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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이기고 돌아온 전상욱 “저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2017-01-18 13:11:00 16,155

성남FC 유소년 코치로 새출발한 전상욱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하지만 전상욱(37, 성남FC)에게는 그 시련이 좀 더 가혹했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해 133경기에 출전하며 성실한 선수로 이름을 알렸던 골키퍼 전상욱은 지난해 5월 장기간의 치료를 요하는 질병 판정을 받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당시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병명은 비인두암 3기였다. 코와 목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악성 종양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전상욱은 암을 발견했을 당시 암세포가 목의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민감한 부위라 수술도 힘들었고, 오로지 방사선과 항암 치료로 견뎌야 했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축구 선수라고 하더라도 항암 치료는 결코 쉽지 않다. 체중은 20킬로그램이나 빠졌고, 근육도 모두 빠져버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먹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종이컵 하나 분량의 미음을 먹는 데 한 시간씩 걸렸다.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전상욱은 힘들 때마다 녹색 그라운드를 생각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라운드,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불굴의 의지로 버텼고, 결국 몸속에서 암세포를 깨끗하게 지우는 데 성공했다.

고대하던 현역 선수로서의 복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지만, 전상욱은 성남FC 유소년 코치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아직은 지도자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만, 그는 초심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간암을 이겨내고 돌아왔던 에릭 아비달(FC바르셀로나 은퇴)처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제 2의 삶을 준비 중이다.

- 그라운드로 다시 돌아온 기분은 어떤가요?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아요. 다만 아쉬운 건 현역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돌아왔다는 건데, 어쨌든 그라운드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고요.”

- 현역 선수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군요.
“맞아요. 다들 운동을 그만두고 지도자로 넘어가는 시점에 접어들었을 때 (현역 생활에 대한) 끈을 놓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현역 생활을 27년 정도 했어요. 축구가 인생이었고 삶이었는데, 이와 단절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치료를 끝내고 구단이랑 상의해 유소년 지도자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생소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어쨌든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니 재활 끝나고 바로 B급 지도자 연수를 받았습니다.”

- 과거와는 생활패턴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은 원래 바뀐 환경에도 잘 적응하기 마련이죠. 이제 저도 사무실 근무를 해요. 책상도 생겼고요. 할 일도 많죠. 아이들 관리도 해야 하고요. 지금 제일 답답한 건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거예요. 훈련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저장하고 프린터까지 하는 과정을 사실 하나도 못했거든요. 힘들었어요(웃음). ‘학원을 다녀볼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같이 일하는 코치님들이 다들 컴퓨터를 잘하셔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2016년 5월 1일에 열린 성남과 광주의 경기는 전상욱의 고별 경기였다. 후반 추가시간 김동준과 교체돼 들어가는 순간



- 최근 페이스북에 현역 은퇴사실과 함께 자세한 병명도 공개했어요. (그동안 외부에 병명을 알리지 않았던 전상욱은 지난 1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인두암 3기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다들 궁금해 하더라고요. 전상욱이 장기치료를 요하는 질병 판정을 받아 잠시 그라운드를 떠난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대체 무슨 병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실 저는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루게릭 병에 걸렸다는 얘기가 제일 많더라고요. 이제는 치료도 잘 끝났고, 속 시원히 얘기할 건 하자는 마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 현재 몸 상태를 정확히 얘기해주세요.
“치료는 잘 끝났지만, 아직 완치라고는 얘기할 수 없어요. 완치라는 건 5년의 기간을 두고 재발, 전이되지 않아야 완치라는 말을 쓸 수 있거든요. 지금은 암세포가 없는 깨끗한 상태예요. 5년 동안 잘 관리하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자신의 병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요?
“감기 때문에 병원을 갔는데, 제 목에 볼록 튀어나온 뭔가가 보이는 거예요. 두 개였죠. 그냥 딱 봐도 보일 정도였어요. 보통 사람들은 피곤하면 임파선에 크고 작은 혹이 생긴다고 하는데, 저는 통증이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의사가 기준치보다 혹이 크다고 말하더라고요. 일단은 약을 먹어보자고 해서 항생제를 먹었는데, 크기가 줄어들지 않아서 결국 큰 병원을 갔죠. 조직검사까지 했는데 암이었어요. 원발부에서 전이된 암이었죠. 원발부위가 코 안쪽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어요. 그래서 비인두암이었죠.”

