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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U-17 여자월드컵을 향해’ 허정재 감독의 무한도전

2016-05-12 09:07:00 4,604

올해부터 여자 U-15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허정재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남자 팀만 맡았던 지도자에게 여자 팀을 맡는다는 건 커다란 도전이다. 여자 U-15 대표팀을 맡게 된 허정재(47)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그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2010년 U-17 여자월드컵 우승이라는 역사를 또다시 쓰기 위해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허정재 감독이 지도자 인생 처음으로 여자 연령별 대표팀을 맡았다. 사실 그는 지도자 경력 17년이라는 기간을 온전히 남자 유소년팀 지도에 투자해왔다. 1999년 풍생중 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 풍생중 감독 자리에 올라 2010년까지 재직했다. 같은 해 성남 일화(현 성남FC) U-12 팀 감독을 맡아 2013년까지 이끌었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는 성남FC U-18 팀(풍생고)을 지도했다.

올해부터 허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새롭게 출발했다. 더불어 여자 U-15 대표팀 감독을 맡아 처음으로 여자 유소년 지도라는 도전에 나선다. 그래도 허 감독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취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 성장할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한 발 더 뛰어야 한다는 다짐이다.

압박감을 벗어 던지다

허 감독이 여자축구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건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라는 발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적에 쫓기며 살아온 지난날과는 확실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곳에서는 공부할 수 있었고, 연구할 수 있었다. 또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 수도 있었다.

“17년 동안 유소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힘든 부분이 더 컸어요. 매번 성적을 봐야 하고, 생각해야 하잖아요. 지난해 P급 지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김남표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강사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전임지도자를 접하게 됐어요. 이제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생각이 컸죠. 그래서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 제가 길러낸 선수들이 많아요. 황의조(성남FC), 홍철(수원삼성), 주민규(서울이랜드FC) 등이 있죠. 이 선수들이 시즌 끝나고 학교로 와서 후배들이랑 같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요. 동시에 스스로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어쩌면 이런 생각이 저를 대한축구협회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긴 거죠. 또 제가 지도자 육성 쪽에도 관심이 있어요. 선수 육성도 중요하지만 좋은 지도자 육성도 중요하거든요. 대한축구협회를 와야 이런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절대 쉬운 자리가 아니다. 효과적인 유소년 육성과 팀 빌딩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합숙 회의는 물론이거니와 난상 토론이 벌어지는 것도 일반적이다. 지난 1월에도 12박 13일 동안 합숙회의가 열렸고, 이를 통해 2016 골든에이지 훈련프로그램 개정본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허정재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다.

“지도자들마다 철학이 다르잖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이 부딪히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한 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접점을 찾아가요. 그렇게 토론하고 합의해서 좋은 훈련 프로그램이 나오는 거죠. 우리나라는 이런 토론 문화가 외국에 비해서 많이 서투르잖아요. 하지만 이 곳은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어요. 누구든지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듣는 사람을 이를 발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선후배 관계가 아닌 모두가 동등한 관계에서 맞춰갈 수 있어서 좋아요.”

발로 뛰며 느낀 차이

허 감독은 요즘 바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긍이 갔다. 그는 올해 8월 말부터 예정된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 지역예선을 위해 두 차례의 소집훈련을 진행했고, 중국에서 열리는 ‘2016 AFC U-14 여자 지역 챔피언십’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여자 U-15 대표팀은 지난 3월 중순에 목포에서 1차 훈련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4월 말에 마찬가지로 목포에서 2차 훈련을 했었죠. 이제 6월 초에 다시 한 번 목포에서 3차 훈련을 가질 예정인데, 이에 대비해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컨디션을 확인하고 있죠. 또 중국에서 ‘AFC U-14 여자 지역 챔피언십’이 열리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제가 준비하고 있어요. 13일에 선수들을 소집할 예정인데, 사실 여자 U-14 선수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아서 지난해 여자 13세 이하(U-13) 교류전에 나갔던 자료들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정신없는 하루다. 물론 첫 여자 연령별 대표팀 지도라 더욱 신경이 쓰이는 부분도 있다. 허 감독은 축구라는 틀 안에서 남자 유소년팀과 여자 유소년팀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의 정신없는 하루는 이런 세세한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실 축구는 다 똑같아요. 남자 유소년이나 여자 유소년이나 다른 게 없어요. 규칙도 기술도 모두 동일하죠. 하지만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파워나 스피드가 대표적인 예죠. 같은 연령대의 남자 선수들하고 경기를 시켜본 적이 있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많은 차이가 없었지만 힘과 스피드에서 밀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당연한 얘기죠. 또 한 가지 느낀 건, 여자 선수들이 정말 섬세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유소년 팀을 지도해오면서 선수들에게 항상 일지를 쓰게 하거든요.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선생님들이 지적해주는 부분은 무엇인지, 본인들이 느낀 부분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요. 물론 지난 1차 소집훈련 당시에도 일지를 쓰게 했죠. 남자 유소년팀 선수들은 선수들마다 일지를 잘쓰고 못쓰고의 편차가 심한데, 여자 유소년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섬세하게 잘 쓰더라고요. 저도 보고 놀랐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여자 유소년 축구에 도전장을 내민 허 감독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걱정’, 마지막엔 ‘만족’

지금까지 여자 U-15 대표팀의 두 차례 훈련을 통해 느낀 점을 물었다. 허 감독은 엷게 미소 지으며 첫 훈련 당시의 분위기를 말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과제였다.

