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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스포츠토토 강가애, 태권소녀에서 태극낭자로!

2016-11-08 11:21:00 7,054

여자대표팀 김범수 골키퍼 코치는 강가애를 성실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김정미(인천현대제철), 전민경(이천대교)이라는 양대 산맥이 한국 여자 축구의 골문을 십여 년간 지켜온 가운데, 세대교체 바람이 자연스레 불고 있다. 강가애(구미 스포츠토토)는 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다. 갑자기 솟아나지 않았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온 순간들이 모여 현재의 강가애가 만들어졌다.

스물일곱. 강가애가 ‘차세대 골키퍼’ 수식어를 얻게 된 나이다. WK리그 6년차. 강가애는 조금씩, 조금씩 성장했다. 2016 리우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앞둔 지난 1월 생애 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연유다. 지난 6월 4일 미얀마 원정 친선전에서는 무실점 승리로 뜻 깊은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16년이 강가애에게 뜻 깊은 해가 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WK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이다. 구미스포츠토토 숙소에서 강가애를 만난 날은 이천대교와의 플레이오프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강가애는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아쉽게도 구미스포츠토토는 0-2로 져 챔피언결정전 진출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첫 플레이오프의 경험은 강가애의 축구 인생에서 또 한 번 최선을 다한 순간으로 남았다.

김범수 여자대표팀 골키퍼 코치는 강가애를 ‘성실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기본기가 좋고 늘 열심히 하는 선수죠. 한국 여자 축구 골키퍼 계보를 이어갈 후보로 눈여겨보고 있는 선수입니다.”

강가애에게는 거창한 목표나 반드시 이겨야하는 상대가 없다. 상대를 때릴 수 없어 겨루기에서 늘 졌다는 ‘태권소녀’는 매순간 자신과 싸우는 골키퍼가 돼, 한 걸음씩 자기만의 길을 만들며 걸어가고 있다. “언제나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그렇게 성장한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결정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구미스포츠토토는 정규리그 한 경기를 남겨두고 3위를 확정했다.)
원래는 그 전 경기였던 서울시청전에 승리를 해서 3위를 결정지을 생각이었어요. 근데 져버렸죠. 그래서 그 다음 경기였던 화천 KSPO전이 더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었어요. 다행히 걱정보다 경기가 잘 풀렸고, 3-1로 이기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됐어요. 팀에게나 저에게나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라... 진짜 뭐라 표현이 잘 안될 정도로 기뻤어요. 올해 경기에 많이 뛰면서 얻은 결과물이라 더 뿌듯했어요.

벌써 WK리그 6년차예요. 첫 시작은 충남일화에서였죠?
맞아요. 1년차 때는 한 경기도 못 뛰었어요. 2년차 때 조금씩 경기를 뛰고 자리 잡나 싶을 때 팀이 해체됐죠. 해체된다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하다가 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저를 비롯한 선수들 모두 황당해 하는 상황이었죠. 다행히 드래프트를 한 번 더 할 수 있었고, 이 팀에 오게 됐어요.

그 때부터 쭉 한 팀에 있었던 거군요.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겠어요.
입단 초반에 4개월 정도 고양대교(현 이천대교)에 임대 갔던 것만 빼면요. 충남일화가 해체되고 난감한 상황에 있던 저를 선택해준 팀이니까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잖아요. 연고지가 제천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구미로 계속 바뀌면서 이사도 많이 다녔지만(웃음), 계속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윤영글(왼쪽), 김정미(중앙)와 함께



매년 출전 경기 수가 늘어난 것이 대표팀 발탁에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스스로도 성장한 것을 느끼나요?
네. 확실히 선수는 경기에 나갈수록 성장하는 것 같아요. 충남 일화에 있을 때는 물론 이기는 경기가 많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골도 많이 먹어보고, 패배하는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여기서도 처음 왔을 때는 다른 골키퍼들이랑 돌아가면서 뛰다가 작년부터 주전으로 뛰게 됐어요. 막판에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서 5주 정도 쉬긴 했지만요. 올해는 부상 없이 와서 다행이에요.

올 시즌 활약이 특히 좋았어요. 선방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요. 준비과정에서 좀 더 특별한 것이 있었나요?
준비하는 건 늘 같아요. ‘항상 열심히만 하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에요. 욕심 부리면 탈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제가 전 경기 출전에 대한 욕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판에 다치게 된 거에요. 왜 다쳤을까 생각해보니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내려놓고,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최선 다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대표팀도 마찬가지에요. 대표팀에 뽑히면 당연히 좋죠. 모든 선수들의 꿈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있는 곳, 그러니까 소속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에요. 그러면 대표팀은 자연히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표팀에 꼭 뽑히고 싶다’하는 욕심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고, 만약 뽑히게 된다면 그 안에서 또 충실히 제몫을 하면 되는 것 같아요.