- 본인도 물론이겠지만 가족들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어요.
“답답했죠.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고요. 아내는 얘기를 듣자말자 울었어요. 부모님한테는 말도 못했죠. 결국 기사를 보고 아셨어요. 결국 사실을 아셨는데, 그 때가 어머니 생일이었어요. 착잡했습니다. 당시 성남FC 감독님이셨던 김학범 감독님은 신경 쓰지 말고 편안하게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당부해주셨어요. 편안하게 마음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죠.”

- 2016년 5월 1일 홈에서 고별 경기를 했어요. 어떤 마음이었나요? (전상욱은 2016년 5월 1일에 열린 성남과 광주의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 투입돼 3분 남짓 그라운드를 밟았다. 현역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성남은 이 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
“처음에는 팀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리그 중이었고, 이 경기가 팀에 중요한 경기라는 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또 제가 후보로 나가게 된다면, 그만큼 엔트리 하나를 없애는 셈이잖아요. 경기에 나간다고 해도 몇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결과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을 했죠. 결과가 좋게 끝나서 다행입니다.”

- 당시 팬들의 응원이 정말 대단했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경기장에 있던 모든 관중들이 다 제 이름을 외쳐줬을 때, 경기장에 나갔을 때 뒤에서 콜해줬을 때, 이분들이 저를 얼마나 걱정해주는지 그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팬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렸을 때 눈물이 터질 뻔 했어요. 겨우 참았죠. 인상 쓰고 다른 생각하고 막 그랬어요. 안 울려고 했죠.”




딸 전하은 양을 안고 있는 전상욱. 가족은 그의 힘든 투병 생활에 큰 힘이 됐다



- 이들의 응원이 항암치료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됐겠어요.
“맞아요. 가족들과 팬들, 그리고 다시 운동장에 나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버텼어요. 너무 아파서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데, 저는 선수 생활을 해야 하니 도핑에 걸리지 말아야 하잖아요. 진통제에는 대부분 성분에 스테로이드제가 포함되어 있고요. 그래서 저는 진통제를 단 한 번도 먹지 않았어요. 붙이는 진통제를 한두 번 쓴 정도예요. 그것도 약한 걸로요. 의사가 참지 말고 먹어야 할 거라고 했는데 저는 결국 안 먹었어요. 도핑 걸릴까 봐요.”

- 음식을 섭취하는 건 어땠나요?
“지금도 먹는 건 불편해요. 국에 말아먹거나, 잘 넘어가는 부드러운 음식을 섭취하죠. 지금은 침이 많이 나오는 편인데 사실 정상인과 비교해서 침이 부족한 편이예요. 방사선 치료를 했을 때는 피곤하면 입술에 나는 수포가 입 안부터 목까지 다 생긴 거예요. 방사선 때문에 목 안에 화상이 생긴 거죠. 다 탄 거예요. 이 때는 죽도 못 먹어서 미음을 겨우 먹었어요. 조금이라도 냄새가 나거나 양념이 짜면 다 토하는 거예요. 그래서 체중이 20킬로그램이나 빠졌어요. 종이컵 하나에 담긴 미음을 다 먹는데 한 시간씩 걸렸어요. 밥을 먹는 시간이 제일 두려웠어요. 안 먹으면 너무 배가 고픈데, 제대로 먹질 못하니 너무 괴로웠어요.”