“그동안 남자 유소년 팀만 맡아온 탓에 여자 유소년 팀은 전혀 아는 게 없었죠. 저도 처음에 전임지도자를 하면서 여자 유소년 팀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런데 이 곳에 와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도자들을 만나고,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면서 여자축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여자 U-15 대표팀으로 배치가 됐죠. 첫 훈련 때는 지난해 여자 U-14 대표팀의 교류전 명단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소집했어요. 처음 이틀 정도는 참 답답하더라고요. 오전과 오후로 1시간30분 씩 훈련을 진행하기로 계획을 잡았는데 이 훈련이 2시간 20분까지 늘어나더라고요. 제가 요구한 부분을 못 따라와서 자꾸 더 하다 보니 훈련시간이 늘어난 거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생각해봤어요. 우리나라 여자 유소년 선수들의 저변이 약하다보니 포지션별로 선수를 뽑을 수가 없어서 재능 위주로 선수를 뽑다보니 자기 포지션 아닌 곳에 선수들이 서게 된 거예요. 당연히 이해가 느릴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3일 정도 지나니까 선수들이 요구한 부분을 받아들이더라고요. 처음엔 걱정했는데 훈련 끝났을 때는 120% 만족했어요.”

함께 여자 U-15 대표팀에 합류한 김태희 코치는 허 감독에게 든든한 지원군이다. 김태희 코치는 양평에 있는 단월중에서 5년 넘게 여자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했다. 또 지난 ‘2010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 우승 당시 코치로 활약하는 등 여자 유소년 지도 경험이 풍부하다.

“처음에 김태희 코치가 물어보더라고요. 저의 지도 스타일이 어떠냐고요. 자신과 지도 스타일을 똑같이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맞는 말이죠. 여자 유소년 선수들이기 때문에 제가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훈련 일정 확립 등 큰 그림을 제가 그린다면, 김태희 코치는 숙소생활 관리 및 선수 상담 등 외적인 부분을 담당할 겁니다. 담당 분야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즐거운 축구를 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했어요. 유소년 선수나 프로선수나 즐겁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거든요.”

지금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

허 감독은 우선 8월 말 열리는 AFC U-16 여자 챔피언십 지역예선에 집중할 계획이다. 예선을 통과한다면 내년 AFC U-16 여자 챔피언십 본선에 출전하게 되고, 이마저 통과하면 내후년 열리는 U-17 여자 월드컵에 도전하게 된다. 지역예선에 대한 로드맵은 이미 나왔다.

“4월에 진행했던 2차 훈련은 1차 훈련에 비해 절반 정도 명단을 바꿨어요. 사실 2차 훈련까지는 실험적인 요소가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6월부터 시작되는 3차 훈련에서는 본격적으로 U-16 여자 챔피언십 예선을 대비하려고 합니다. 이미 7~80% 정도의 명단은 확정되었는데, 나머지 2~30%를 소년체전(5월 28일~31일, 강원도 개최)에서 확인하려 해요.”

결코 쉽지는 않다. 앞서 허 감독이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포지션에 맞춰 최적의 선수를 뽑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2010년도에 거뒀던 여자 U-17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기대하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약한 저변, 부담감이라는 이중고다.

“여자 유소년 축구는 상황이 정말 열악해요. 남자 유소년 팀들은 신입생을 뽑을 때 14~15명 정도 뽑는데 여자 유소년팀은 10명 이상 뽑는 팀이 많지 않아요. 초등, 중등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많고요. 선수층이 너무 약해서 대표팀 선수 구성을 할 때 포지션별로 뽑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재능 있는 선수들 위주로 뽑아서 새로운 포지션을 훈련시켜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2~3명 빼고는 자기 포지션이 아닌 곳에 선다고 봐야 해요. 소집 훈련을 할 때 기술적인 면보다는 조직훈련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죠.”

“2010년에 여자 U-17 대표팀에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죠. 그런데 그 이후에는 세 번 연속 예선에서 탈락했어요.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 대회를 우승한 팀이잖아요. 그런데 여자 유소년 축구의 인프라를 직접 확인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네 번째 여자 U-17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데, 부담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어떤 일이든 약간의 부담감은 있어야 긴장하면서 잘 준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전은 허 감독을 숨 쉬게 한다. 그래서 지금 어렵고, 바쁘고, 힘든 건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이다.

“지금까지 좋은 팀이든, 어려운 팀이든 맡아서 최선을 다해왔어요. 이제 여자 축구로 왔으니 최선을 다해야죠. 남자 축구는 관심을 끊었답니다. 매일 자료를 찾고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정책을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아이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더 나아가 2010년도에 우승한 것처럼 월드컵에서 또 한 번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면 여자 유소년 축구의 저변 확대도 훨씬 쉽겠죠. 지금의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글=안기희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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