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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이태석, ‘이을용의 아들’로 사는 법

등록일 : 2017.07.12 조회수 : 17961
이태석이 2002 한일월드컵 기념사진 속 아버지 이을용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네가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잘 할 수 있지?”

축구인 아버지를 둔 2세들이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이들은 아버지의 무게감에 짓눌리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아버지를 비교하는 주변의 시선 속에서 오롯이 자기 자신을 세우고 지켜내는 일은 녹록지 않다.

오죽 했으면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더욱 실감하게 됐다. 20대 중반쯤 아버지의 벽을 넘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담감이 적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여기, 축구인의 아들로서 고난의 길에 기꺼이 들어선 또 한 명의 축구선수가 있다. 바로 2002 한일월드컵 레전드인 이을용의 아들, 이태석(15, 오산중)이다. 이태석은 아버지가 한일월드컵을 통해 한창 이름을 날린 후 터키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할 즈음이던 2002년 7월28일에 태어났다.

지난 11일 파주 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이태석을 만났다. 이태석을 딱 보자마자 ‘이을용의 아들이 맞구나’라고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물은 아버지보다 아들이 좀더 나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가느다란 눈과 다부져 보이는 얼굴선은 아버지를 빼다박았다.

이태석은 오는 9월 미얀마에서 열리는 AFC U-16 챔피언십 예선을 앞두고 U-15 대표팀에 합류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숫기 없는 이 10대 청년과 나눈 1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통통 튀는 재미는 없었지만 진중함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아버지의 이름값에 쉽게 짓눌리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멘털을 다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9월 미얀마에서 치르는 AFC U-16 챔피언십 예선을 앞둔 각오는.
U-17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대회잖아요.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갖고 준비해야죠.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둬야 후배들도 우리를 보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계대회에서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저 개인보다는 팀이 잘 하는 게 먼저겠죠.

- 두 차례 연습경기(매탄고, 오산고)에서 본인의 활약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 김정수 감독님께서는 수비를 좀더 요구하세요. 제가 워낙 공격 성향이 강해서 어쩌다 막 나갈 때가 있는데 여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세요. 그래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 파주에서 쉬는 시간에는 뭐 하면서 지내나요.
방에서 쉬다가 개인 운동을 하는 편이에요. 가끔 내기 탁구도 해요. 제가 탁구는 잘 칩니다. 아, 근데 애들이 이거 보면 뭐라 하겠는데(웃음). 내기를 하면 많이 이기는 편이지만 대표팀에서 제가 제일 잘 하는 건 아니에요.

- 대표팀에서는 누구와 친해요.
센터백을 맡는 (방)우진이요. 같은 학교라 서로 성향을 잘 알죠. 그런데 우진이는 탁구를 안 쳐요. 룸메이트는 김륜성이에요. 포철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인데 포지션이 같아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 아버지가 올 시즌부터 FC서울 2군코치로 부임했잖아요. 청주대 코치(2015~2016년)를 할 때보다는 아버지를 자주 보겠네요.
네,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항상 집에 오면 아버지가 계세요. 대표팀에 오기 전에도 아버지가 가서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이태석은
‘네가 을용이 아들이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이태석은 아버지를 보면서 그를 따라가기 위해 축구를 시작했다. 뛰는 모습부터 왼발 프리킥에 능한 것까지 아버지를 닮았다. 하지만 무작정 아버지를 따라, 혹은 아버지의 후광으로만 축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태석은 “축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 축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버지를 따라 터키에 가서 아빠 경기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빠가 터키에서 뛸 때 저도 엄마랑 같이 터키에 머문 적이 있어요. 그러다 부모님은 터키에 계속 계시고 저만 중간에 한국으로 와서 할머니와 같이 지냈어요.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축구를 시작했죠. 유치원 다닐 때 리틀FC서울에 있다가 ‘날아라 슛돌이’ 오디션을 본 이후로 거기서 축구를 했고요.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운 건 초등학교 3학년부터에요. 제가 백문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축구는 이파란(현 이을용FC)이라는 클럽에서 했어요.

(참고로 이을용은 2002년 월드컵 이후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해 이듬해 중순까지 있다가 FC서울로 복귀했다. 이후 2004년 중순에 다시 트라브존스포르로 건너가 2006년까지 뛰었다. 터키 생활을 마친 뒤에는 FC서울(2006~2008년), 강원FC(2009~2011년)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이후 강원FC와 청주대에서 코치를 역임했고, 올해부터 FC서울 2군 코치를 맡게 됐다)

- 축구선수의 길을 선택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나요, 아니면 본인이 좋아서 선택했나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제가 가고 싶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공을 만지고 노는 게 좋았으니까요. 초등학교 때 야구선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잠깐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야구는 저에게 잘 안 맞더라고요. 축구가 제일 재밌어요.