2010년 U-20 여자월드컵 3위 멤버잖아요. 그 이후에 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단 건데, 그 사이에 대표팀에 대한 갈망은 없었나요?
그 당시에도 많이 부족했어요. 경기에 뛴 것도 아니었고, 운 좋게 좋은 경험을 한 거였다고 생각해요. U-19 때부터 차근히 밟고 올라간 것도 아니고 거의 대회 직전에 소집돼서 간 거였거든요. 대회에 가서도 경기에 뛰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이런 큰 무대도 있구나, 여기서 뛰면 좀 무섭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대회에 다녀와서도 제가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는 현재에 만족하고 충실하자는 주의라서요. 물론 대표팀에 뽑히다가 안 뽑히면 실망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다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표팀 발탁 이후에 ‘포스트 김정미’라는 수식어도 따라붙곤 하는데, 그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음... 그건 솔직히 부담돼요(웃음). 그냥 원래 저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하면 좋은데, 누군가를 비교 대상으로 놓고 보면 부담이 많이 돼요. 저는 언니들을 한참 따라가고 있는 중인데, 경쟁 구도로 놓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김)정미 언니, (전)민경 언니, (윤)영글 언니 모두 따라가고 싶은 선배들이에요. 배우고 싶은 점들이 많아요. 정말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더라고요. 대표팀 들어가서 첫 훈련 때는 정말 긴장했어요. 제 생애 가장 집중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선배들한테 각각 어떤 점을 배우고 싶나요?
정미 언니는 크로싱 때 나가는 타이밍이나 스텝이 정말 좋아서 부러워요. 민경 언니는 과감성이요. 판단력이 빠르고 어떤 상황이든 겁먹지 않아요. 영글 언니는 움직임이 빨라요. 필드플레이어 출신이기 때문에 발기술도 좋고요.

강가애 선수의 강점은 뭔가요?
음... 글쎄요? 다 고만고만한 게 강점인거 같아요(웃음). 뭐가 특출한 건 없지만, 또 뭐가 확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제 나름대로는 늘 열심히 한다는 거요. 물론 다들 열심히 하겠지만, 늘 최선을 다한다는 게 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정미 선수와 전민경 선수가 워낙 오랜 시간 대표팀을 이끌다보니, 새로운 골키퍼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책임감이 생겨요. 제가 그 기대를 충족시켜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겠다는 말뿐이에요.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듣기 싫어요.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도 알아주시지 않을까요?




강가애의 목표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그녀에게 가장 중요하다



한국여자축구는 저변이 약한데, 특히 골키퍼 포지션이 취약하다는 평가가 많아요.
맞아요. 저도 처음에 골키퍼 제의를 받았을 때 하기 싫어했거든요. 어린 마음에 골키퍼는 무섭거나 재미없게 느껴졌어요. 근데 하다보니까 매력이 있어요. 어떨 때는 공격수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하고요. 어린 선수들 보면 골키퍼 하라고 적극 추천해주고 싶어요.

축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골키퍼는 어떻게 맡게 됐나요?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했어요(강가애는 태권도 공인 3단이다). 엄마아빠가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사범님이셨거든요. 저랑 제 쌍둥이 동생, 남동생까지 온 가족이 태권도 가족이었죠. 남동생은 축구도 같이 했었는데, 얘가 자꾸 훈련 다닐 때 버스를 놓치는 거예요. 그래서 저랑 제 쌍둥이 동생이 남동생을 데리러 오갔죠. 그걸 남동생 축구 팀 감독님이 보시고는 축구해볼 생각 없냐고 하셨어요. 둘 다 체격도 좋고 운동 신경이 좋으니까요. 그 분이 안양부흥중 감독님께 저희를 소개했고, 그렇게 6학년 말부터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첫 두 달 정도 필드플레이어로 뛰었는데, 저랑 쌍둥이 동생 둘 중에 하나는 골키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서로 싫다고 울다가 결국 언니인 제가 양보했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었나 봐요. (강가애와 똑 닮은 쌍둥이 동생 강나루는 언니와 함께 안양부흥중, 오산정보고, 여주대를 거쳤다. 2011년에는 전북KSPO에 입단해 실업선수생활을 했다.)

골키퍼의 매력을 느낀 것은 언제부턴가요?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아요. 중학교 땐 멋모르고 했어요. 경기를 하면서 선방도 해보고 하면서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실력이 조금씩 늘어나니 선방도 늘어나고요. 선방했을 때의 희열이랄까? 그 느낌이 좋았어요. 훈련 때 외롭고 힘들었던 것들이 잊히는 그런 느낌! 승부차기도 좋아해요. 골키퍼로서는 사실 힘든 순간인데, 저는 오히려 마음 편하게 먹고 들어가요. ‘한두 개 막으면 좋겠다’ 그정도로요.

원래 그렇게 강심장인가요?
강심장인 척하려고 하는 건가(웃음)? 어렸을 때는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실업에 와서도 초반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실수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리고요. 남은 시간 내내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요. 경기 끝나고 엉엉 울기도 하고요. 이제는 경험이 좀 쌓이니까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실수를 하더라도 빨리 털어버리고 심리적으로 회복하려고 노력해요. 그런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자꾸 실수를 생각해봤자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연연하지 말고 ‘다음 플레이를 잘하자, 다음 경기를 잘하자’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A매치는 WK리그 경기랑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지난 1월에는 올림픽 예선에도 참가했잖아요.
맞아요. 그런 큰 경기를 지켜보면서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경기에 직접 뛰는 것도 아니고 지켜보고만 있는데도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동안 긴장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새삼 정미 언니가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A매치를 100경기나 뛰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시간동안 언니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어요? 본받아야겠어요.

큰 무대에 대한 기대도 더 생겼겠어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대한 것들이요.
그런 큰 무대에 ‘가고 싶다. 가야겠다’는 것보다는 ‘가면 어떻게 해야겠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요. 그런 기회가 제게 주어진다면 거기서 최선을 다해야죠. 일단은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하려고요. 언제나 지금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11월호 'THE INTERVIEW 1'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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