-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아요.
“나보다 안 좋은 사람도 있으니 힘을 내보자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라는 마음이요. 원망스럽고 눈물도 많이 났죠. 체중이 20킬로그램 빠지고 힘도 없는데, 병원에 누워있으면 귀에서 계속 기계음 소리가 들리잖아요. 계속 있다 보면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꿈같은 거예요. 제가 병원 9층에 있었는데, 여기서 뛰어 내리면 꿈에서 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치료 들어가기 전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내 자신과 단단히 약속했어요.”

- 재활도 결코 쉽지 않았겠어요.
“석 달 정도 재활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몸 상태를 너무 많이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려 했는데 계단을 못 올라가겠는 거예요. 다리에 힘이 다 빠져서요. 하루는 택시를 잡으려고 뛰어갔는데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서 쓰러지기도 했죠.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경기를 일으킨 적도 있고요. 정말 밑바닥부터 이를 악물고 재활했어요. 지금은 체중이 12~13킬로그램 찐 상태지만 더는 찌지 않더라고요.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먹을 수가 없으니 요리 방송을 보면서 먹고 싶은 걸 적어놓기도 했어요. 그나마 지금은 정상적으로 먹는 편입니다. 매운 걸 못 먹어서 김치는 씻어서 먹죠.”

-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겠어요.
“그렇죠. 참다가 너무 아파서 손으로 벽을 치는 바람에 손이 부었어요. 자다가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면 그날은 잠을 다 잔 거예요. 잠들만 하면 그런 과정이 반복되니 힘들었어요.”

- 이제부터는 제 2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네요.
“현역 선수로 1년만 더 하고 싶었지만, 지도자를 하게 됐어요. 아직 ‘어떤 지도자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이제부터 서서히 잡아나가야죠. 제가 어린 시절 운동할 때만 해도 골키퍼 코치라는 직종은 거의 없었어요. 체계적인 배움에 목말라 있었죠. 아이들에게는 내가 그 시절에 못 받았던 교육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보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초에 충실해야죠.”




이제는 지도자다. 힘들게 얻어낸 제 2의 삶이다.



- 지도자로서 롤모델이 있나요?
“샤리체프(신의손) 코치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선수들은 보통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을 받잖아요. 그 분위기에 적응되어 있고요. 그래서 사실 지도자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해요. 나 스스로 하는 게 제일 어려운 거죠. 하지만 선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알아서 하는 습관이 되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와의 소통도 필요하고요. 샤리체프 코치는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어요. 제가 어떤 문제에 대해 ‘이게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하면 ‘그래, 그렇게 해’라고 해주셨죠. 반면 선생님이 얘기해주시면 제가 받아들이기도 했고요. 그 때가 제일 재미있게 운동했던 것 같아요.”

- 27년 간 현역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2009년 9월로 기억해요. 성남 일화(현 성남FC) 소속으로 있었을 때, 당시 주전 골키퍼였던 (정)성룡이가 퇴장을 당해 두 경기를 못 뛰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 때 두 경기를 제가 뛰었는데, 정말 잘했어요. ‘인생 경기’나 다름없었죠. 성룡이가 돌아왔을 때도 한 경기를 더 뛰었죠. 그게 바로 부산 원정 경기(2009년 9월 12일)였어요. 제가 이 경기에서 활약을 했고, 당시 황선홍 감독(현 FC서울)이 저를 부산으로 데리고 왔죠. 제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 전까지 저는 거의 뛰지 못했거든요.”

- 지난 27년 간 자신은 어떤 선수였다고 생각하나요?
“열정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특별한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빠르지도 않았지만 프로 무대에서 10년 이상을 버텼잖아요. 성실하게 임하려고 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열정이 없었으면 못했을 일이예요.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요. 최선을 다하고, 미련을 두지 않는 건 제가 가진 축구 선수로서의 모토였죠.”

- 마지막으로 기다려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마음 같아서는 일일이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별 볼일 없는 선수를 응원해주고, 병원에 있을 때도 괜찮은지 물어봐주고, 무엇보다 잊지 않았잖아요. 저는 제 자신을 높게 보고 있지는 않지만, 이럴 때는 세상을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정말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용인=안기희
사진=안기희,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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