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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3인 인터뷰] ③ 차연희 “아쉬움도 고마워, 미안해”

2018-02-08 00:52:00 1,982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의 차연희.



12년간 국가대표 수문장 자리를 지켰던 전민경, WK리그 원년인 2009년 대교의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했던 이장미, 2009년 여자축구 최초로 유럽에 진출했던 차연희가 2017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고 인생 두 번째 출발선 앞에 선 셋을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가 만났다.

차연희(32)는 육상 선수 생활을 하다 뒤늦게 축구에 입문했고, 축구를 시작한지 3년 만인 2004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아테네 올림픽 예선 괌과의 경기에서 데뷔전, 데뷔골(2골)을 기록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육상 선수 출신답게 발군의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2009년에는 동기 박희영과 함께 독일 바트노이에나르에 입단하며 여자축구 최초의 유럽 진출 역사를 썼고, 대교에 돌아와서는 주장으로 활약하며 2011년과 2012년 WK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화려한 이력을 써내려가며 주목도 받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었다. 대표팀과 소속팀을 쉼 없이 오가는 와중에는 수차례 부상과 씨름했다. 아름답고 멋진 선수 생활 마무리는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었다. 차연희는 2015년 십자인대 부상으로 오랜 재활 기간을 보냈고, 2017년 마지막 단 한 경기를 기대하며 이적한 새 팀에서도 훈련 중 십자인대와 연골 부상을 당해 출전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 분명한 선수 생활을 마친 차연희는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지도자 자격증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지만, 지도자 외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볼 생각이다. 차연희는 미래에 대한 설렘이 담긴 표정으로 과거의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은퇴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사실 재작년 대교에서 은퇴할 생각도 있었다. 그전에 딱 한 경기만 맘껏 뛰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결국 기회가 오지 않았고 때마침 재계약할 시점이 와서 더 이상 함께 가지 않기로 얘기가 됐다. 은퇴를 생각했지만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다. 단 한 경기만이라도 마음껏 뛰어보고 싶었다. 그때 신생팀인 경주한수원에서 연락이 왔다. 몸 상태가 괜찮았기 때문에 한 경기만이라도 좋으니 내 경기력을 확인 받고 싶었다. 동계 훈련을 시작할 때도 몸이 좋았는데 그 찰나에 다시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한 경기 뛰어보겠다고 열심히 재활했지만 결국 못 뛰었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은퇴할까, 1년만 더 할까 반반이었다. 감사하게도 하금진 감독님이 계속 같이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생각할 시간을 주셨다. 마지막 면담을 하러 들어갈 때조차 완벽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딱 1퍼센트 차이였던 것 같다.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부상 부위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몸 상태가 올라올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감독님도 그렇고 팀원들이 모두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해줄 때,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나와 내 방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엄청 울었다. 많이 아쉬웠다. 지금은 괜찮아졌다. 후련하다.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은데?
후배들 중에는 좀 더 하지 그랬냐면서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주더라. 가족들은 전부터 그만두길 계속 바랐다. 부상당하고 아프고 한 것들에 대해 많이 속상해 했으니까. 가족들과 선후배들이 모여서 조그맣게 은퇴식도 열어줬다. 정말 고마웠다. 일정상 오지 못한 친구들도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다. 눈물 나더라. 주장을 오래 했는데, 동생들이 ‘언니는 영원한 캡틴’이라고 말해주는 게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차연희는 대교에서 2010년부터 4년 넘게 주장을 맡았고, 지난해 신생팀 경주한수원에서도 주장 역할을 해냈다.)




차연희(왼쪽에서 두 번째)는 박희영(왼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 2009년 독일에 진출했다.



-은퇴 이후에 대한 계획은 세워뒀나?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고민은 6~7년 전부터 했던 것 같다. 선수 그만두면 뭘할까? 어렸을 때는 막연히 지도자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크지 않다. 일단은 그동안 하지 못한 것들을 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축구를 하면서 가족들과 20년 가까이 떨어져 지냈다.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 차원에서 축구를 하고 싶다.