- 아버지가 개인 코치 역할을 톡톡히 해줬겠어요.
제가 아주 어릴 때는 일하시느라 집에 없어서 못 가르쳐주셨죠. 최근 들어서 제 경기를 보시고 조언을 자주 해주세요. 상황별 대처 요령이나 침착한 플레이를 강조하시죠. 그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너무 수비에만 치중한다며 더 공격적으로 하라고 했는데 너무 공격적으로 하다보니까 수비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아버지도 공격을 할 때는 하지만 빨리 돌아와서 수비를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야 동료들이 편하니까요.

- 왼발 프리킥을 하는 모습이 아버지를 꼭 빼닮았더라고요.
아버지의 플레이를 많이 보긴 했는데 아빠를 보고 배우기보다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보면서 많이 연구했어요. 그래서 작년 한일교류전에서도 프리킥 골을 넣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이 말을 들으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에이,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 아버지의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지만 본인은 수비수잖아요. 아버지처럼 미드필더로 뛰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미드필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해보지 않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윙포워드를 하다가 중학교에 오면서 풀백으로 전환했거든요. 어쨌든 계속 측면에 섰기 때문에 여기가 편해요. 오랜 시간 동안 이 자리에서 뛰는 법에 익숙해졌고, 스피드가 있기 때문에 측면이 좋아요. 100미터 기록이요? 최근에 잰 건 없고, 초등학교 6학년 때 12초대가 나왔어요.

- 아버지를 어떤 선수로 알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전에는 어려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강원에서 뛸 때의 모습은 정확히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하고, 투지 넘치게 통태클을 들어가는 선수로 알고 있어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비록 투박한 플레이를 하지만 여유 있게 플레이했고,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더라고요.

- 인구에 회자되는 2003년 을용타 사건은 알고 있죠.
처음 들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해요.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을용타 영상을 보길래 저도 한 번 봤어요. 처음 봤을 때는 ‘왜 때렸지’ 이랬죠. 그런데 상황을 보니 조금 이해가 됐어요. 아빠가 공을 주고 빠지는 순간 뒤에서 태클이 들어와서 신경질 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어쩌다 한 번씩 그럴 때가 있어서...

- 아버지가 2002 한일월드컵 레전드라는 점이 부담이 되기도, 동기부여가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아버지보다 잘 해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겠어요.
이젠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무덤덤해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노력해서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해요. 아직 큰 부담은 없어요. 만약 제가 잘못을 하거나 부진하면 부담이 되겠지만 저도 실력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처럼 열심히 뛰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 ‘날아라 슛돌이’ 멤버(2006~2008년)로 활동했는데 그때 기억이 나는지요.
어쩌다 한 번씩 영상을 봐요. 이강인, 서요셉 등 형들과 같이 뛸 때였죠. 촬영을 하면서 홍콩에 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경기도 하고, 쉬면서 관광도 했는데 좋았어요. 어릴 때 해외를 많이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아요.

- 이강인, 서요셉 등 형들은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어요. 부럽지 않나요.
발렌시아에 간 강인이 형은 정말 부러워요. 어린 나이에 해외생활을 하며 좋은 축구를 경험하니까 큰 무대를 가더라도 긴장도 덜 하게 될 것 같아요. 요셉이 형도 작년에 중등리그 왕중왕전 MVP를 받았잖아요. 사실 요셉이 형이 기복이 조금 있는데 왕중왕전 기간에는 기복 없이 팀을 위해 희생하면서 잘 뛰었죠. 아, 요셉이 형이 이거 보면 뭐라고 할 거 같은데요(웃음).
이태석은 아버지처럼 프리킥에 일가견이 있다.
’이을용의 아들, 이태석’ 아닌 ‘이태석의 아버지, 이을용’으로

이태석이 축구선수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만 따지면 아버지보다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축구에 염증을 느껴 공사장 막일꾼,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전전하다 뒤늦게 축구의 소중함을 깨닫고 축구에 매진해 성공한 ‘대기만성형’이다.

이에 비하면 아들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이태석은 FC서울 산하 유스팀인 오산중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인 ‘골든에이지’ 훈련을 꾸준히 받았다. 그리고 이제 연령별 대표팀에 첫 발을 들이는 단계다.

잘만 큰다면 아버지만한, 아니 아버지보다 성공한 선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가능성만으로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이태석은 아버지의 명성에 버금가는 선수를 꿈꾸고 있다.

