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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6 여자대표팀 강지연이 계속 달리는 이유

2017-11-17 08:52:00 6,470

강지연(화천정산고)은 차세대 한국 여자 축구를 대표할 골키퍼로 주목받고 있다.



골키퍼 강지연(16, 화천정산고)은 승부사 기질을 타고 났다. 평소 성격은 소심하지만, 그라운드에만 들어서면 무섭게 집중한다. 한국 여자축구가 2010년 이후 8년 만에 U-17 여자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 것도 강지연의 승부사 기질이 한 몫 했다. 차세대 한국 여자축구를 대표할 골키퍼로 강지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허정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U-16 여자대표팀은 지난 9월 태국 촌부리에서 열린 ‘2017 AFC U-16 여자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북한에 져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대회 3위까지 주어지는 FIFA U-17 여자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내 내년에 우루과이로 향한다.

허정재호가 이룬 성과는 암흑기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한국은 2009년 AFC U-16 여자챔피언십에서 우승해 2010년 U-17 여자월드컵에 진출했고, 여기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후로는 세 대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내지 못했다. 네 대회 만에 다시 U-17 여자월드컵에 진출하며 어린 선수들이 국제대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골키퍼 강지연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강지연은 이기면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는 일본과의 4강전에서 영웅이 됐다. 정규시간을 1-1로 마친 양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ABBA 방식으로 진행된 승부차기에서 강지연은 1-1로 맞선 상황에서 나온 두 번째 키커 다나카 도모코의 슈팅을 멋지게 막아냈다. 이후 한국도 두 번째 키커 이은영이 골을 넣지 못했지만 나머지 키커는 모두 골을 성공했다. 일본은 네 번째 키커인 이와이 란이 실축하며 결국 무릎을 꿇었다. 강지연의 선방이 분위기를 한국 쪽으로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풀타임으로 한국의 골문을 지킨 강지연은 나이에 비해 침착한 모습으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며 한국 여자축구가 8년 만에 U-17 여자월드컵 무대를 밟는데 일조했다. 숨겨진 승부사 기질이 제 때 발휘된 셈이다.




U-16 여자대표팀의 강지연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일본전 승리 이끈 주문 ‘이거 하나만 막자’
강원도 화천에서 만난 강지연은 영락없는 만 열여섯 소녀였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수줍음 탓에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대회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이 달라졌고,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

“8년 만에 U-17 여자월드컵 본선에 가는 거잖아요. 본선행 티켓을 딸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여자축구의 꿈을 8년 만에 저희가 이뤘잖아요.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이거 하나만 바라보고 정말 힘들게 훈련했는데, 이제 빛을 발한 것 같아요.”

오로지 U-17 여자월드컵만 보고 달려왔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강지연은 2016년에 열린 AFC U-16 여자챔피언십 예선에서 1, 3차전에 출전해 무실점을 기록했고, 챔피언십 본선에서는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활약했다. 든든한 기둥 역할을 충실히 했다.

“각자 다른 팀에서 뛰던 애들이 한 팀에 모여서 지난 2년을 함께 했잖아요. 예선과 본선을 치르면서 빠르게 하나로 뭉쳤죠. 훈련 시간이 많지 않아 더욱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이룬 성과라고 생각해요.”

일본과의 4강전 이야기를 꺼냈다. 강지연은 “승부차기에 특별히 강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일본의 두 번째 키커가 나올 때 스스로 주문을 걸었는데 진짜 막아냈다”며 배시시 웃었다.

“일본의 두 번째 키커가 나왔을 때, 속으로 ‘이거 하나만 막자’고 다짐했어요. 스스로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죠.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진짜 막아냈어요! 너무 기분이 좋았죠(웃음). 이후는요? 아이들을 믿었어요. 제가 막아냈으니, 뒤에 나올 우리 키커들이 잘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실 정규시간 끝나고 승부차기에 돌입하면서 부담을 많이 받았는데, 아이들이 제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힘을 주더라고요. 그 말에 자신감을 얻고 승부차기에 나섰던 것 같아요. 승부차기에 강하냐고요? 특별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승부차기에 나설 때마다 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강지연은 이번 대회 내내 안정적인 캐칭과 경기 운영 능력을 보이며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이답지 않게 듬직하면서도 순발력을 앞세운 선방 능력이 돋보였다. 그는 북한과의 결승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비록 팀은 0-2로 졌지만 강지연은 북한의 위협적인 슈팅을 여러 차례 막아냈다. 강지연이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골을 내줄 뻔했다.

