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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매그 이영진 감독 ‘풋살 불모지에 꽃을 피워라’

등록일 : 2017.01.12 조회수 : 5556
아직까지 한국에서 풋살은 축구만큼 대중화되어 있지 않다. 실내에서 한다는 것 외에 세세한 부분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무관심, 열악한 저변 등의 환경 속에서도 이영진 감독(전주매그풋살클럽)은 멈추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풋살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풋살, 운명처럼 다가오다
이영진 감독이 이끄는 전주매그풋살클럽(이하 전주매그)은 한국 풋살의 전통 강호다. 2009년 12월에 공식 출범한 FK리그에서 원년 우승을 포함해 총 4회의 우승컵(2009/2010, 2012/2013, 2013/2014, 2014/2015)을 들어 올리며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주매그의 고공 행진은 이영진 감독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감독이 풋살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그야말로 운명이었다. 사실 이 감독은 선수 출신이 아니다. “조기 축구를 즐기는 평범한 30대였죠. 방과 후 교사 형식으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정도였어요. 축구가 좋아서 대한축구협회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영진 감독이 속해있던 전주시 생활축구 팀이 1999년 제1회 문화체육부 장관기 풋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게 큰 전환점이 됐다. “풋살이라는 종목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라운드보다 작은 공간에서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할 수 있고, 볼 터치 횟수도 많으니까요. 훨씬 재미있죠. 풋살을 지역에 보급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영진 감독은 마음이 맞는 선배들과 의기투합해 전주시 풋살 연합회를 만들었고 2000년 2월 전라북도 생활체육회로부터 공인 단체로 인준을 받았다. 도청 체육관계자들을 찾아서 도민체전에 풋살을 넣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풋살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건 2006년 우석대에 풋살 팀이 창단하면서부터였다. 이영진 감독은 현재 전주매그 단장인 이철원 교수(우석대 스포츠레저학과)와의 인연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학생 모집에 고심했던 학교 측은 풋살을 지역에서 부상하고 있는 생활체육 종목으로 판단해 8명의 특기생 선수들을 전액장학금으로 데려오는 등 많은 배려를 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말이다.

“고등학교 축구부 연락처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 전화를 걸었죠. 매 연말마다 150팀 이상씩 전화를 걸었던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은 ‘선수들이 풋살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 쪽으로 진학 지도를 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선생님은 풋살과 세팍타크로를 혼동하더라고요. 학교에서 적극 지원해주는데도 선수 수급을 못하니 압박이 컸죠.” 특기생 숫자는 점차 줄었고, 우석대 풋살 팀은 결국 2014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선수들을 위한 ‘지식 동냥’
2009년 FK리그가 출범하면서 학교 팀의 참가가 불가능해지자, 이영진 감독은 전주매그를 창단해 선수를 이원화시켰다. 2011년쯤 학교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신입생은 2~3명씩 꾸준히 들어왔다. 오현종, 김정남(은퇴) 등 사실상 풋살 1세대를 데리고 이 감독은 사비를 털어 숙소와 전용 실외 풋살구장을 짓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 업그레이드됐다. 2억 원 가까운 돈을 들여 실내 풋살구장을 만들었고, 숙소도 리모델링했다.

“개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돈으로 투자하고 있어요. 빚이죠. 왜 이렇게 하냐고요? 평소 무언가에 대한 결정이 망설여질 때 후회하지 말고 지르자는 쪽이거든요. 사실 절대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그래도 내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고 싶었어요. 상환 압박도 있지만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외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선수들은 내적인 발전에도 신경 썼다. 이영진 감독은 일본 쪽 풋살 자료들을 자주 참고했다. “일단은 제가 일본어를 할 줄 알았고, 자주 왕래했기에 자연스레 풋살 지식을 동냥할 수 있었어요.” 이 감독은 ‘동냥’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라면 선수들에게 양질의 지식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종목이기 때문이다.

“일본 풋살은 최상위리그인 F리그가 있고 그 밑에 준 F리그, 권역리그, 지역리그, 도리그가 있어요. 당시 도리그에 나서는 지도자들에게 ‘풋살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시스템은 무엇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틈나는 대로 했죠. 그분들과 여러 가지 대화를 하면서 훈련 영상도 받고, 일본에서 출간되는 책과 DVD를 사서 보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는 나고야 오션스라는 일본 풋살 명문 팀에서 배울 기회도 있었어요. 체육관에 하루 종일 붙어서 선수들이 훈련할 때 비디오를 틀어놓고 끊임없이 메모했죠. 처음에는 그 누구도 저한테 말을 안 걸더라고요. 이듬해 나고야 오션스의 사쿠라이 사장에게 우리 팀과 자매결연을 맺어달라고 했는데 웃더라고요. 그분이 한국에 정식 리그가 시작되면 자매결연을 맺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직인을 찍고야 말았습니다(웃음). 덕분에 2010년부터 방학 기간을 이용해 2~3명의 선수들을 꾸준히 연수 보내고 있어요. 우리 팀도 비시즌에 훈련을 가기도 하고요.”