- 초등학교(2009~2014년) 때 배우고 발전한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워낙 다른 애들보다 빨랐어요. 슈팅하는 감각도 있었죠. 그런데 어릴 때는 그냥 볼을 툭툭 치고 가다가 슈팅하거나 크로스 올리는 게 전부였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식으로 배우면서 기본기를 다졌어요. 그러면서 저의 스피드를 살리는 플레이도 더 좋아졌고, 동료에게 기회를 내주는 크로스와 패스를 하는 판단력도 좋아진 것 같아요.

-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대회나 순간이 있다면.
결승은 많이 올라갔는데 준우승을 많이 했어요. 숭곡초등학교, 광명유소년 팀과 많이 붙었는데 그 팀들이 잘 했어요. 덩치도 좋고, 스피드도 빨라서 밀렸던 기억이 나요. 우승은 중학교 와서 작년에 중등리그 왕중왕전 우승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결승전 승부차기에 제가 네 번째 키커로 나와서 넣고, 요셉이 형이 마지막 키커로 나와서 넣으면서 저희가 이겼죠.

- 중학교 입학하면서 파주에도 자주 오게 됐어요. 골든에이지 훈련을 통해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골든에이지 훈련을 하면서 꾸준히 파주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훈련도, 팀 성향도 달랐고, 전국 각지의 선수들과 호흡 맞추는 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친해지면서 호흡이 잘 맞으니 좋더라고요. 제가 기술이 뛰어나지는 않았는데 골든에이지 훈련을 하면서 기술이 더 는 것 같아요.

- 작년 9월 동아시아 페스티벌 대회를 중국 베이징에서 치른 게 첫 국제대회 경험이었어요. 해외에서 경기를 해본 소감은 어땠나요.
대표팀 옷을 입고 나간 것은 처음이었죠. 환경도 다르고, 해외에서 여러 나라와 경기를 해서 설렜어요. 무엇보다 저도 아버지처럼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는 것이 기뻤어요. 다른 나라 선수들도 성장하는 만큼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작년 한일교류전에서 넣은 프리킥 골을 제가 직접 봤는데 참 멋졌어요.
프리킥은 제가 자진해서 차겠다고 말하는 편이에요. 친구들도 제 성향을 아니까 양보를 해줘요. 0-1로 뒤진 상황에서 제 골로 인해 분위기 반전이 돼 좋았어요. 그 경기를 이겼다면 더 좋았을텐데 1-1 무승부로 끝나서 아쉬워요. 그래도 그 경기는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한 것 같아요. (프리킥으로 골을 많이 넣나요?) 저는 골보다는 어시스트를 더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 본인의 장단점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롱패스와 스피드 정도가 장점인 것 같아요. 단점은 옛날보다 공격 성향이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수비에서도 보완할 게 많아요. 체격도 더 키워야 하고요.

- 초등학교 때 공격수를 했다고 했는데 혹시 포지션 전향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아니요. 그런 적은 없어요. 그냥 공격력을 갖춘 풀백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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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모델로 삼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아스날 풀백 엑토르 베예린이요. 바르셀로나 이적설도 나오는 선수잖아요. 풀백으로서 베예린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2년 뒤 U-17 월드컵에 도전하는 각오도 이야기해주세요. 세계대회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물론 그런 욕심이 나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형들이 지난 대회를 못 나갔잖아요. 그래서 꼭 U-17 월드컵 진출권을 따내야 한다는 부담이 커요. 꼭 좋은 성적을 거둬서 세계대회 출전 기회가 저희에게도 왔으면 좋겠어요.
(U-15 대표팀은 오는 9월 미얀마에서 열리는 AFC U-16 챔피언십 예선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 미얀마, 필리핀과 함께 H조에 속했다. 총 10개 조로 나뉘어 열리는 AFC U-16 챔피언십 예선은 각 조 1위 10개 팀, 조 2위 중 상위 5개 팀과 개최국까지 총 16개 팀이 내년 열리는 AFC U-16 챔피언십 본선에 진출한다. 본선에서 4위 안에 들어야 2019년 열리는 U-17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

- 선수로서 장기적인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꾸준히 경기에 나가고 싶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프로 진학보다는 대학교에 먼저 가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고요. 고등학교에서 바로 프로로 가면 팀 적응은 빠르겠지만 경기를 못 뛰어서 경기력이 떨어질 것 같아요. 대학에 가서 경기력을 올리고 프로를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이후 프로에 가고, 마지막으로 나라에서 인정받는 왼쪽 풀백으로 자리잡고 싶어요. 그러면 아버지보다 낫지는 않아도 아버지만한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파주 = 오명철
사진 = 대한축구협회
파주 NFC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태석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