-축구인생을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물건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2012년 WK리그 우승할 때 찼던 주장완장을 가져왔다. (정)정숙 언니를 위한 세리머니를 꼭 하고 싶었고, 골을 넣은 뒤 이 완장을 펼쳐들었다. 정숙 언니는 故최추경 감독(대교의 초대 감독)님과 함께 대교라는 팀에서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존재다. 2012년 우승은 대교의 마지막 WK리그 우승이기도 하다. (故 정정숙은 실업팀 대교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공격수로, 위암 투병 중 2011년 세상을 떠났다.)

-2012년 우승이 축구인생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인가?
2012년 우승도 정말 기뻤지만, 개인적으로 2011년 우승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다. 그해 동계 훈련이 정말 힘들었거든. 2010년에 아쉽게 우승을 못했다. 독일에 1년 넘게 임대로 있다가 대교에서 복귀 요청을 해서 돌아왔다. 그때 (이)장미도 같이 돌아와서 2010년 마지막 7경기를 다 이겼는데, 아쉽게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2011년은 준비를 엄청나게 했다. 체력 훈련을 강하게 해서 다들 울면서 뛰었다. 그러고 나니 확신이 생기더라. 우리가 우승하겠구나. 그러면서 2010년 7경기 포함 23연승을 기록하게 된 거다. 연승이 이어지다보니 압박감도 점점 커져서 힘들었는데 결국 우승을 하면서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그렇다면 축구인생 중 가장 아쉬웠던 것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모두가 생각하듯이... 부상. 대표팀 차출과 소속팀 일정을 오가는 생활을 몇 년 간 계속 하다보니까 한두 군데씩 무제가 생겼다. 나나 장미나 부상이라는 단어가 늘 떠나질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단 한 경기라도 뛰어보고 싶었던 것은 내 스스로의 만족과 인정을 위해서였다. 결국 그러지 못해서, 마무리 경기를 하지 못해서 아쉽다. (옆에 있던 이장미가 “나는 마지막 경기 30분밖에 못 뛰었어”라고 말했다.) 그 경기 봤다. 장미가 울먹울먹하면서 나오더라고.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아서 짠했다.




차연희는 선수 생활 중 가장 의미 있는 물건으로 2012년 챔피언결정전의 주장완장을 꼽았다.




완장 안쪽에 쓰인 故 정정숙을 위한 메시지.



-한국여자축구 최초의 유럽파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독일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처음 갔을 때는 차별이나 텃세를 많이 느꼈다. (박)희영이랑 같이 갔는데, 희영이는 반 년 정도 지나 먼저 돌아가고 나서 반 년 넘게는 혼자 있었다. 희영이가 가고 나서 장미가 다른 팀(프랑크푸르트)으로 오게 되면서 자주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냈다. 장미도 힘들었는지 매일 전화를 하더라(웃음). (이장미 “죽을 뻔 했어.”) 혼자서 먹을 것도 챙겨야 하고 훈련장이나 경기장까지도 알아서 다녀야 하다 보니 힘들었다. 낡은 자전거를 하나 싸게 사서 타고 다니기도 했다. 차 있는 친구들한테 가끔 신세를 지기도 하고. 워낙 시골에 있는 팀이라 이동 거리가 상당했다. 많은 힘든 점들이 있었지만 힘들게 얻은 해외 진출 기회였으니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임대 기간이 끝나고 팀에서는 재계약을 원했지만 대교의 사정 상 돌아오게 됐다. 돌이켜보면 아쉽기도 하다. 독일에서 더 오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축구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어떤 모습이 있나?
여자축구팬들은 소수다. (차연희는 WK리그 경기장을 자주 찾는 축구팬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읊었다.) 그런 골수팬들에게는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그분들한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와 관계없이 그분들 입장에서는 부상이 많았던 선수, 그래서 아쉬운 선수로 남을 것 같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텐데... 오히려 내가 그분들한테 감사하다고, 기억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선수 차연희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많이 아팠는데 잘 버텨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잘 살아볼게(웃음).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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