이영진 감독의 ‘동냥’은 미래를 위한 자산이다. 한국의 풋살 저변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죠. 축구처럼 풋살 트렌드도 자주 바뀌거든요. 저는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건이 될 때마다 풋살과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 팀이 한 경기에 40개의 슈팅을 때렸다고 쳐요. 그런데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알 수가 없어요. 데이터를 통해 전 세계 풋살의 흐름을 파악한다면, 우리가 많이 때린 건지 적게 때린 건지 잘 알 수 있죠. 데이터를 많이 아는 것이 선수들에게도 분명 강점이 될 것입니다.”
이영진 감독은 국내 유일의 AFC 엘리트 풋살 강사이지만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풋살 발전을 위해서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라
이영진 감독은 전주매그를 이끌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대학 최강이라 불리는 우석대 풋살 팀이 모태가 되었기에 FK리그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강호였다. 그런데 원년인 2009/2010 시즌, 전주매그는 FS서울과의 개막전에서 5-6으로 졌다. 이 감독에게는 충격적인 패배였다. 승리만 알았던 이 감독에게 그 날의 패배는 큰 자극이 됐다.

“개막전을 지고 나서 33년 만에 삭발을 했어요. 선수들한테도 미안하고 저 자신도 부끄럽더라고요.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속이 많이 상했죠. 삭발은 제 스스로가 변하는 모습을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한 것이었어요.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까요?”

그해 전주매그는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챔피언 결정전 상대가 FS서울이었다. “그 시즌 정규리그에서 FS서울에 두 번 졌는데, 우선 선수들의 정신적인 두려움을 걷어내야 했죠. 당시 3분짜리 영상을 직접 만들어 라커룸에서 틀었던 기억이 나요. 축구선수로 꿈을 키웠지만 축구로 진학하지 못하고 풋살로 온 선수들이기에 감성을 자극했어요. 비록 축구는 아니지만, 다른 길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실제로 몇몇 선수들은 영상을 보고 뭉클했다고 하더라고요.”

세월이 흐르면서 이영진 감독은 자신만의 지도 철학을 구축해갔다. 초창기에는 감성적인 부분을 포함해 선수들의 즐거운 훈련 환경 조성에 우선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은 훈련에 임하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는 것을 중요시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으로 일본을 비롯한 외국을 수시로 돌아다닌 끝에 얻은 결론이다.

“매번 훈련할 때 분명한 목표를 세우죠. 1시간 반 정도 훈련을 진행하는데, 분명한 목표가 없으면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훈련에서 수비의 어떤 부분을 얼마만큼 발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거죠. 압박의 강도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이며 방향은 어떻게 설정하고 볼을 받으러 나가는 첫 번째 선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까지 모두 세세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선수들은 이영진 감독이 세운 분명한 목표를 이해하고 움직였다. 데이터를 통해 자신과 팀이 현재 어떤 수준인지 명확히 판단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했다. 축구 규칙에 익숙했던 선수들은 풋살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곧 완벽한 풋살 선수로 변모해갔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풋살을 정확히 알리고 이해시키려는 이 감독의 노력 덕분이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한다
한국 풋살이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선수층은 여전히 얇고, 풋살을 모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매 연말 리그가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대중들의 관심 밖이다. 이 감독의 고민도 이와 멀지 않다. 그는 또 다시 목표 설정을 언급했다.

“지도자들이 팀을 맡을 때는 중단기 계획을 세우죠. 우리 풋살도 그런 게 있어야 해요. 풋살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죠. 다음 몇 년 후에는 어디까지 발전하겠다는 세부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해요. 물론 냉정한 평가도 동반되어야 하고요. 이런 정보들을 다 오픈해서 풋살 가족들이 알아야 합니다. 역할을 분담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한국 풋살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된 이영진 감독은 겸손했다. 풋살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지만, 자신은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내 유일한 AFC 엘리트 풋살 강사이기도 하지만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풋살 발전을 위한, 그리고 선수들을 위한 책임감이다.

“저는 생업이 따로 있고 나머지 시간에 풋살을 합니다. 하지만 어쩔 때는 어떤 게 제 주업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직원들한테도, 집사람한테도 불만을 많이 들어요. 힘들죠. 그래도 다른 종목으로 눈을 돌려본 적은 없어요.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이 있기에 지금도 제 부족함을 느껴요. 제가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제대로 습득해 선수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이 선수를 발전시키면서 풋살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풋살을 통해 제 자신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풋살을 만나지 않았으면 학교 공부도 하지 않았을 거고 영어 공부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술, 담배에 찌들어서 비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거예요. 이제는 제가 얻은 지식들을 책으로 만들어서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1월호 'LEADERSHIP'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