“일본을 이기고 나서 북한도 해볼만 하다고 느꼈어요. 월드컵 본선 티켓을 땄으니,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아이들과 다짐했죠. 허정재 감독님도 4강전 당일만 좋아하자고 강조하셨고요. 그런데 북한은 정말 만만치 않더라고요. 직접 상대해 보니 저희보다 힘도 스피드도 모두 뛰어났어요. 개인 기술도 좋고요. 무엇보다 북한이 우승을 향한 의지를 정말 강하게 내비쳤어요. 우리 팀은 국가대표팀 언니들이 평양에서 뛰는 영상을 미리 본 덕분에 북한이 특별히 두렵지는 않았는데, 결국 못 이겼잖아요. 많이 아쉬웠어요.”




강지연은 미완의 대기다.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공을 무서워하던 아이
강지연은 인천 가림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축구를 접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지만 축구를 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던 강지연은 2010년 U-17 여자월드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2010년 U-17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이 우승했잖아요. 제가 그 경기를 TV로 봤어요. 그 경기 때문에 제가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U-17 여자월드컵 때문에(웃음)!”

시작도 골키퍼였다. “가림초 축구부장님께서 골키퍼를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골키퍼를 하게 됐죠. 사실 필드 플레이어로 뛰면서 골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단월중학교 때 대타로 몇 번 필드 플레이어로 뛰면서 골도 넣기도 했었죠. 그런데 저는 골키퍼가 좋아요. 뒤에서 막아주는 듬직함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강하게 날아오는 슈팅을 온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골키퍼는 두려움과 싸우는 포지션이다. 대포알 슈팅을 막다가 손가락 부상을 당하는 것은 예사다. 강지연은 이번 대회 직전에 훈련을 하다가 손가락 탈골 부상을 입었음에도 투혼을 발휘했다. 강지연은 여전히 두려움과 맞서 싸우고 있다.

“처음 골키퍼를 할 당시에는 공을 정말 무서워했어요(웃음). 의외죠? 코치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죠. 겁이 많거든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오죽했으면 중학교 때 골키퍼 코치님이 극약 처방으로 슈팅이 강한 언니들을 불러다가 1대 1 슈팅 훈련을 시켰을까요. 정말 저 나름대로는 힘들고 속상했어요. 경기장에 들어가면 최대한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해요. ‘나는 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다짐하고 경기장에 들어가죠. 그러면 집중도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강지연은 미완의 대기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안정감과 선방 능력을 뽐냈지만 아직 기본기가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실 제가 왼발을 잘 못 써요. 그래서 훈련할 때마다 왼발을 쓰려고 노력해요. 공중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이겨내려고 정말 열심히 훈련했어요. 다행히 공중볼 두려움은 지금 많이 사라진 상태예요. 개인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필드 플레이어 친구들이랑 같이 뛰면서 골을 넣기도 하고요. 모르는 코치 선생님들에게 꾸준히 물어봐요. 정말 노력만이 살 길인 것 같아요.”




강지연의 꿈은 WK리그다. 김정미(인천현대제철)처럼 WK리그에서 최대한 오래 축구하고 싶다.



'김정미 언니처럼 오래 축구하는 게 꿈이에요.“
강지연의 꿈은 WK리그 진출이다. WK리그 화천 KSPO의 홈경기에서 볼걸로 활동하는 강지연은 언니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저 그라운드에서 언니들처럼 뛰겠다’는 꿈 말이다.

“지소연 언니처럼 해외에 나가서 뛰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제가 해외 생활을 잘할 자신이 없어요.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가족이랑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싫고요. 그래서 저는 꼭 WK리그에 가고 싶어요. 화천에서 매번 WK리그 경기가 열리고, 저희팀 선수들이 볼보이로 가는데 그 경기를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롤모델은 여자 A대표팀 골키퍼 김정미(인천현대제철)다. “제가 김정미 언니를 정말 좋아해요(웃음). 소속팀이 보은 전지훈련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김정미 언니를 만났어요. 언니랑 악수하고, 칭찬도 받았죠. 언니가 저보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았죠. 저도 김정미 언니처럼 오래 축구하는 게 꿈이거든요.”

언젠가는 여자 축구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할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계속 노력해야죠.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하고요. 훗날에는 국가대표팀 골키퍼가 될 수 있겠죠?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꼭 경기를 뛰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경기를 뛰면서 듬직한 모습을 유지해야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김)정미 언니처럼 오래 축구를 하고 싶어요.”

혹자는 한국 여자축구가 위기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자 축구팀은 매년 줄어들고 있고, 여자 축구선수를 꿈꾸는 선수들도 줄어들고 있다. 그렇기에 강지연은 자신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자 축구팀이 매년 없어지고 있어요. 같이 뛰던 친구들이 팀이 없어져 축구를 그만두는 모습을 보면 저도 정말 안타깝죠. 많은 분들이 남자 축구를 좋아하시지만, 여자축구에도 많은 관심 보내주셨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를 포함한 선수들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12월호 ‘THE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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