키퍼는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죠. 불안해하거나 당황하면 그 순간 끝이에요. 자신감이 생기면 몸의 반응 속도도 빨라지죠. 실점을 한 후에 빨리 잊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실점을 하면 짜증이 나더라고요. 한 10분 정도(웃음)?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3월호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